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 장에서 생긴 일

사소한 공공시설이용권 앞에서도 이기심 가득한 기득권을 내세우기보다 존경 받는 누군가가 되기를!

검토 완료

조혜진(clairecho)등록 2024.09.02 16:28
지난 주말은 시어머니를 뵙는 날이었다.
요즘 한창 배드민턴에 취미를 붙인 아이와 함께 공원을 찾기로 한 날이기도 했다.
소나무가 울창한 공원은 지나갈 때 몇 번 봤을 뿐 우리에게 낯선 곳이었다.
아이와 남편이 앞서가고 어머님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걷다보니 갑자기 아이가 발을 구르며 달려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배드민턴 칠 생각에 신이 났구나' 하고 생각하던 순간, 서서히 주변의 사물에 가려 보이지 않던 배드민턴 코트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가 그토록 바래마지않던 '네트'와 안세영선수가 경기했던 모양과 흡사한 사이즈의 코트가 아이에게 발을 동동 구를 정도의 격한 반가움을 불러온 거였다.

다행히 아직 오후의 태양이 뜨거웠기에 빈 코트가 있었다.
햇살이 비쳐서 눈이 부시고 덥긴 하지만, '코트'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지덕지한 우리는 얼른 햇살 가득한 코트에 자리를 잡았다.
아이와 남편이 먼저 랠리를 하고나면 내가 아이와 하고, 아이가 지치면 남편과 내가 공을 주고 받는 방식으로 나름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여섯 개의 코트 중에 네 개의 코트에는 "동호회 전용"이라는 푯말이 붙어있었다.
우리는 당연히 "동호회 전용"이라는 푯말이 없는 곳에서 공을 쳤다.
그런데 갑자기 한쪽 구석에 앉아있던 다 같이 맞춘 듯 똑같은 배드민턴 의상을 차려입은 장년층의 아주머니 두 명과 아저씨 두 명이 우리 코트로 진입했다.
그리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난타'는 아무데서나 쳐도 되니까 옆에 운동하는 사람들 하고 나눠서 치세요. 여기서 하고 싶으면 우리 '경기' 끝나면 하세요."

나는 분명 "동호회 전용"이 아닌 "주민용" 코트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배드민턴 복장을 갖춰입은 것도 아니었고 장비도 비싼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와 나는 확실히 배드민턴 '경기'를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등장한 '동호회 옷'을 입은 네 명의 장년층은 우리의 경기를 '난타'라는 낯선 단어로 낫잡아 지칭하며 자신들이 (수준 높은) '경기'를 해야하니까 어서 비키라고 말했다.

어리둥절하고 불쾌했다.
아이도 나도 비키지 않고 머뭇거렸다.
우리의 경기를 중단시킨 것에 대해서는 어떤 사과도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코트의 주인인 양 우리를 몰아냈다.
곧 경기를 시작한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게 옆 코트의 아주머님은 본인들과 코트를 반으로 나눠쓰면 된다고 이리 오라고 하셨다.

순식간에 반쪽이 되어버린 코트에서 마음을 잡고 아이와 다시 경기를 시작했다.
점수를 계산해야 하는데 자꾸 다른 생각이 끼어들었다.
"내가 뭘 잘못했지? 저 사람들이 이 코트에 우선권이 있나? 왜 내가 쫓겨나듯이 옆 코트로 넘어와서 좁은 공간에서 운동해야 하는거지? 공용시설은 먼저 사용하는 사람에게 우선권이 있는 것 아닌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더는 집중이 되지 않아 운동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코트 한 구석, 남편과 어머님이 앉아 있던 벤치로 갔다.
억울한 마음이 몰려왔다.
우리가 쫓겨났노라고, 저 사람들이 "경기"를 해야 한다고 우리에게 "난타"를 치려면 나중에 치라고 했다고 갑자기 운동을 멈춘 이유를 설명하며 솟아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마치 머릿수로 몰아붙이는 동호회 회원들에게 동네 조무래기 취급을 받은 것 같았다.

