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처럼 싸고 빵만큼 배부른 예술을 하고 싶어요

인형극 만드는 젊은 그림쟁이 이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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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하(dendong)등록 2024.08.27 11:24
예술을 모르는 사람에게 예술은 어떤 쓸모가 있을까?

이미림 월미도 가족이 운영하는 횟집 벽에는 이미림 씨가 만든 가면과 공예품이 걸려 있다. ⓒ 유동하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인형극을 올리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이다. 인형극 단체 '연희공방 음마갱깽(이하 음마갱깽)'의 디자이너 이미림(26) 씨. 그를 만나러 월미도로 향했다. 디스코 팡팡과 대관람차가 시끌벅적하게 돌아가는 인천 앞바다에서 그와 만났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목과 손목에 걸려있는 신물神物이었다. 중국 신수 비휴, 터키 '악마의 눈' 블루아이, 일본 다루마 등.

"비휴는 재물을 먹는데, 배출할 똥구멍이 없어서 재물이 쌓이기만 해요."

실제로 힘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고 했다. 토속 신앙에는 그 지역 사람들의 바람이나 고통이 담겨 있어 지킬 가치가 있다고 이 씨는 말한다.

이미림 신물 작업실에 있는 여러 문화권의 부적과 공예품 ⓒ 유동하

오래된 마음 기억하기

사람들의 바람과 고통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자연스레 그의 미술 작업에 투영된다. 음마갱깽은 국가무형문화재 '남사당놀이' 가운데 인형극인 '덜미'를 현대적으로 해석한다. 이 씨는 인형막(배우를 숨기고 인형만 드러나게 하는 가림막), 포스터, 영상을 통해 덜미가 품은 희로애락을 표현한다.

술은 오래 두면 식초가 되기도 하고, 더 깊은 향을 두르기도 한다. 전통도, 시대에 뒤처진 면도 있지만 시대를 초월하는 요소도 있다. 옛사람들의 삶을 현대 관객에게 전달하려면 거치는 과정이 있다. 예를 들어 춘향전이나 심청전에서 성역할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대목이나 효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대목은 요즘 사람들의 가치관에 맞지 않는다. 이런 부분은 걸러낸다. 큰 나무로 절을 짓는 극 '절대목'에 형광색을 많이 사용하거나, 콜라주 형식으로 풍경화를 그려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추구하기도 한다. 전통을 답습하지도, 파괴하지도 않으려 늘 고민한다.

괴물세계의 오늘 포스터 연희공방 음마갱깽에서 기획한 전시 「괴물세계의 오늘」 포스터 ⓒ 유동하

휴가철인 8월은 공연이 적다. 한가한 시기를 빌려 이미림 씨는 극단과 함께 상여 답사를 다닌다. 상여는 한국의 전통 장례 문화에서, 시신을 어깨에 메고 장지까지 운구하는 상구다. 품이 많이 들어 요즘은 대부분 운구차로 대체하고 있다. 죽어서나마 화려한 가마를 한번 타보는, 처연하고도 아름다운 문화가 사라지는 것을 이 씨는 안타깝게 여긴다. 황해도의 장연 인형극이나 옛 남사당패 공연엔 인형들이 상여를 메는 장면이 있다. 그는 이 장면을 현대적인 상여 공연으로 변주하려 한다. 이를 위해 오래된 상여를 조사해 기록한다.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힘

이미림 씨는 한국과 세계를 잇는 활동도 한다. 덜미를 발전시킬 영감을 얻고, 타국의 인형극단과 교류하기 위해 그는 이탈리아, 스페인, 러시아 등을 다녀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탈리아다. 한국에 덜미가 있다면 이탈리아엔 '구아라텔레'가 있다. 재치 있는 무법자 '풀치넬라' 캐릭터를 구아라텔레로 풀어내는 워크숍을 한 일화를 그는 즐겁게 소개했다.

