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로 살아가는 것 ?

배려가 담긴 배려

검토 완료

정혜진(a1stgrade)등록 2024.08.04 11:20
공주에서 계약한 첫 학교에서 1학년을 맡았다. 1학년 특성상 베테랑 선생님들이 주 구성원이었고 학년 부장이 나와 비슷한 연배였다. 그동안 내가 겪은 많은 어른의 특징은 개인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고 자신들의 의견을 잘 굽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최대한 개인적인 사람으로 보이려 애썼지만, 선생님들은 따습게 대해 주셨고 무엇보다 먹을 것을 그렇게 챙겨 주셨다. 어딜 가든 어른들이 호감을 표현하는 방법은 맛있는 것을 입에 넣어주는 것인가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 입에 음식을 넣어주며 행복함을 느끼는 것이 우리네 정서 '정'인 것 같다. '정'이라 감정에는 따뜻함, 안쓰러움, 미안함, 관심, 온기, 어여쁨. 그리고 또 무엇이 있을까?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다양한 마음들이 들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애 선생님을 특히나 좋아했고 그분을 내 일생 후반의 롤모델로 삼기로 했다.
선생님은 밝고, 긍정적이시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적절한 선을 지키며 배려한다. 지나친 배려는 상대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선생님의 그런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나는 깨달았다. 나만 상처받았다고 생각했던 기억들이 그들에게는 불편한 호의일 수 있었다는 것을. 그렇게 적의는 만들어진다.
 
나는 배려하는 삶이 늘 옳다고 생각했다.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배려는 때에 따라 독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내 교만일 수도 있고 상대의 자존심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내 입장보다는 진심으로 상대가 필요로 하는 일인지를 먼저 판단하는 눈과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나는 영애 선생님께 배려라는 말의 깊이를 배웠다.

선생님 정년퇴직을 앞둔 어느 날 단둘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40년 넘는 교직 생활을 정리하시는 마음이 어떨까 싶어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 주셨다.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 공부를 잘했지만, 중학교, 고등학교를 입학할 형편이 안되었을 때 좋은 어른을 만나 학업을 마쳤다고 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모교에 꾸준히 장학금을 후원해 10명 가까운 학생들을 공부시켰다는 말씀도 해 주셨다.
 
우리가 살아 온 환경과 시간은 무늬로 또는 상처로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이 어떻게 자리를 잡느냐는 어떤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선생님은 자신의 시간을 아름다운 무늬로 새긴 분 같았다. 그럼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 흔적은 상처로 남아있는 것이 내 탓은 아니라고 우기며 누군가에게 화살을 옮긴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상처만 더 커지고 따가울 뿐이다.
 
나도 오랫동안 기부를 하고 있다. 첫 월급을 받을 때 만원으로 시작하며 매년 월급이 오를 때마다 만 원씩 올리기로 했었다. 내가 월급을 받은 지 25년이 지났고 그 크기도 좀 커졌다. 나는 아프리카의 아이 둘을 후원해 성인으로 키웠고 지금 세 번째 아이가 자라고 있다. 여기저기 적은 금액이지만 보탬이 되어보려 노력한다. 남을 위한 소소한 마음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세상에 쓸모를 부여해 주었다.
 
사람은 나를 위해, 너를 위해, 우리를 위해 산다.
내가 우리를 위해 사는 것은 내 안의 상처를 고운 무늬로 만들고 싶은 사심에서 시작되었다. 그 사심이 커지다 보니 내 만족이 되었고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 되기도 했다.
나는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오른손이 한 일은 온 동네가 알아야 한다. 소문이 널리 널리 퍼져 나를 흉내를 내고 싶은 누군가가 생기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가난하고 행복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영애 선생님처럼. 힘든 시기를 보낸 상처가 있기에 더욱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흔적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의 흔적이 상처가 아닌 무늬로 새겨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워주는 손은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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