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박사과정을 위해 캘리포니아로의 이사, 사춘기 아들의 결정을 도운 것은?

미국 현지 롤 플레이오프 관람기. 음지보다는 양지에서 접하는 게임.

검토 완료

김민정(whoamin)등록 2024.06.04 13:20
교육현장에서 느껴지는 좋은 정책의 부재 때문에, 무작정 교육 정책 석사를 지원해서 아이와 둘이 미국에 온 지 얼마 같은데, 눈 깜빡해보니 올 때에는 계획에도 없었던 박사과정을 지원해서 어느 지역으로 갈지 결정할 시간이 되었다.

그중 한 군데는 미대륙의 반대쪽 끝 캘리포니아에 있는 대학원. 청소년기부터 미국 거주 도합 10년이 넘었지만, 서부에 3일 이상 있어본 적이 없는 동부 촌사람에게는, 할리우드라는 단어 정도로 생활감이 없는 지역이다. 그 지역의 박사과정 프로그램이 매력적이기는 했지만, 겁이 났다. 나를 따라 미국에 와서 2년에 걸쳐 생일에 초대할 친구들도 생기고, 나름 학교 시스템에도 적응한 민감한 청소년기의 아이에게, 또다시 전혀 낯선 지역으로 전학하라고 해야 하다니. 내 욕심 때문에, 아이가 불안정한 사춘기를 보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어느 것도 선뜻 선택하기 힘들었기에, 겁만 내지 말고 일단 그 지역을 가보기로 했다. 붙어도 가지도 않을 거면 왜 그 고생을 해서 지원서를 쓰고 했는지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원망할 것 같았다. 아이에게도 설명했다.

"엄마가 일을 하다가 미국으로 석사 공부를 하러 온 거 알지? 너도 엄마랑 같이 오겠다고 해서 함께 미국으로 왔잖아. 석사과정 얼마 전에 마쳤고 한국으로 돌아갈지 고민했었는데, 엄마 인생의 다음 스텝으로는 박사과정이 맞는 것 같아서, 지원했었어. 최종 고민은 지금 사는 지역 근처인 학교 한 군데, 또 완전히 미국 반대편 해변가에 있는 학교에 합격했는데, 엄마도 이름만 들어본 지역이라 이사 가도 될 만큼 마음이 갈지는 모르겠어. 너 봄방학에 같이 가볼까 하는데 어때? 가면 디즈니랜드나 유니버설 스튜디오 같은 테마파크나, 해변이나 네가 가보고 싶은 관광지도 검색해서 한두 군데는 갈 수 있을 거야."

내 학교나 동네만 구경하러 간다고 하면 집돌이 인 아들이 거절할까 봐, 혹할만한 어트랙션을 몇 군데 넣어서 미끼를 던진다.

"너 봄방학은 금요일부터 그 다다음 주 월요일까지 열흘 정도 되는데, 방학 시작한 주말은 집에서 쉬고, 월요일에 가서 토요일에 돌아오면, 토요일 밤하고 일요일은 집에서 쉬고 다시 학교 가면 돼. 친구들도 저번에 보니까 캐나다 간다 어디 간다 하던데, 방학 끝나고 봄방학 때 각자 뭐 했는지 얘기해 보자 하면 말할 거리도 생기고, 어때? "

휴일은 온전하게 집에서 늘어지고 싶어 하고, 빡빡한 일정을 싫어하는 아들의 '방학인데 못 쉬면 어떡하지?'의 반박도 미리 봉쇄하고 정당성도 부여해 본다.

그러자 어떤 점이 먹혔는지 모르겠지만, 웬일인지 흔쾌한 허락이 떨어졌다.

여행 계획을 잡아보는 동안, 집돌이 아들에게 캘리포니아 해안 도시로의 이사가 어필할 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알아보았다. 아무래도 큰 한인 타운이 가까운 곳에 있어서 오는 장점 몇 가지. 1) 비슷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친구들이 많지 않을까, 2) 식당이나 찜질방 등 아이가 한국에서 그리워하는 것들도 더 인접지역에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아이에게 가장 어필되었던 포인트는 생각하지 못했던 남동생과의 대화에서 나타났다.
"거기 롤 (League of Legend) 만든 회사 라이엇 (Riot Games) 있잖아. 회사 방문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아마 대회도 할걸?"

아이가 미국 suburb에 한국인이 거의 없는 학교로 와서, 찐친을 만들지 못했던 이유 중의 하나였던 리그오브레전드. 한국과는 달리 여기 친구들은 포트나이트나 마인크래프트만 하고 (또는 프리미어리그), 본인이 아는 한 한 명도 이 게임을 하는 친구는 없다고 했다.

