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인생을 효과적으로 보내는 법 급하지 않지만 소중한 일에 시간 투자 오정환 시간만큼 공평한 것이 세상에 있을까 싶다. 빈부나 귀천을 따지지 않는다. 반칠환의 <새해 첫 기적>을 보면 시간이 얼마나 공평한지 금방 알 수 있다. 시인의 눈에는 동물이나 심지어 바위에게 까지도 시간이 공평하다. 열심히 달리는 사람이나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이나 똑같다.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새해 첫 기적>, 반칠환 시간이 공평하다고 하찮은 것은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생은 유한한데 너무 빠르게 흐르기 때문이다. 흰말이 문틈을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순간일 뿐이라는 장자의 말처럼 빠르다. 이렇게 짧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날아서 가든, 뛰어서 가든, 걸어서 가든, 기어서 가든, 아무것도 안 하든 시간은 흐른다. 죽을 때까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느냐는 그래서 중요한 질문이다. 진시황이 객사하자 조고와 이사가 짜고 적장자를 죽이고 진시황의 열여덟 번째 아들이라 왕위 계승과는 거리가 먼 호해를 왕으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을 위협할 만한 사람은 모두 죽였다. 하루는 호해가 조고에게 이렇게 물었다. "나는 이미 천하에 군림하였으니 귀와 눈으로 좋은 것들을 느끼고, 마음이 즐거운 바를 다하며, 종묘를 안정케 하고 만백성을 기쁘게 하여 천하를 오래도록 소유한 채 천수를 마치고 싶은데, 어떤 방법이 있겠소?" 한마디로 짧은 인생 즐기고 싶다는 말이다. 조고가 답했다. "법을 엄하게 하고 형벌을 가혹하게 해, 죄를 위반한 자를 연좌해 처단하고 일가족을 구속하게 하십시오. 대신들을 없애고 골육의 형제들을 멀리하십시오. 가난한 자를 부유하게 하고 천한 자를 귀하게 여기시고, 선제의 옛 신하들을 모두 제거하시고, 폐하께서 신임할 자를 새로 두어 가까이하십시오. 이렇게 하시면 잠재된 덕이 폐하께 모이고, 해로운 것이 제거되며, 간사한 계략이 방지되고, 여러 신하 가운데 폐하의 은덕을 입지 않은 자가 없게 되어, 폐하께서는 베개를 높이 하고 마음껏 즐기실 수 있습니다. 이보다 좋은 계책은 없습니다." 조고가 부추기며 하는 말이 무시무시하다. 즐거움을 누리려면 반란을 일으킬 만한 씨앗을 제거해 버려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호혜는 조고 말을 옳다고 여기고 다시 법률을 제정하여 위협이 될 만한 사람은 모조리 죽였다. 신하건 형제건 가리지 않았다. 짧은 인생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것은 좋다. 그런데 호혜는 자신의 인생을 즐기기 위해 황제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신하에게 맡기고, 즐거운 인생을 방해할지 모른다며 대신들과 형제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처형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비정상이다. 시간은 이렇게 쓰라고 있는 게 아니다. [설원]에 영원이라는 사람 이야기가 나온다. 시간을 절약하며 아주 잘 사용한 사람이다. 영원은 중모 땅의 가난한 시골 출신이다. 농사일이 힘들고 고되 친구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이런 고통을 면할 수 있겠나?"친구가 일러주었다. "공부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20년을 기약하고 공부하면 무언가 이루겠지!" 그러자 영원이 자신감을 보였다. "좋다. 나는 15년을 기약하고 남이 쉴 때 나는 쉬지 않으며, 남이 잠잘 때 나는 일어나 해보리라!"과연 13년을 공부하여 주나라위공이 스승으로 삼을 정도가 되었다. 무릇 뛰는 자가 빠르다 하나 2 리를 못 가 그쳐야 하고, 걷는 자가 느리다고 하나 1백 리는 가서야 쉰다. 지금 영월 같은 재주로도 오랫동안 쉬지 않고 노력하여 마침내 제후의 스승이 되었으니 이 어찌 맞는 말이 아니겠는가. 호혜와 영원 사례에서 우리는 반대되는 시간관을 볼 수 있다. 호혜는 '현재'를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이다. 현재를 즐기기 위해 만행을 저질렀다. 나라를 어떻게 이끌고 백성을 어떻게 잘 살게 하지 같은 미래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지금 즐기고 행복하면 그만이다. 반면 영원은 '미래'에 초점을 두었다. 미래를 위해 준비하며 시간을 보낸 사람이다. 현재에 초점을 두면 지금 당장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 이것이 극단으로 흐르면 미래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쾌락주의자가 된다. 미래에 초점을 두면 현재 즐거움보다는 미래에 주어질 보상에 더 관심이 있다. 자연히 현재 욕구를 뒤로 미룬다. 이렇게 시간관이 다르면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와 생활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 시간을 잘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영원처럼 목표를 세우고 시간표를 짜 보자. 목표가 있으면 목표를 달성하는 방향으로 시간을 사용하게 된다. 되면 좋고 안 돼도 그만인 태도 말고 목표 달성에 몰두해보자.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같은 분량의 시간을 받으며 살지만 어떤 사람은 호혜처럼 살고 어떤 사람은 영원처럼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산다. 그 결과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어떤 사람은 도움을 받는다. 심지어 끼니와 잠자리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는다. 이유는 무엇일까?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있다.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은 결과다. 중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은 일을 하며 빈둥빈둥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의식주를 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 오정환 미래경영연구원장 ⓒ 화성시민신문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화성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 밑빠진 독 주변에 피는 꽃, 화성시민신문 #오정환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