남편과 어머님이 나를 말릴 새도 없이 어느새 나는 그들이 무리를 지어 앉아있는 벤치로 저벅저벅 걸어가서 말했다.
"저기요, 저 코트에 동호회 우선권이 있나요? 왜 저와 아이가 쫓겨난거죠? 그리고 우리 '난타'한 거 아닌데요, '경기'했는데요?"
앉아있던 사람이 당황한 사이, 태연하게 나를 몰아내고 공을 치던 회원 중 하나가 다가왔다.
"그게 아니라요. 저기서 치고 싶으시면 저희 게임 끝나고 하시면 돼요."

도대체 어디부터 설명해야 말이 통하는 인간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속이 터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본인이 잘못한 것을 깨닫게 해야만 기분이 나아질 것 같았다.

"저희가 먼저 '경기'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사과도 없이 그냥 나가라고 하셨잖아요. 저 코트에 우선권이 없으면 양해를 구하는 게 먼저 아닌가요?
최소한 '죄송하지만 저희가 경기를 좀 하고 싶은데 언제까지 치실거냐'고 물었어야 하지 않나요? 이유도 없이 저희를 쫓아내듯 몰아내셨잖아요!"

있는 힘껏 감정이 실린 내 목소리에 사람들은 하던 운동을 멈추고 주목하기 시작했다. 시선을 의식한 듯 상대는 말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기서 치고 싶으시면 저희 경기 끝나고 하세요."

나는 더 화가 났다.
"지금 하신 행동이 잘못된 걸 아신다면 그걸 수정하셔야죠. 왜 저희가 그쪽 경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여기 동호회전용 아닌데요?"

끝까지 스스로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그들을 내버려두고 나는 벤치로 돌아왔다.
아이는 이제 배드민턴을 못친다는 생각에 시무룩해진 상태였다.
그건 옳지 않았다. 우린 잘못이 없었고 필요한 의사표시를 했을 뿐이다.
아이에게 코트로 돌아가서 운동을 더 하자고 했다.
잘못도 없는 우리가 기분을 잡치고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맨처음 우리와 코트를 나눠쓰겠다고 하셨던 아주머님 옆으로 갔다.
나를 본 아주머님은 어제도 아주머님께 비키라고 했다는 말씀을 하셨다.
일반코트마저 동호회회원들이 장악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떡주무르듯 하는 행태를 보고 있다고, 여기서 자주 운동하면 계속 마주치게 될거라고 하셨다.

여섯개의 코트를 가운데 두고 둘러싼 벤치 곳곳에 앉아있는 '동호회 회원'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어디 한번 쳐다보라는 심정으로 한번 쭉 쏘아봐줬다.
그리고 아이와 '즐겁게' 다시 경기를 했다.
그렇게 우리는 대략 삼사십분 정도 코트에 더 머물렀다.
우리가 쫓겨났던 "일반"코트에는 어느새 다른 코트에 붙어있던 '동호회 회원전용'이라는 푯말이 옮겨져 붙어 있었다.
여섯개의 코트 중에 동호회에 우선권이 있는 코트는 단 네개 뿐이라는 것이 그렇게 확인되었다. 주민코트에 "동회회회원전용"이라고 붙이면 그대로 회원전용이 되는 것이 그들의 룰이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민원신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온 다음에도, 사건의 여운은 강했다.
말 없이 참는 동네 주민분들을 대신해서 구청의 홈페이지를 뒤졌다.
글로 입증하고 싶었지만 어디에도 그런 신고란은 없었다.
결국 오늘 다산120콜센터를 통해 해당 사항을 신고하고 신고번호를 받았다.

전화를 끊고 아직 이 신고가 (어떤 결과도 불러일으키지 않았기에) 아직 또렷하게 해낸 것은 없지만 첫 단추를 꿰었다는 생각에 조금 후련해졌다.
어떤 이익도 남기지 않을 것이 뻔한 행동이지만 나는 다른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조리함 앞에 눈감지 않았다.
이 신고가 그들을 바꾸진 못하겠지만 득의양양한 행동에 제대로된 일침을 가하기만을 바래본다.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 어느 분야에 대해서 잘 알거나 익숙하다고 텃세 부리는 대신, 모범이 되어 멋지고 자랑스러운 존재가 되어 존경받기를 부탁해본다.
제발, 욕심을 채우느라 부끄러운 시니어가 되는 대신 슬기롭고 존경받는 어른이 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동호회라는 집단을 결성하신 분들은 그 이름에 걸맞는 책임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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