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배송된 꿀단지들이 전한 속깊은 메시지

양심을 지키며 사는 삶은 하나하나 모두 칭찬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검토 완료

조혜진(clairecho)등록 2024.08.12 14:30
우리 가족은 꿀을 좋아하는 편이다.
꿀이 들어간 다양한 음식을 먹는데 그 중 최고는 단연 꿀을 한바퀴 휙 둘러 먹는 요거트이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어딘지 아쉬운 입맛을 다실 무렵이면 여지 없이 등장해서 우리의 장건강을 돕기도 하고 식사의 끝을 장식해준다.

간식으로 치즈피자나 가래떡에 찍어 먹는 꿀도 무시할 수 없다.
아기곰 푸우처럼 볼록한 배를 자랑하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써야할 정도로 꿀은 우리 가족에게 없어서는 안될 식재료 중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맛있는 꿀을 주기적으로 주문하는 일은 주부의 주요한 업무 중의 하나가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소비자로서 나는 우리 가정에 꿀이 떨어질 무렵이면 일초도 쉬지 않는 시계처럼 성실하게 주문을 이행하는 중이었다.

지난 주, 여름휴가를 보내고 돌아온 집의 찬장에서 나는 그만 텅 비어버린 꿀통을 발견하고 말았다.
서둘러 *이디어스에 주문을 넣어 우리 가족에게 한동안 달콤함을 선사할 500g의 아카시아 꿀 한통의 주문을 마쳤다.
택배 배송이므로 당연히 며칠은 걸릴거라 여기고 잊어버리려던 참이었다.
주문을 넣은 바로 다음날 도착했다는 문자와 함께 생각보다 큰 상자가 우리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딱 500g의 꿀을 주문했을 뿐인데 상자가 조금 커보였다.
과다포장을 하신걸까, 의아해하며 들어올린 순간 엄청난 무게에 놀라고 말았다.
낑낑거리며 신발장 쪽으로 겨우 집어넣은 후 저녁무렵 퇴근한 남편에게 오픈을 부탁했다.
그는 내게 한마디 묻지도 않고 마치 연탄을 나르듯 오픈한 상자에서 꺼낸 무거운 꿀통을 하나씩 하나씩 차례로 집안에 쌓아두었다.

저녁식사 준비를 마치고 쌓여있는 꿀통을 본 나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상자 하나당 2킬로는 족히 넘어보이는 꿀단지가 무려 네 개나 있었으니까...
"자기야, 이거 뭐야?" 묻는 내게 남편은 되려 "자기가 선물하려고 많이 주문한 줄 알았어."라며 어이 없는 답변을 했다.
내가 의논도 없이 이 많은 꿀단지를 주문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그가 몹시 신기할 따름이었다.


다음날 아침, 판매자분께 오배송되었다고 빨리 처리해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하지만 답변을 받지 못한 채 오후 시간이 되었다.
몹시 귀찮았지만 꿀단지를 계속 놔둘 수는 없었다.
다시 중간 플랫폼인 *이디어스로 연락을 했다.
판매자분께 연락이 닿지 않으니 직접 처리해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하루를 보내는 중간중간 연락이 왔는지 확인해가면서 보낸 끝에 드디어 나는 꿀단지를 돌려보낼 수 있었다.


아마도 판매자분이 많이 바쁘셨던 것 같다.
소식이 닿자 곧바로 사과와 감사 인사가 전해졌다.
우리집 한구석에 쌓여있던 꿀단지의 반송도 눈깜짝할 사이에 진행되었다.
너무 빨리 오셨기에 포장도 못했다고 말하는 내게 기사님은 다 처리하시겠다며 물품과 오픈한 상자만 돌려달라고 하셨다.
마치 무거운 연탄을 나르듯 힘겹게 두개씩 총 네개의 꿀단지를 돌려드렸다.
모든 게 번개처럼 진행되었다.
그리고 마음이 후련해졌다. 그뿐이었다.

이제 미안함에 대한 답례로 손가락만한 샘플 꿀을 몇개 더 받게 될 것 같다고 남편에게 말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 내게 남편은 갑자기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따뜻한 칭찬을 해주었다.
평소 서로를 칭찬하기보다 장난끼를 섞어 놀리기 바빴기에 갑자기 훅 들어온 남편의 칭찬은 나를 멈칫하게 했다.
문득 이 순간이 아마도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판매자분은 빠르게 움직여주셨다.
번개 같았던 반품택배처럼 우리의 꿀도 반송한 그 다음날 즉시 도착했다.
아마도 반품을 진행하시며 우리 물건을 바로 보내신 듯했다.

감사하게도 그 안에는 내가 주문한 꿀과 동일한 양의 꿀이 하나 더 들어있었다.
스리랑카산 시나몬 스틱도 함께였다.
생각보다 큰 선물을 두개나 더 넣어주신 거였다.

따뜻한 마음이 전달되었다.
나 역시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메시지를 남겼다.
시나몬스틱은 어찌 먹는 것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잘 먹겠다는 말과 함께...
그리고 그에 대한 장문의 답변은 지금 이 글을 쓰며 발견했다.
시나몬스틱으로 사장님도 8킬로나 감량하셨다고 꼭 드셔보시라는 자세한 설명을 적어 보내주셨다.
'얼마나 오랫동안 메시지를 적으셨을까' 생각하니 갑자기 내가 세상을 너무 나쁘게만 생각했던 것 같다.

인터넷을 뒤졌을 때 방향제로 쓴다는 말을 보고 물 없이 꽃병에 꽂아두었던 시나몬을 얼른 꺼내서 씻었다.
급한대로 냄비를 꺼내 물을 붓고 우렸다.
좋아하는 꿀도 함께 넣어서 차를 만들었다.
말씀대로 향이 정말 풍부하다.
훌륭한 선물이라는 생각에 다시 한번 마음이 훈훈해졌다.

무더운 여름날, 오배송된 택배는 그저 귀찮은 일이었다.
급한 성질 탓에 집안 한구석을 차지한 물건을 빨리 치우려던 것 뿐인데 판매자분의 따뜻한 마음에 글을 쓰게 되었다.

나만 양심을 지키며 산다고, 명예도 아니고 그까짓 양심이 뭐가 그리 중요하기에 이렇게 사는 걸까, 자괴감을 느끼던 순간이 많았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판매자분의 예상치 못한 선물을 통해 '누군가는 이렇게 자리를 지키고 살아야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태어났기에, 천성이 그래서, 할 수 없이 이리 살고 있다' 하더라도 마음 한 구석엔 이렇게 스스로를 지키고 있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라며 어깨펴고 미소지어도 된다며 선물을 주신 것만 같았다.

아마도 꿀 한통을 다 먹을 때까지 판매자분의 따뜻한 마음이 잊혀지지 않을 듯하다.
그 마음이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데에 속깊은 격려로 전해져 용기를 잃지 않기를, 나와 비슷한 누군가도 스스로를 아껴주기를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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