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코리아 공식 유튜브 채널에 등장한 '집게 손' 논란 뒤 회사의 사과와 직원의 징계를 문제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를 잘못으로 상정하고 당사자에 책임을 묻는 것이 '페미니즘 사상 검열'이란 논지다. '집게 손'은 평범한 손동작인데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유독 여성 노동자의 '집게 손'에만 해고를 요구하는 마녀사냥이 일고 있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라 하겠다.
이런 글에 그냥 넘어갈 수만은 없는 것은 내가 아끼는 매체 메인화면에 이 같은 글이 기사로써 실렸기 때문이다. 혐오를 비판하는 듯 하면서도 실제로는 혐오를 조장하고 방치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독자가 자유롭게 의사표명을 할 수 있는 댓글란마저 이례적으로 막아둔 행태가 당혹스럽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쓴다. 르노코리아 유튜브 채널에 등장한 '집게 손'엔 분명한 문제가 있다. 적어도 상당한 비판이 공식적인 경로로써 제기돼야만 마땅하다. 혐오가 억눌려 은밀히 자라나지 못하도록, 정오의 햇살아래 시비를 따질 수 있도록 논의돼야 한다.
▲ 르노 인사이드 르노코리아 공식유튜브 채널에서 한 출연자가 남성혐오의 상징인 '집게 손' 동작을 취해 논란이 됐다. ⓒ 르노코리아
커뮤니티서 자라나 시민사회로 건너온 '혐오'
영상엔 수차례 '집게 손' 모양이 등장한다. 통상 그와 같은 손동작은 특정한 정도와 수준, 크기 등을 가리키는데 쓰고는 하는 것인데, 영상에선 그와 같은 장면이 그와 같은 맥락 없이 수시로 등장한다. 시승후기 장면 등에서 쓰인 그 동작은 담당자의 선택에 의해 지정되는 썸네일로까지 뽑혔다. 'SM6 대장 지금 만나러 갑니다'라는 상황이나 '오토파킹 이제 설명해주세요'란 대사와 '집게 손'의 맥락적 연관성을 누구도 답하지 못한다.
논란 뒤 포착된 다른 영상 속 같은 이의 '집게 손' 장면들은 이와 같은 동작이 다분히 의도적으로 쓰였을 수 있다는 의심을 키운다. 논란된 영상과 마찬가지로 '집게 손'이 썸네일로 쓰인 영상 또한 추가로 발견됐다. 상당수가 '집게 손'의 상용례에서 벗어난 어색한 동작이다.
문제가 일어난 뒤 논란의 당사자는 다음과 같은 사과를 남겼다. "특정 손 모양이 문제가 되는 혐오 행동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내 영상에서 표현한 손 모양이 그런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고, "얼굴이 노출되는 영상 콘텐츠 특성상 문제가 될 수 있는 행동을 의도를 가지고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이다. 요컨대 논란인 건 알았으나 우연일 뿐이라는 얘기다.
이제부터 필요한 건 논리다. 논리학은 어느 누구의 것일 수 없는 합리의 도구, 즉 이성으로써 옳고 그름을 가려낸다. 필요한 건 참이 되는 명제를 구하는 것이다.
첫째. 2024년 한국에서 '집게 손'은 혐오의 상징으로써 쓰이고 있다. 커뮤니티 '메갈리아'에서 집게 손은 '한국남성의 성기가 작다'는 모욕과 혐오의 표징이다. 그저 커뮤니티 안에서 통용되는 수준을 넘어 수차례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대중과 긴밀히 소통하는 마케팅 업무 종사자라면 통상의 직역보다 이와 같은 표현에 깊은 이해가 있을 것을 기대할 수 있다. 논란의 당사자가 언급한 대로 '문제가 되는 혐오 행동'이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 인종차별 우루과이 남자축구 세계적 미드필더 페데리코 발베르데가 눈을 찢는 포즈를 취하는 모습. ⓒ FIFA
혐오의 상징, '집게 손' 뿐 아냐
둘째. 혐오의 상징은 '집게 손'이 처음이 아니다. 오늘날 욱일승천기는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이고, 하켄크로이츠와 독일 나치의 인사법인 오른 손바닥을 앞으로 쭉 뻗어 내보이며 부동자세를 취하는 것은 독일 군국주의의 상징이다. 수많은 무고한 생명을 죽인 이들의 상징으로써, 이들은 현대사회에서 금기시돼온 지 오래다. 그저 햇살이 뻗어나가는 멋진 문양일 뿐인데, 그를 활용한 깃발과 패션, 그림을 우리는 옳지 못하다고 말한다. 그저 오른손을 뻗는 멋진 경례일 뿐인데, 우리는 그와 같은 동작이 부적절하다고 말한다.
