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단독주택 리모델링을 맡게 된 건설업자라고 본인을 소개한 그가 곧 메신저 앱으로 사진을 보내왔다. 문틀에서 분리된 원목 현관문인데 형태도 약간 뒤틀렸고 군데군데 거뭇거뭇하게 변했다. 다시 전화를 걸어 묻는다.
"사진 보니 레드오크 같은데 왜 이 나무로 현관문을 만드셨나요?"
"처음부터 우리가 지은 건물이 아니라서 그 내용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근데 레드오크는 쓰면 안 되나요?"
"현관문 만들 때 써서는 안되는 나무라는 건 없지만, 제 경험상 레드오크는 외부용으로는 그다지 권하고 싶은 수종은 아닙니다."
▲ 모든 건조를 마친 화이트오크 판재의 수평을 잡기 위해 직재(直材) 작업을 하고 있다 ⓒ 우드코디
거의 모든 공간을 갖가지 목재로 꾸며놓은 회사에 오래 다니다 보니 목재가 변해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어떤 나무는 갈수록 중후하게 색이 바뀌기도 하고, 어떤 나무는 뒤틀리거나 심지어 썩기도 한다. 글로 배운 게 아니라 눈으로 보면서 나무를 알아가고 목재로서 쓰임을 익힌 셈이다. 그런데 그런 경험들을 하나둘씩 블로그 글로 정리하다 보니 용어를 잘 모르고 표현도 어색해서 요즘은 관련 서적도 뒤적이고, 인터넷도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
▲ 직재(直材) 작업으로 평평하고 곧게 된 화이트오크 판재를 대패질한 모습 ⓒ 우드코디
오크(oak)는 우리나라에서 참나무라고 부른다. 인류는 철기시대에 이르러 톱의 강도가 높아지면서 참나무류 같은 단단한 나무도 켤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전통 건축과 가구 제작에 참나무가 많이 사용된 것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참나무는 그 쓰임새가 많고 활용도가 좋아 많은 사랑을 받다. 특히 참나무 장작은 연기가 적고 오래 타며 발열량도 좋아 '참숯'이라고 부른다. 역설적으로 이 때문에 산업혁명 초기 철을 생산하는 데 고로를 달구는 연료로 쓰이며 많은 참나무 숲이 사라지기도 했다.
▲ 레드오크 단면에 도관(물관) 구멍이 잘 보인다 ⓒ 우드코디
국내산 참나무는 대개 지름이 작고 수형(나무의 모양)이 구불구불해 넓고 곧은 판재를 만들기 어렵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수입 참나무라고 할 수 있는 '화이트 오크'와 '레드 오크'를 많이 쓴다. 레드오크는 실내를 치장할 인테리어 재료나 실내용 가구와 집기를 만들 때 많이 사용된다. 오크류의 특징적인 결이 잘 드러나고 하드우드 계열이라 좋은 내구성을 기대할 수 있다. 따뜻함이 느껴지는 연분홍빛 색상과 화이트오크에 비해 좋은 가성비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은 수종이다.
▲ 레드오크로 만든 현관문 하단이 오랜 기간 빗물 등에 닿아 거멓게 변했다｜ 구 유림목재 덕은공장 내 예재관 외부 필로티 ⓒ 우드코디
그런데 레드오크는 심재 도관(숲에서 나무가 대사 활동을 할 때 수분과 자양분이 오가는 물관)이 비어 있는 다공성 목재다. 국내 상수리나무나 굴참나무 같은 참나무류도 도관이 꽉 막혀 있지는 않다. 반면 북미산 화이트오크는 오래 자랄수록 도관이 타일로시스라는 물질로 채워져 막힌다. 때문에 화이트오크가 레드오크에 비해 더 무겁고 강도도 높다. 또한 타일로시스로 도관이 메워진 화이트오크는 방수성이 뛰어나고 부후균(목재를 썩게 하는 균)에도 강한 저항성을 지닌다. 한때 바다를 지배하여 세계를 제패했던 영국 해군이 군함을 만들 때 화이트오크를 고집했던 이유기도 하다.
▲ 화이트오크 횡단면에 방사조직이 촘촘하다 ⓒ 우드코디
요즘은 날씨에 그대로 노출되는 야외용 목재를 사용할 때 더 많은 선택지들이 있다. 동남아 지역에서 생산하는 크윌라(Kwila)나 티크(Teak), 남미 지역에서 자라는 이페(Ipe), 중부 아프리카의 이로코(Iloko)와 아프젤리아(Afzelia) 등은 화이트오크에 비해 훨씬 단단하고 더 높은 내후성(weatherbility : 악천후에 견디는 성질)을 갖고 있다. 어쨌거나 전화 주신 제주도 손님이 조만간 들리겠다고 하니 뭘 보여드릴지 잘 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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