워크숍에서 다룬 극은 '풀치넬라와 죽음'이라는 1인극이다. 풀치넬라가 기지를 발휘해 '죽음'을 무찌르는 장면을 창작해 시연했다. 극장의 인형막이 이 씨가 사용하기엔 너무 커 인형막 없이 관객들과 마주 보고 공연했다. 평소에 미술 작업만 맡기에 가뜩이나 긴장했는데, 표정과 몸짓을 드러내고 연기하는 것은 더욱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따뜻한 눈으로 지켜보는 배우들의 모습에 긴장이 눈 녹듯 사라졌다. 대학에서 작품을 발표할 때 학우들이 게임을 하거나 큰 소리로 전화를 받는 모습과 대조됐다.

이미림 1인극 이미림씨가 이탈리아의 극장에서 1인극을 하고 있다 ⓒ 이미림

그날 밤, 극장장 집에서 다 같이 식사를 했다. 이미림 씨는 풀치넬라 인형이 입는 옷과 비슷한 하얀 원피스를 입었다. 그의 창작극을 본 현지 배우가 와서 말을 건넸다.

"마치 인형이 인형을 들고 있는 것 같았어요."

잠시 슬럼프를 겪고 있던 그는 그 후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피식 웃게 하는 게 예술

"값싼 예술을 하고 싶어요."

브레드 앤 퍼펫 시어터(Bread and Puppet Theater)는 1960년대에 활동한 예술 단체다. 나중엔 현대 예술 개념으로 발전했다. 뜻은 '빵과 인형극단'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두 가지라고 이미림 씨는 말한다. 빵으로 배를 채우고 인형극을 즐겨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한다.

"생존에 필요한 것이 너무 비싸요. 적당히 배부른 소크라테스가 되고 싶어요. 현실은 배고픈 돼지지만…"

노인복지관으로 자주 공연을 다닌다. 가끔 눈물을 흘리는 노인이 있다. 그 모습을 보며, 힘든 하루를 보낸 사람이 잠깐 피식 웃게 하는 것만으로도 예술은 충분히 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 인형극을 보던 생각이 난다는 노인을 만났을 땐 어릴 때 만화를 보던 추억을 떠올렸다. 그 후 누군가 인형극을 보고 예술가를 꿈꿀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

초상화 그리기 이미림 씨가 필자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다. ⓒ 유동하

'값싼 예술'을 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재능은 뭘까? 그는 만화, 애니메이션, 공예, 인형극 등 다양한 분야에 발을 담갔다. 인형극을 갓 시작했을 땐, 전문성이 없다고 한 공연 관계자에게서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일을 할수록 자신의 다재다능함이 빛을 발한다고 느꼈다. 소규모 극단의 유일한 미술가다 보니 다양한 일을 맡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단청 지식, 용접 기술, 만화 실력을 두루 활용했다. 다양한 지식·기술을 결합하는 능력이 주목받는 시대가 된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낯선 땅에서도 오래 산 것처럼

앞으로는 무언가를 기록하고 싶다고 했다. 요즘은 인형극 배우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만화로 기록하려 준비한다.

"이탈리아에서 만난 인형극 선생님이 어떤 동성애자 연희자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남자 풀치넬라가 아름다운 여자 '테레시나'에게 반하는 극을 연희할 때마다 풀치넬라와 테레시나 모두 여성으로 바꾼다는 거예요. 이렇듯 인형극에는 예술가의 삶이 녹아 있죠. 지면에 잡아두지 않으면 흩어져버리는 이런 이야기가 아까워요."

인형극 업계에 몇 없는 디자인 전문가로, 잊힌 마음을 따뜻한 시선으로 발굴하는 그는 연희자들을 사랑한다.

이미림 스페인 스페인 답사에서 환하게 웃는 이미림 씨 ⓒ 이미림

스페인 인형극 축제의 한 파티에서 있었던 일이다. 식당은 유럽이나 남미 출신의 연희자로 가득했다. 스페인어라곤 '올라(안녕)' 밖에 모르는 20대의 동양인인 그는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페루에서 온 연희자가 다가와 서툰 영어로 말을 걸었다.

"이 낯선 땅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있니, 어린 여자야?"

"전혀요. 나는 여기서 이방인이 아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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