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과거를 모은다... 콘텐츠 부자를 꿈꾸는 사람들

손오공 머리카락 부럽지 않은 온라인 분신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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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범준(mindofwoodman)등록 2024.07.19 15:50
독일 작가 미하엘 엔데가 쓴 소설 『모모』에는 회색 신사라는 무리가 등장한다. 마을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시간을 자기네 시간저축은행 저금하라고 꼬드기는 그들은 친구들과 노는 것도, 가족과 대화 나누는 것도, 하고 싶은 일을 상상하는 것도 '시간 낭비'라고 말한다. 여유로운 미래를 위해 사람들은 시간을 저금하기 시작한다. 여유가 사라지고 돈벌이에만 혈안이 된 사람들은 시간의 노예가 되어간다. 가족과 이웃들 사이에 소통이 끊긴 마을은 더 이상 인간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2024 서울공예문화축제에 참가한 M(멋)Z(진)세대 사원 P군 ⓒ 우드코디

 
유난히 더웠던 6월, 두 주간에 걸쳐 주말 이틀, 총 사흘간 서울공예문화축제 행사에 참여했다. 첫날 아침부터 새내기 MZ세대 사원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부스 오픈을 준비한다. 이윽고 관람객 맞이하려 부스에 선 젊은이들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이들은 모두 입사 1년이 채 되지 않은 친구들이다. 십수 년 전 나무 이름도 모르고 어디에 쓰는지도 몰랐던 목재 회사 초년병 시절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어느새 관람객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개막 행사가 겹쳐 한층 더 바빴던 오전 시간이 지나 오후로 접어들자 젊은 직원들 얼굴에 슬슬 웃음기가 돕니다.

"가지고 계신 폰으로 QR코드 찍어보시라고만 안내해 드렸는데 다들 흥미로워하시네요."
 

정해진 QR코드를 찍어 스태프에게 인증하면 목재 게임을 즐길 수 있다 ⓒ 우드코디

 
부스 안에 걸린 현수막과 홍보물에는 QR코드가 붙어있다. 어떤 QR코드를 찍으면 공장장의 '우드가이버' 유튜브 채널이 뜨고, 또 다른 QR코드는 '목재밥 30년 먹은 언니'라는 영업팀장의 블로그 글로 연결된다. 영상과 게시글에는 목재 수종에 관한 이야기도 있고, 직무에 얽힌 내용도 있다. 관리부 대리 블로그에는 사내 교육이 잘 끝났다는 이야기나 제조업을 향한 법적 규제가 나날이 촘촘해져 힘들다는 고민도 적혀있다.

온종일 축구장 한 개 반 넓이의 공장을 돌아다니며 일하는 그들은 틈나는 대로 업무를 글로 적고, 나무 이야기를 쓰고, 목제품 생산 과정을 영상에 담는다.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SNS로 소통하고 만나면 대화를 나눈다. 흘러온 시간 속 '수많았던 그들'은 그렇게 콘텐츠가 되어 각자의 SNS에 차곡차곡 쌓인다. 이 콘텐츠들 하나하나가 그들 대신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온라인 아바타(분신)인 셈이다.
 

'목재 무게를 맞춰라' 게임을 즐기는 관람객 모자(母子) ⓒ 우드코디

 
전시 마지막 날 아침부터 땡볕이 전시장 마당에 내리쬔다. 찡그린 얼굴로 손부채질을 하며 부스를 지나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QR코드를 찍어본다. QR코드로 소환된 게시글과 동영상은 그네들의 폰 안에서 자기 안에 담긴 스토리를 풀어낸다. 엄마폰으로 원목 제재하는 동영상을 보던 아이 눈이 점점 커진다.

'그래. 요새는 학용품도 쿠팡에 시키는데 세네 아름이 넘는 원목 켜는 모습을 어디서 봤겠니.'

코끝에 걸친 안경 너머로 폰을 보던 중년의 남성은 테이블에 놓인 영업팀장 명함을 챙긴다. 주머니 속에서 카카오톡 알람이 울린다.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가 방금 전에 700명을 넘었다는 공장장의 메시지다. 바로 답장을 보낸다. '축하드려요. 회식 한 번 하셔야죠? ^ ^'
 

부빙가(Guibourtia spp.) 나무로 만든 QR우드큐브 ⓒ 우드코디

 
1988년 대한민국이 88서울올림픽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던 그 해, 미국 복사기 제조회사인 제록스에서는 '유비쿼터스 컴퓨팅'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유비쿼터스는 라틴어로 시공을 초월해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는 뜻이다. 당시 연구팀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컴퓨터를 나눠 쓰는 시대가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거쳐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정보를 주고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36년이 지났다. 정말로 그렇게 어느 목재 회사 직장인들이 여태 쌓은 과거를 오늘 들른 관람객들의 스마트폰에 띄우고 '좋아요'를 받는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앞으로 또 누군가를 만날 거라는 생각에 나도 마음을 다잡고 오늘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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