보다 가까운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 유럽이나 남미 여행을 가면 수시로 마주치게 되는 동작이 있다. 눈을 양쪽으로 길쭉하게 찢어 보이는 행위다. 이는 동양인에 대한 선입견, 즉 동양인은 눈이 작다는 것을 드러내는 대표적 인종차별행위로 꼽힌다. 워낙 유명하고 흔히 쓰이는 동작이어서 이 같은 동작을 하는 이들에게서 인종차별인 줄 모르고 그저 동양인을 가리키는 동작인 줄 알았다는 둥의 변명을 쉽게 들을 수 있다. 말하자면 이미 상징화된 하나의 놀림인 것이다.
그러나 혐오의 상징이 혐오를 키운다는 판단에 따라 의식 있는 사회와 단체는 이를 엄격히 금지하고 제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스포츠의 영역이다. 손흥민 등 해외에서 활동하는 유명 스포츠 스타들은 이와 같은 일을 수시로 마주하는데, 협회며 연맹이 나서 그와 같은 동작을 취한 이들에게 징계를 내리고는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종차별적 상징인 바나나, 즉 유색인종을 바나나를 좋아하는 유인원과 동일시하는 행위 또한 징계의 대상이 되고는 한다. 스포츠 스타에게 바나나를 던져 선수가 경기를 거부하거나 하는 이야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메갈리아의 '집게 손'과 비슷한 사례로는 그와 유사한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의 손가락 사인을 들 수 있겠다. 일베의 초성을 따 ㅇ과 ㅂ을 형상화한 손가락 모양이 그들 사이의 인증 신호로써 쓰인 것이다. 이것이 커뮤니티를 넘어 대중매체며 개인들 사이에 은근히 스며들자 그에 대한 경각심이 인 건 자연스런 일이다. 혐오의 상징이 일상을 좀먹는 것에 반대한 시민들이 이를 적발해 차단에 나서며 그와 같은 상징이 제거되기에 이르렀다.
▲ 루벤 칼레프 OK사인으로 논란에 섰던 에스토니아 정치인 루벤 칼레프. 극우성향 정당 에스토니아국민보수당(EKRE) 소속이다. ⓒ 루벤 칼레프 페이스북
혐오에 잠식된 OK사인, 사회가 대처하는 방식
우리가 흔히 쓰는 오케이 사인 또한 마찬가지다. 미국 극우주의자며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시위에서 자주 목격되는 이 사인이 혐오의 표상이란 사실이 지난 몇 년 간 제법 알려졌다. 호주에서 50명을 죽인 총격 살인범이 법정에서 이 동작을 취한 건 혐오의 상징으로 오케이 사인이 알려지는 기폭제가 됐다.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붙이고 다른 손가락들을 편 오케이 사인을 혐오의 상징으로 지정해 알리고 있기까지 하다.
그래도 그렇지 오케이는 오케이지, 어떻게 혐오의 상징일 수 있느냐. 오케이 전체를 금지해서야 되겠느냐 하는 반박에도 분명한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혐오의 상징을 구분해 알리고, 그 쓰임을 차단하는 작업은 유의미한 일이다. 불행히도 오케이 사인은 혐오의 상징으로 오염되고 있다.
굳이 알리고 싶지 않지만 오케이 사인은 밧줄 올가미와 관련성이 있다. 수백 년 전 제국주의자와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올가미로 얼마나 많은 무고한 유색인종들을 죽여 왔는지를 떠올리면 그저 손동작 하나에 녹아든 상징에 어떠한 위험이 자리하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겠다. 여기다 거꾸로 보면 White People의 앞자리 'WP'처럼 보인단 것도 이 사인의 상징성에 힘을 싣는다.
