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 교수님이 추천한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

책읽는 즐거움, 삶에 대한 통찰과 희망을 선사하는 2024 리딩코리아

검토 완료

박은선(caster5)등록 2024.07.16 16:16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은 대한민국 독서캠페인 <2024 리딩코리아>에서 정재승 교수님이 추천한 책입니다.
정재승 교수님은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과 <어른을 키우는 어른을 위한 심리학>을 추천하셨는데요. 2023년 리딩코리아에서는 <최재천의 공부>와 <유인원과의 산책>을, 2022년 리딩코리아에는 <프렌즈>와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를 추천하셨지요.

해마다 독서계의 흐름을 주도하는 인상적인 책을 선정하셨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의 삶을 통찰하게 해주는 책을 추천하셨습니다.


저는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을 읽으며 두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먼저 카이스트 김동원 교수의 '일본 근현대 과학사' 강의가 떠올랐는데요. 제가 카이스트 과학저널리즘대학원 석사 과정을 공부할 때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수업이었습니다.

일본이 어떻게 우리나라보다 먼저 산업화를 이루고 과학 분야에서 수많은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는지 냉정하게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지요. 반면에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는 '그 때 왜 그렇게밖에 못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깊게 각인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역사에 대해 냉소하며 자괴감까지 들어 속상했지요. 그런 저의 속상한 마음을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이 단번에 풀어줬습니다.

김동원 교수님의 강의 이야기를 조금만 해보겠습니다.
유럽과 미국의 과학사를 거쳐 일본 근현대 과학사 수업 시간이었습니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 대부분은 언론인이었는데, 강의를 시작하기 전 김동원 교수님이 "이렇게 긴 시간 수업을 듣는 게 오랜만일텐데 힘들지 않느냐"는 위로의 말씀을 건네자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서 볼멘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렇게 몇 마디 가벼운 대화가 오갔고, 잠시 말을 멈춘 김동원 교수는 짧은 한숨을 내쉰 뒤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오늘 제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친일파가 아니냐고 오해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친일파는 아닙니다. 그동안 신문 방송이 흔히들 이야기하던 것, 언론인 여러분들이 상식처럼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가 많이 나갈 것 같습니다."

도대체 우리가 일본에 대해 얼마나 잘못 알고 있기에 저러실까 싶었습니다. 강의 내용은 과연 어땠을까요?
김동원 교수가 신중하게 이야기를 꺼낼만 했습니다. 충격을 받았거든요.
'역시 우리는 과학기술에서 일본과 경쟁이 안되는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은1603년부터 1868년 메이지 유신이 나올 때까지 다른 시기에 비해 비교적 평안한 막부 정권 시기를 보냈습니다. 조선과 일본 모두 쇄국정책을 폈지만 일본은 나가사키 항구 하나는 열어놓고 외국과의 교역을 허용했으며 교역파트너도 일본 막부 정부가 정했습니다.

나가사키 항구를 찾는 네덜란드 상인들이 과학기술 서적과 물품을 들여오면서 일본사람들이 서양말을 배우기 시작했고, 막부에서도 계획적으로 서양말을 하는 사람을 키웠습니다.
그 사람들이 서양에서 들여온 서적을 번역했고 나가사키를 중심으로 네덜란드학, 즉 난학이 유행하게 됩니다.
난학은 문학과 철학까지 아울렀으며 그 중 과학과 기술 분야가 가장 인기를 끌었습니다.

1813년에 그려진 '감전놀이'를 하는 일본 사람들 그림이 있습니다. 감전놀이는 18세기 말 유럽에서 유행했는데, 일본 사람들은 이미 1813년에 전기를 이론이 아니라 몸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19세기 말 사이언스(science)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를 놓고 일본에서 해답이 나왔습니다.
오랜 경험을 통해 이미 과학을 구체적인 기계로 연결시키는 논리를 갖춘 일본이 결국 '과학' 이라는 새로운 한자말을 만들어냈지요." (김동원교수님의 일본 근현대과학사 강의 녹취록)

일본이 1853년에 개항하고 우리나라가 1876년에 개항했으니 두 나라가 개항한 시기는 23년의 차이가 납니다. 불과 23년의 차이인데 과학기술 발전에서 왜 이렇게 차이가 크게 났는지 의문을 품고 있었는데, 일본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가사키 항구를 열어놓고 유럽의 문물을 계속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죠.

"우리나라나 중국과 달리 일본은 국방에 관심있는 지배계층 사무라이가 과학에 큰 관심을 보였고 이후 정부 차원에서 과학 교육을 적극 실시했습니다.

메이지유신 정권은 1876년에 동경대를 설립하면서 대학을 서구를 향한 창으로 삼아 과학 기술 농업 분야의 교수진을 전원 외국인으로 선발했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젊고 똑똑한 인재를 교수진으로 영입했으며, 그들은 훗날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되거나 미국 과학아카데미를 창설한 교수도 있을 만큼 우수한 인재들이었습니다.

