갈수록 감당하기 힘든 경조사비

이제야 아버지의 피눈물을 이해한다

검토 완료

김경희(9244kim)등록 2024.06.02 11:46


 

지인의 아들 결혼식 모습 ⓒ 김경희

 


매월 수십건의 경조사비로 가정 경제가 휘청거릴 지경이다. 어디 좋은 해법은 없을까? 

어제 지출한 부의금이 남편과 나 각각 10만 원씩 도합 20만 원이 나갔다. 지갑을 쳐다보니 맥도 풀리고 긴장감이 더 몰려온다. 마른 수건이라도 쥐어짜야 할 판이다. 다음 주만 해도 예정된 3건의 결혼식이 또 있다.

시큰둥한 얼굴로 출근길에 나섰다. 아침 출근은 바쁜 시간이기 때문에 유료주차를 하는 게 일상이었다. 헌데 오늘은 한 푼이라도 아끼고 싶어 주차할 곳을 찾아다니다 빈 곳을 발견했다. "옳다! 오늘은 주차비를 벌었네!"하고 주차하려는 데 주차구역에 킥보드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차에서 내려 락이 걸려 잘 움직이지도 않는 킥보드를 낑낑대며 뒤로 치우고 주차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시동을 끈 후 내렸다고 생각한 차가 뒤로 조금씩 움직였다. 당황해 차를 잡는다고 잡았지만 계속 뒤로 밀렸다. 알고 보니 기어가 중립에 있었다.

마침 지나가던 분이 있어 "도와주세요" 외쳤고 그분이 와서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우고 나서야 차는 멈췄다. "어휴~! 큰일날뻔했네" 다행히 뒤차를 접촉하지는 않았지만 세워져 있던 킥보드가 넘어지면서 뒤차에 스크래치가 조금 난 것 같았다.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상황이 종료되고 나니 밀리는 내 차를 막느라 안간힘을 썼던 팔과 다리가 욱신거리고 아팠다. 하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상대방 차주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받지 않았다.
한참 지나서 차 주인이 나타났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보험 접수를 해드려야 할까요? 했더니 "그래야 되지 않을까요?"라고 했다.
내가 보기엔 흠이 잘 보이지도 않았고 그 정도로 보험을 접수한다는 것도 조금 억울해 "제 차도 아무 이상 없고 직접 부딪힌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냥 현금으로 10만 원 정도 드리면 안 될까요?" 했더니 차 주인이 "그 돈으로 고쳐지겠어요?"라고 했다.

"저 같으면 그냥 타고 다닙니다. 이 정도 스크래치로 전체 범퍼를 교체한다는 것도 좀 아닌 것 같네요." "아침부터 황당하겠지만 10만 원으로 정리해 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내가 부탁했고 알겠다고 하셔서 현장에서 10만 원을 입금해주고 헤어졌다.

그때부터 눈물이 흘렀다. 팔도 다리도 아프고 욱신거렸다. 10만 원이면 몇 달치 주차비인데 2~3천원 아껴 보려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속상했고 그동안 경조사비 지출로 어지간히도 스트레스가 심했나 싶어 씁쓸했다. 주차비 몇 푼 아끼려다 일어난 해프닝을 생각해 보니 내 모습이 처량했다.

나보다 훨씬 더 힘들게 사셨을 아버지 생각에 가슴이 미어져


하지만 내 육신의 통증보다 마음이 더 찢어지게 아픈 게 있었다. '오래전 아버지께서는 이 많은 경조사비를 감당하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이런 생각에 하루 종일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가슴이 답답했다.

내 아버지 세대가 퇴직할 때는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수령했다. 그러면 어느 집 자식 할 것 없이 그 퇴직금을 탐냈고 자식들의 우는소리 죽는소리에 부모님들은 조금씩 조금씩 돈을 내어주다 마지막에는 빈털터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부터 자식들은 나 몰라라 한다.

