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주면 안 잡아먹지

나쁜 아빠 잡는 호랑이 구본창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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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하(dendong)등록 2024.08.29 11:23
필리핀에 유학 온 한국 남자가 현지 여자와 연애한다.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긴다. 남자는 한국으로 도망간다. 여자는 양육비도 받지 못하고 홀로 아이를 키운다. 사람들은 아이를 코피노, 여자를 코피노 맘이라 부른다.

광기에 가까운 집념과 굵은 팔뚝 두 쪽으로 이들을 돕는 사람이 있다. 코피노 아빠 커뮤니티에서 '저승사자'로 불리는 구본창 활동가를 만났다.

구본창 활동가 구본창 활동가의 투박한 손에는 자잘한 상처가 많다. ⓒ 유동하

네 이웃을 사랑하라

"양육비 내놔."

룸살롱에 들어선 구 씨가 대뜸 말한다.

"누구세요?"

건달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꾸한다.

"널 죄악에서 구하기 위해 온 하나님의 사자다."

말이 끝나자, 건달의 목에서 금목걸이를 잡아 뜯는다. 건달이 과도果刀를 집고 달려든다. 능숙하게 칼을 피한 구 씨는 CCTV가 비추지 않는 구석으로 건달을 끌고 간다. 우둑, 단숨에 팔을 부러뜨린다.

구 씨가 늘 험한 삶을 산 것은 아니다. 원래 그는 학원 강사였다. 가족들이 평생 부족함 없이 쓸 수 있는 돈을 모으기 위해 365일 중 추석 하루만 쉬고 매일 일했다. 그런 그가 코피노 양육비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게 된 것은 두 '어머니' 때문이다.

그의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어머니는 필리핀 선교를 다녀오고 나서 필리핀 빈민 아이들에게 쌀을 보냈다. 그런데 당신 돈으로만 하시지 않고 자식들에게도 부담을 떠넘겼다. 한번은 구본창 씨 집 앞 슈퍼에서 아들 이름으로 100만 원을 빌려 갔다. 당시 대기업 평균 초봉이 55만 원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구 씨가 어머니께 항의하자 "그래서 지금 굶냐"며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당시에는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나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더 돕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구 씨는 40대 초라는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자녀의 유학을 위해 공교롭게도 필리핀에서 살게 되었다. 한국에서 친구들이 오면 클럽에 가곤 했다. 하루는 클럽 댄서가 화장실에서 구슬프게 울고 있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자식이 병으로 죽었단다. 원래 명문대 출신 어학원 강사인데, 한국에서 온 유학생과 3년 동안 연애하다가 애를 가졌다. 남자는 결혼 허락을 받겠다고 한국으로 갔다. 떠나기 전 한국 주소라고 적어준 종이에는 'guegyol minni 18 Korea(그걸 믿니 18 코리아)'라 적혀있었다. 애 아빠의 지원 없이 아이의 병원비를 벌어야 해서 댄서 일을 시작했다. 결국 아이가 죽었다. 구 씨는 이런 사람들을 돕는 것이 어머니가 실천하려 했던 '예수의 이웃 사랑'이 아닐지 생각했다. 그는 코피노 맘이 양육비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데에 삶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돈, 돈, 돈

필리핀 경찰의 부패는 양날의 검이다. 양육비 소송을 하는 코피노 맘을 전남편이 위협할 때 경찰의 도움을 받기 어렵다. 다르게 말하면, 전남편도 법의 도움을 받기 어렵다는 뜻이다. 코피노 맘을 지키거나, 양육비를 받아내는 과정에서 전남편을 다치게 해도 경찰에게 줄 뇌물만 있다면 넘어갈 수 있다. 이런 현지 상황을 이용하기 위해 구 씨는 많은 돈을 벌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봉사 정신 따위 필요 없습니다. 무조건 유능한 게 중요해요."

구본창 씨는 자기와 뜻을 함께하려는 동료를 뽑을 때 마음가짐을 보지 않는다. 코피노와 코피노 맘을 지원할 돈을 잘 버는지만 중요하다. 돈을 잘 번다는 건 필리핀 해병대와 맨몸으로 5 대 1 싸움을 해도 이길 정도의 싸움 실력이 있다는 뜻이다. 구 씨가 선택한 돈벌이가 납치 구출 사업이기 때문이다.

필리핀 민다나오섬에서는 정부군과 무슬림 반군이 분쟁 중이다. 반군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돈 많은 민간인을 납치한다. 구 씨는 팀원들과 함께 납치당한 사람들을 구출하고 보수를 받는다. M16A1 소총과 칼로 반군과 혈투를 벌이는 팀은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는다. 하지만 후원자가 없는 상황에서 코피노/코피노 맘 지원 사업을 유지하려면 위험한 일을 하는 수밖에 없다.

양육비를 받는 가장 빠른 방법

구본창 씨가 했던 활동 가운데 가장 성공적이었던 것은 배드파더스다. 배드파더스는 양육비를 주지 않는 코피노 아빠의 신상을 공개하는 인터넷 사이트다. 그는 사이트 운영인의 월급과 임대료를 댔고, 민원 받는 일을 맡았다. 배드파더스 방문객은 하루 평균 18만 명 정도였다. 양육비 미지급 사건은 약 1,700건 해결했다. 신상을 공개한 코피노 아빠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서 지금은 운영을 중단했다.

지금은 코피노 맘이 직접 피해 사실을 알리고 전남편의 신상을 공개하는 '양육비 미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국가 기관이 아닌 단체나 개인이 전남편의 신상을 공개하는 건 법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반면, 양육자가 직접 신상을 공개하는 건 별문제가 없다.

한국의 양육비 관련 법안에서 가장 바꾸고 싶은 한 가지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구본창 씨는 이행 절차의 간소화를 꼽았다. 양육비를 받기 어려운 이유는 양육비를 주지 않아도 당장 불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코피노 아빠가 양육비 소송에서 패소해도 돈을 주지 않으면 양육자가 이행 명령을 신청한다. 그래도 돈을 주지 않으면 감치 명령을 신청한다. 그래도 돈을 주지 않으면 형사 고소를 한다. 형사 재판에서 승소하면 처벌을 내릴 수 있다. 이 과정이 합쳐서 4년에서 5년 정도 걸린다. 구 씨는 이행 명령을 내린 뒤 바로 형사 고소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제가 활동을 못 하게 된 이후의 일은 상상하지 않아요. 당장 내일의 일도 생각하지 않아요."

그는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큰 목표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 당장 할 일만 생각한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면 미련과 두려움이 생겨서 위험한 일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돈과 명예 따위는 관심 없어요. 코피노 양육비 미지급 문제가 해결되는 것에만 관심 있어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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