최고의 엘리트들은 미국이나 유럽으로 유학을 보냈고, 유학에서 돌아온 인재가 늘어나면서 외국인 교수진을 일본인으로 교체했습니다. 일본인으로 모두 교체하는데까지 30년 걸렸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서구의 과학기술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며 산업화에 성공했지요.

1949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유키와 히데키를 시작으로 일본은 서구 제국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가 되었고, 21세기 이후 자연과학 부문에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습니다." (김동원교수님의 일본 근현대과학사 강의 녹취록)
김동원교수의 일본 근현대 과학사 강의가 진행된 두 시간 동안, 강의실 여기저기에서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습니다.
탈아입구를 내세우며 서구를 추종한 일본을 비웃어왔는데, 상상못할 정도로 과학기술을 받아들이고 정착시킨 일본의 역사에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지요. 동시에 '우리는 왜 그렇게 하지 못했나'하는 아쉬움과 원망섞인 탄식이 흘러나왔던 겁니다.
저는 그 때의 충격 탓에 그동안 냉소적인 자조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민태기 박사님이 그것을 해결해주신거죠.

조선 지식인들의 치열한 발자취를 따라가다보니 빼앗겼던 우리의 과학사를 되찾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정부 지원없이 개인이 자신의 노력만으로 과학기술을 공부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을까요. 그런데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알리는 순회강연회까지 열었다고 하니 저도 모르게 탄성을 터져 나왔습니다.

구름처럼 몰려든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조선의 순회강연회처럼 공연과 강연이 어우러진 과학강연회를 한번 기획해볼까 싶어 수첩에 적어 두었습니다.

일제의 식민지배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해보면서 그렇게 힘들여 가꿔온 과학기술인데 갑작스럽게 R&D 예산을 삭감하다니, 조선의 과학자들은 어떻게 보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회 책읽는청주 포스터(2006)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을 읽으며 두 번째로 떠오른 것은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를 쓴 이미륵 작가였습니다.
<압록강은 흐른다>는 2006년 청주시립도서관과 CJB가 함께 시작한 책읽는 청주 독서 캠페인에서 첫 번째 함께 읽을 책으로 선정되었고 일년 동안 시민들이 함께 읽은 책입니다.

민태기 박사님이 찾아낸 조선의 지식인들 가운데 독일에서 유학한 황진남 선생과 이극로 선생이 나옵니다.
우선 황진남은 가족을 따라 하와이로 이민갔다가 1916년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광산과에 입학했지만 3.1운동을 계기로 학업을 중단하고 독립운동에 투신합니다. 임시정부에서 활약하다 1921년 독일로 가 베를린대학에서 다시 학업을 이어가지요.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경제가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던 때 황진남은 미주 한인들에게 유학생들의 절박한 상황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내지요. 편지는 미국에 있는 교포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교포들은 대대적인 모금활동을 벌여 유학생 대표에게 송금을 합니다. 그런데 동포들이 보낸 구원금이 베를린에 도착하기 직전 황진남은 더이상 독일 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프랑스 파리로 떠났고, 교포들이 보낸 성금은 이극로가 수령합니다. 여기서 언어천재 이극로가 등장하지요.

이극로는 1922년부터 베를린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면서 언어학을 부전공했고, 대학에 한국어 강좌를 만들어 스스로 강의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시기에 이미륵 작가도 황진남 이극로와 함께 독일 유학생들이 결성한 '유덕고려학우회' 활동을 함께 하며 독립운동을 펼쳤습니다.

마침 국가보훈부가 일제의 만행과 한인의 독립의지를 세계에 알린 독일유학생 황진남, 이의경, 김갑수 지사를 2024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의경은 이미륵 작가의 본명이지요. 이미륵 작가는 유덕고려학우회를 통해 황진남과 이어지고 1927년 뮌헨대학에 재학하던 때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세계피압박민족결의대회'에 이극로를 단장으로 한 한국대표단에 참가하여 최종 결의안에 한국대표단의 결의문을 포함시키는 성과를 거둡니다.

이미륵은 경성의학전문학교를 다니다 3.1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일본 경찰의 체포를 피해 독일로 망명한 디아스포라입니다.
<압록강은 흐른다>는 1946년 출판되었고 그 해 독일어로 쓰여진 가장 훌륭한 책에 선정될만큼 문학성을 인정받으며 교과서에 실리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의 행간에서 이미륵 작가를 떠올렸습니다.
아마 책읽는청주를 시작하면서 <압록강은 흐른다>를 첫 번째 책으로 선정했기 때문에 황진남과 이극로의 독일 활약상이 더욱 각별하게 눈에 들어왔던 것 같습니다.
2024년 책읽는청주도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을 선택했습니다.
2024년의 책읽는청주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과 2006년 첫 번째 책 <압록강은 흐른다>가 이렇게 책과 책으로 연결되는 극적인 장면을 생각하면서 저는 혼자서 감동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엄혹한 시기에 조선 백성들이 각성하도록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소개했던 조선 지식인들의 열정이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맞이하는 햇살처럼 느껴졌습니다.
-책읽는 즐거움, 삶에 대한 통찰과 희망을 선사하는2024 리딩코리아, 우리를 들여다 봅니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