재산은 이미 아들들에게 넘어갔고 몇 푼 받은 퇴직금도 아들 며느리가 야금 야금 뺏어 갔다. 아버지에게 남은 건 자식들 혼사 때 받았던 품앗이 축의금과 그때그때 지출해야 할 부의금 봉투다. 아버지가 감당하느라 얼마나 힘드셨을지를 생각하면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도 없다.

많은 자식들 결혼시키면서 받았던 품앗이 축의금을 감당할 길이 없어 이 자식 저 자식에게 돌아 가면서 맡겼고 나를 포함해 모든 자식들이 좋은 마음으로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때마다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서럽고 비참하고 배신감을 느꼈을지 20여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마음을 헤아려 본다. 시간은 흘렀고 무릎 꿇고 빌고 싶어도 아버지는 지금 안 계신다.

가끔 손윗 시누이가 "사람 도리하고 사느라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아낄 것은 공과금이나 내 입에 들어가는 것뿐이다."라고 한다.

실제로 우리 부부도 과도한 경조사비에 치여 배달 음식이라고는 시켜본적도 없고 모임 외에는 외식도 거의 안 한다. 아니 안 하는 게 아니라 사람 도리하고 사는 비용이 가정 경제의 1/3정도 차지하다 보니 못 한다고 하는 표현이 맞다.

시어머니 형제 10남매로 파생된 수많은 인척들 시아버지 7남매로 파생된 수많은 친척들 또 같은 동네 이웃들, 친구 동창 모임 직장 동료 등 등. 내 친정쪽과 나를 둘러싼 여러 사람들로부터 매일 매주 매달 쏟아지는 경조사비용으로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내가 경조사비에 많은 부담을 느끼는 이유는 또 있다. 오래전 친정쪽 동네 어르신을 만났는데 그분께서 "아이, 느그집 혼사에는 한 번도 안 빠지고 축의금을 했는데 너희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니 받을 길이 없다."
그 말이 어찌나 상처가 되던지.

그 이후부터는 여기저기 말해놨고 내게 연락이 닿은 경우는 안 빠지고 인사를 치른다.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큰딸이 "엄마, 아빠는 왜 돈이 없어요?" 그러면
"엄마, 아빠만 소고기 사먹어서 없다"서울로 대학을 간 작은딸이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난해요?" 할 때도 "진짜 가난이 뭔지나 알아?" 막내 아들이 "우리 집은 "빚이 얼마에요?"하면 "어, 좀 많아" 하면서 철없는 애들의 말이니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내 마음이 찢어지게 아프다.

숨이 턱턱 막히는 경조사비에 한 푼이라도 아껴 보려다 벌어진 사건으로 
이제야 이 불효녀는 하루 종일 눈물을 흘리며 자식들 키워 시집장가보내기까지 감당했어야 할 부모로서의 무게를 이해하고 가슴이 아린다.

지나친 허례허식에 휘둘린 우리 사회의 경조사비 품앗이가 과연 정말 품앗이인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본인 받을 거 다 받으면 모임을 빠지는 사람, 뭔가 받을 게 생길 때 쯤 뜬금없이 모임에 들어가는 사람, 행사를 마치고 누구누구만 축의금을 안 했더라, 조의금을 안 했더라하면서 까는 사람, 품앗이라는 말로 얄밉게 자기 받을 거 다 받으면 회칙을 개정하자고 하는 사람 등등.

어쩌다 돈이 없어 그냥 지나치면 그 당사자를 1년에 한 두번 볼까말까 했는데 그 이후에는 왜 그렇게 자주 마주치는지 참 아이러니다. 남편도 같은 말을 하면서 둘이 쳐다보고 웃는다. 얼굴에 철판을 깐채 안 하고 넘어가는 것도 쉽지 않다.

경조사비 지옥에서 벗어나는 멋진 해법은 없을까? 균형을 잘 맞춰야 하는 우리 부부는 답답할 따름이다.


 
덧붙이는 글 여수넷통 뉴스에도 송고 합니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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