'그래? 한번 대회 시간이 맞으면 직관을 가볼까?' 하고 예매 사이트를 들어갔더니, 마치 운명처럼 한자리가 보였다.

 

LCS 플레이오프 운명같은 한자리 ⓒ 김민정

 
와. 이건 가라는 거지? 싶어, 아이만 들여보내야 하는 것이 불안했음에도 일단 예매했다. 20불이면, 아이에게 점수 따는 것에 비하면 가격도 나쁘지 않다.


중간에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간 것을 제외하고는, 내가 이사 갈 만한 지역들을 알아보러 다니는 동안 아이는 에어비앤비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길었다. 그리고 다시 동부로 돌아오는 밤 비행기를 타는 날 낮, 우리는 데이트를 하는 기분으로 내비게이션에 Riot Games를 입력했다.

Fan Entrance 싸인를 다급히 따라가니 라이엇 게임 아레나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하는 웰컴 벽이 나타났다. 굿즈를 판매하는 곳도, 즐거운 관람을 위한 컨세션 스탠드도 모두 게임관련 메뉴와 이미지 꾸며져있었다. 
   
북미 리그경기이지만, 80%는 한국 선수들이었던 선수들의 포스터를 지나며, 아이의 흥분도가 올라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는 롤은 매일 한두 판을 할 만큼 즐겨 하지만, 경기를 보는 관람형 게이머는 아닌 데다가, 영어로 진행되는 경기는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아이가 경기를 즐길 수 있도록, 경기 전 날 경기 일정 페이지를 보여주며, 한국인 선수 비율을 알려주고, 관련 영상을 한두 개 보여주었지만, '과연 이 관람이 아이가 이사를 해도 괜찮다고 생각할만 큼의 가점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취켓팅 경험에서 얻은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들어가 잡을 수있었던 기적같은 맨 앞자리 두자리의 경기장의 시야는 훌륭했고, 선수들이 소통하는 것도 들을 수 있었다. 아레나 안은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컨세션 스탠드에서 사 온 음식을 먹으며 경기 시작을 기대하는 여중생과 부모님. 좋아하는 게임 캐릭터 모자나 지지하는 팀 굿즈를 착용하고 신이 난 팬들. 8절 스케치북 정도의 응원 슬로건에 재치 있는 문구를 써서 카메라가 올 때마다 들어 올리는 관람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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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L 북미리그 대회장 모두의 흥분이 느껴졌던 경기장 ⓒ 김민정

 
플레이오프여서 일 수도 있지만, 팬들의 에너지와 해설들의 에너지는 팬이나 게임 플레이어가 아닌 나조차 누군가를 응원하고 싶게 했다. 화려한 전광판 효과가 나올 때마다, 아이는 휴대폰을 들어 영상을 촬영했다. 첫 경기를 보는 동안, 아이와 나는 응원하는 팀이 생겼고, 깔끔하게 짧고 굵게 3:0으로 승리하였다. 이긴 팀이든 진 팀이든 아쉬움은 있어도, 축하와 환호가 더 컸다. 돌아 나오는 길에는 입장하면서 본 웰컴 벽에서, 청소년 아들의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가족을 보고, 우리도 기념사진을 남겼다. 

여행이 끝나고 동부의 집으로 돌아온 후, 아이에게 만약에 얼마 전에 다녀온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는 쪽으로 엄마가 선택한다면 어떨 것 같냐고 물었다. 아이는
"있어도 괜찮고 이사 가도 괜찮아. 지금 동네에 꽤나 친구를 사귀어 놓은 것은 아깝지만, 거기는 거기 나름의 메리트가 있으니까" 라고 말했다.

한국 나이로 중2인 아이와는 최근에 게임으로 일상에 충실하지 못하는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게임에 대해 우려도 되는 시기이지만, 노출도를 더 늘리는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이 부정적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아이가 말한 '메리트'도 단순히 새 동네가 게임에 더 우호적일 것 같아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이 지역으로 이사하게 된다면, 아이는 주말마다 용돈이 허락하는 선에서 게임을 보러 올 수 있을 것이다. [플레이오프가 아닌 날들은 더 저렴하기를 바라본다.] 접하는 콘텐츠는 같은 게임일지라도, 게임만 수시간을 하는 것보다 더 건강한 방법 문화를 즐기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게임 관련 업계에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것이고, 같은 팀을 응원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같은 팀을 응원하지 않아도, 게임 내에서 긴시간을 보내며 적대적 대화를 접하는 대신, 음지보다는 양지에서 관심사를 공유하고 지지받는 기분을 느끼며 성장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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