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에 몰아친 '압사 공포', 주최 측과 지자체의 '환장 일치'

'보일러룸서울2024' 중단, 이제 어떡할 것인가

검토 완료

유동하(dendong)등록 2024.08.14 12:03
여름밤 성수동의 기온은 30도에 육박했다. 몇천 명의 사람이 아홉 시부터 건물 하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었다. 12시 20분경, 인파가 멈췄다. 땀을 뻘뻘 흘리며 기다리기를 40분.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경찰차와 소방차가 들이닥쳤다. 가쁜 숨을 쉬는 환자들이 부축받으며 나오는 모습을 보고서야 인파는 모든 기다림이 허사였다는 걸 직감했다.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무리 중에는 부산에서 온 사람도, 바다 건너 오사카에서 온 사람도 있었다.

지난 7월 27일에서 28일 사이 밤 성수동 에스팩토리 D동에서 열린 디제잉 파티 '보일러룸 서울 2024'의 광경이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음악 브랜드인 데다가, 유명 DJ 페기 구가 이름을 올려 큰 화제가 되었다. 이날 페기 구는 공연을 시작하지도 못했다. 파티 애호가의 기대를 모은 행사는 모두에게 악몽이 되고 말았다.

과밀過密은 왜 일어났을까

공연장의 면적은 1층과 3층을 합해 약 4000제곱미터로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2,000명이다. 행사가 취소되고 나서 주최 측이 표 구매자들에게 보낸 문자엔 인원 제한 원칙을 준수했다고 적혀있었다.  

보일러룸 사과 문자 [관객 제공] 보일러룸 주최측이 관객에게 보낸 사과 문자 ⓒ 이소현

  하지만 중앙일보가 성동소방서 성수119안전센터와 진행한 인터뷰에 따르면, 현장에 있었던 인원은 추산 4,500명 정도였다. 관객 한 명에게 팔을 뻗고 한 바퀴 돌 수 있는 정도의 공간(0.9 제곱미터, 출처 The Engineering Toolbox)도 주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또한, 사람들은 균일한 밀도로 서지 않는다. 같은 공간 안에서도 비교적 한산한 곳이 있고, 몰려있는 곳이 있다. 내부 사진을 보면 팔을 접고도 한 바퀴 돌기 어려울 정도로 빽빽하게 모여있다.
 

보일러룸 내부 사진 @taejjo X(구 트위터) 캡처 ⓒ @taejjo

 
표를 소지하지 않은 사람은 입장을 제한했다. 소방서에서 추산한 인원에 큰 오차가 있거나, 주최 측이 수용 가능 인원보다 더 많은 수의 표를 판매했을 수밖에 없다. 정확히 몇 표를 판매했는지 물어보기 위해 보일러룸에 취재를 요청했으나 답변은 오지 않았다.

안팎으로 피해자가 있었다

현장에서 호흡 곤란을 호소해 안전 조치를 받은 환자는 총 다섯 명이다. 과밀 현상과 상관없는 증상일 가능성도 있으나,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성동구와 소방 당국은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렸다는 내용의 신고를 오전 12시 40분에 여러 건 접수했다고 밝혔다. 호흡 곤란과 별개로, 여러 명이 신고할 정도로 관객이 밀집되어 있었다. 호흡 곤란이 발생한 것은 이러한 상황과 무관할 수 없다.

관객의 안전뿐 아니라 공연자의 안전도 위협받았다. 보일러룸 공연의 특징은 DJ 부스를 따로 마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일러룸 런던 DJ Fred Again [보일러룸 유튜브 캡처] '보일러룸 런던'에서 DJ Fred Again이 관객과 뒤섞여 공연하고 있다. ⓒ boilerroom

 
자신의 안전을 어느 정도 신경 써서 움직일 수 있는 관객과 달리, DJ는 준비한 퍼포먼스와 연주를 보여주어야만 한다. 과밀 현상 속에서 더 취약하다. DJ가 사용하는 장비가 큰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 육중한 전기 제품을 파손하거나 떨어뜨려 부상이 발생할 수 있다.

공연장 바깥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보일러룸은 입장객을 분산하기 위해 다섯 페이즈(단계)로 나누어 표를 판매했다. 각 페이즈는 입장할 수 있는 시간이 달랐다. 정작 대기줄은 페이즈에 맞게 나누지 않았다. 1페이즈부터 5페이즈 소지자가 모두 한 줄에 뒤엉켜 대기하다 보니 입장이 늦어졌고, 12시 20분부터는 40분간 입장을 제한했다. 에스팩토리 건물 주변엔 엄청난 인파가 오도 가도 못 하게 되었다. 주최 측은 12시 20분부터 입장을 제한한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주최측은 제대로 대처했을까

표를 지나치게 많이 팔았다는 의혹을 제쳐두고서도, 주최 측의 안전 조치에는 문제가 있다. 오후 11시 30분부터 공연 취소 시까지 밖에 대기한 이 씨(23)는 이렇게 전했다. "티켓 판매처에 적혀 있던 반입 금지 물품을 제외하면 어떠한 안전 수칙이나 비상시 대처 방법도 안내받지 못했다. 문자도 받지 않았고, 가드나 공연 관계자가 육성으로 전달하지도 않았다." 안전 수칙을 육성으로 고지한 직원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 고지가 닿지 않은 관객이 많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공연을 취소했을 때의 대처도 의문점이 남는다. 경찰 관계자만 공연장 내부·외부에 해산을 지시했다. 공연장 안은 폐쇄되어 있어 모든 관객에게 지시를 잘 전달했지만, 공연장 밖은 그렇지 않았다. 입구 근처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던 관객은 한참 후에야 공연이 끝났다는 사실을 알았다. 안에서 밖으로 나가려는 관객과, 어리둥절하여 기다리는 대기자가 충돌하여 안전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었다. 공연 관계자가 경찰에게 협조하여 취소 사실을 알렸다면 더욱 수월하게 해산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현행 공연법에 따르면 모든 공연 주최자는 관객이 1,000명 이상일 때 관할구에 공연 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계획서에는 무대 면적과 관람 예상 인원을 명시해야 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관람 예상 인원이다. 성동구 관계자가 연합뉴스에 밝힌 바에 따르면, 제곱미터당 입장 가능한 인원 제한을 정부 차원에서 정한 요건은 없다. 공연 주최자가 실제 수용 가능한 인원을 넘게 예상 인원을 신고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얼마든지 보일러룸 사태와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실정이다. 관할구가 객관적으로 계획서를 검토하기 위해선 면적당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을 정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공연 계획서에 더해 주최 측은 지자체에 '재해대처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재해대처계획을 수립하지 않거나 재해예방조치를 취하지 않는 경우 과태료를 부과한다. 그런데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이번 사고에 대해 "지나친 규제는 K팝 등 한류 문화의 위축을 부를 수 있으니 신중히 접근해야 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과연 한류의 확산을 방해하는 것은 규제일까, 아니면 대형 안전사고일까. 지자체는 잠깐의 손해가 두려워 주최 측을 처벌하기를 망설여서는 안 된다.

행정 처리와 법안 발의의 복잡함보다, 한류 문화의 위축보다 인명人命이 먼저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2년째, 그때와 달라진 점은 경찰과 소방서가 신속히 대응했다는 것밖에 없다. 사후 대응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압사 사고가 일어날 조건을 없애는 노력을 등한시한 것은 아닐까. 사고에 잘 대처하는 것과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대비하는 것. 둘 중 어느 것에도 소홀해져셔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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