이밖에도 혐오의 상징인 동작이 수십 개가 넘지만 더 적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중요한 건 일상적으로 취할 수 있는 동작과 떠올릴 수 있는 기호가 혐오의 상징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눈을 찢는 행위나 오케이 사인처럼 기존에 다른 쓰임이 큰 동작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셋째. 이와 같은 동작에 깃든 혐오를 알리고, 그와 같은 쓰임을 막는 것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일이다. 지혜는 지식으로부터 태어나게 마련, 아는 것은 알지 못하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혐오를 지지하는 이보다 공동체의 결속과 정의를 세우려는 이들의 힘이 강한 것은 지당하다. 그리하여 은밀히 퍼져나가는 혐오의 상징을 볕 아래 꺼내어 소독함으로써 공동체의 건전한 화합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혐오의 상징이 있다. 그와 같은 상징들이 일찍이 많았다. 대부분은 공개적으로 비판되며 바로잡힘으로써 사회적 가치를 공고히하고 질서를 확립하는 데 기여한다. 혐오표현이 확산되지 못하도록 인식을 공유하고 사용을 막는 것은 세계적 흐름이며 사회적 합의이기도 하다. '집게 손'이라고 다를 수 없는 일이다.
요컨대 르노코리아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집게 손'을 문제 삼고 비판하는 것은 유의미한 행위다. 심지어 그 쓰임이 용례와 다르고 불필요하게 썸네일로 선정되었으며 거듭 반복돼왔다는 것은 실제 혐오로써 그 동작이 쓰였을 수 있다는 의심을 짙게 하기까지 한다. 주지하다시피 그와 같은 동작이 쓰여 논란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도 하다. 대중 일반을 상대로 하는 마케팅 관련자는, 무엇보다 수많은 노동자의 노력을 빛바래게 할 수 있는 이 같은 행위를 피해야 하는 이로는 결코 해서는 안 되는 행위다.
▲ 대만 2016년 대만 한 중학교 개교기념일 행사에서 학생들이 나치를 떠올리게 하는 복장과 깃발로 퍼레이드를 펼쳐 논란이 된 모습. 이스라엘 정부가 정식 항의해 국제적 논란이 됐다. ⓒ 언론보도
'집게 손' 논란, 더욱 적극적으로 논의돼야
언론은 마땅히 사실을 폭넓게 알려 독자와 시민의 이해를 넓혀주어야 한다. 일방의 주장을 전달하기보다 논의가 보다 건전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앞서 나간 어느 기사는 남자 아이돌과 정치인의 '집게 손' 포즈와 논란이 된 여성 노동자의 '집게 손'을 비교하며 이것이 '페미니즘 사상 검열'이 되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 사이 맥락의 다름은, 혐오의 상징에 대한 사회적 제거의 필요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굳이 이로울 것 없는 이 글을 굳이 써내려가는 이유다.
페미니즘은 마땅한 학문과 사회운동 분파일 수 있다. 사회의 모든 주체는 사회적이며 역사적 맥락을 지니고, 그를 분석해 따지는 건 세상을 폭넓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지난 시대 여성들이 겪은 부조리를 바로잡는 일은 우리가 사는 시대의 마땅한 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집게 손'은 페미니즘 사상을 검열하는 무엇일 수 없다. 커뮤니티란 것에 발 한 번 붙여본 적 없는 나와 같은 사람도 그 동작의 태동부터 오늘에 이르는 역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례와 쓰임이 있었고, 이를 제어해야 한다는 사회적 목소리까지 일어났으나 그때마다 학계도, 언론도, 온 사회가 책임을 방기했다. 그 속에서 일부 언론과 기고자들은 사실을 호도하기 일쑤였다.
내게 이 글을 쓰도록 한 통탄스런 기사의 말미에는 넥슨 사태에 대한 한국여성민우회의 성명문 일부가 인용돼 있다. "일부 소비자가 제기하는 '남성 혐오 논란'에 대해서만 게임사가 즉각 반응해 굴복하는 사건이 반복되면서, 기업을 휘두르고 여성 종사자를 괴롭히는 권능감과 재미를 위해 놀이처럼 이러한 논란을 일으키는 집단이 나타났다"는 내용이다. 과연 그러한가.
혐오에 일어난 게 정말 일부 소비자뿐인가. 그렇다면 한국의 의로운 시민들은 더욱 더 함께 일어나야만 한다. 그래야만 여성 종사자를 괴롭히는 권능과 재미가 아니라, 이 사회의 건강한 발전과 화합을 위한 일어남임을 알게 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정말이지 '집게 손'에 고통 받는 이는 누구인가. 그야말로 혐오의 피해자다.
▲ 르노코리아 논란이 된 장면 중 일부. ⓒ 르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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