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영조 기자 ⓒ 용인시민신문 폭력이란 말 자체가 가지는 불쾌감은 누구라도 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한때는 그런 말도 있었습니다. '얻어맞고 다니지 말고 차라리 먼저 때리라고' 폭력 피해자는 그만큼 몸도 마음도 힘들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학창 시절 한 번쯤 그런 불편한 기억이 한두 가닥은 있을 겁니다. 선배한테 혹은 동기와 관련한 폭력. 그때는 사회 분위기가 폭력을 통념으로 포장해 은근슬쩍 넘기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분명 옳지 못한 행동이고, 누군가는 잊지 못할 아픔을 몸으로 마음으로 느낍니다. 최근 용인에서 절대 있지 말아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학교 폭력입니다. 함께 다니는 친구에게 몹쓸 짓을 한 것입니다. 가해자 나이와 상관없이 못된 행동에는 호된 가르침을 줘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두 번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따끔하면 교육이 뒤따라야 합니다. 폭력은 어떤 이유에서도 합리화될 수 없습니다. 누가 누굴 어떤 이유에서도 폭력을 사용한다는 것은 법에서도 사회 통념상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행동을 알게 해야 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 실수가 폭력을 통해서 나올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한 번쯤 이해를 해줘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한편으로는 공감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한번 실수했다고 사회적 매장을 한다는 것도 옳다고만 볼 수 없어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두 번 다시 폭력을 행하지 않도록 사전에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학교 내에서 학생 간에 발생하는 폭력은 너무나 아쉽고 답답한 부분이 많습니다. 아직은 배워야 할 것이 많은 청소년이 배움의 공간인 학교에서 폭력을 행해도 된다는 것을 배웠을리 만무하며 또 폭력 방법을 배워 더 잔혹하게 행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시나브로 그들에게 폭력 방식과 한 번쯤 해도 될 것이라는 방심, 여기에 촉법소년과 같은 상당히 고단수 꾀를 부릴 방법까지 말해준 것이라 봅니다. 그렇게 배웠으니 막연한 사회적 면죄부가 죄책감에 앞서지 않을까요. 학교 폭력의 가장 큰 피해자는 모든 청소년입니다. 그리고 가해자는 결국 우리 어른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 내에서 발생하는 이 상황을 사전에 막을 만큼 시스템이 허술한가를 따져 물어도 결국 어른이 제대로 챙기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이 어른 못지않은 악랄한 폭력을 가할 수 있는 사회도 결국은 어른의 무관심과 무책임, 그리고 내 자식만 귀하다는 아주 잘못된 인식이 바닥에 깔려 있습니다. 그들은 어른이 만든 사회에서, 어른이 만든 시스템 속에서 적응해 가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가다 보면 얽히고설킨 길을 만나 속절없이 방황하기도 하며, 길을 잃기도 합니다. 먼발치에서 보면 아주 명확한 지름길이 있음에도 아이들은 잘 모릅니다. 그들 스스로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나간다면야 다행이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묶인 타래는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합니다. 평생 잊지 못할 아픔을 우리 시대 청소년이 겪지 않도록 어른이 정신 차려야 합니다. 바쁜 세상에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딴 거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어른다운 행동을 먼저 하면 됩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맞은 놈은 펴고 자고 때린 놈은 오그리고 잔다'라고. 아닙니다. 맞은 사람도 억울해서 제대로 잠을 못하며, 때린 사람도 두려워 제대로 잠을 청하지 못할 것입니다. '억울함'과 '두려움'은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그 시간에 즐거움과 희망과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학교를 교육 당국도 만들어줘야 합니다. 사회가 법이 또 어른이 나아가 함께 자라는 친구들이 시답잖게 느껴지지 않게 하는 교육, 10분 관심이 100년 우정으로 이어진다는 학교 문화를 위해 더 노력해 주시길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용인시민신문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