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연히 실종돼 노숙자로 발견된 유명 만화가... 그가 고백한 내밀한 이야기

[김성호의 독서만세 245] 아즈마 히데오 <실종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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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starsky216)등록 2024.09.09 14:36
5년 전 사망한 일본 만화가 아즈마 히데오란 이가 있다. 약관의 나이인 1969년 데뷔한 만화가로 일본 만화산업의 절정기를 가로지른 작가다. 한국에선 몰라도 일본 만화산업 가운데선 꽤나 대단한 명성을 얻었다. 전설이란 평가를 받는 그리 많지 않는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언급되곤 할 정도다.

아즈마 히데오가 추앙받는 장르가 무엇인지 언급하는 게 한국에선 다소 민망한 일일 수 있겠다. 로리물,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일본 만화계에서 제법 크게 일어났던 로리물의 흥행 가운데서 아즈마의 존재감을 빼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야심만만한 소년 주인공을 앞세운 만화가 주류이던 과거와 달리 이 시기 만화에선 미소녀를 보다 전면에 내세운 작품군이 많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아즈마 또한 연재 잡지들로부터 로리물 연재를 강요받다시피 하였는데, 특유의 둥글고 귀여운 그림체가 이 장르물과 꼭 맞아들며 어마어마한 성취를 이루었던 것이다. 이로부터 로리콘 계열 작품군의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고, 그로부터 파생된 이른바 모에물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오늘 '독서만세'에서 아즈마를 소개하는 건 이러한 성취며 평가 때문이 아니다. 아즈마는 일본 만화산업의 발전사 가운데 수행한 역할 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도 다른 측면에서 더욱 중요한 업적을 쌓았는지 모른다. 지금부터 소개할 이야기가 바로 그에 대한 것이다.

실종일기 책 표지 ⓒ 세미콜론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유명 만화가

30년도 더 전인 1992년, 일본 만화잡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아즈마가 증발한다. 밀어닥치던 마감도, 어시스턴트이자 아내인 가족까지 내버려둔 채 종적을 감춰버린 것이다. 일상생활이 어려울 만큼 술에 의존하고 있었단 증언은 그의 삶이 안에서부터 서서히 붕괴되고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로리콘인가 모에붐인가에 휩싸여 원치 않는 장르에서 명성을 얻은 것도 영향이 있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실종 이후 얼마간은 떠들썩했는지 모를 일이다. 만화판에선 이름만 대면 아는 일류 작가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으니 말이다. 수많은 마감과 계약을 편집자들이 발로 뛰며 막아냈고, 아즈마의 자리는 새로운 작가가 금세 채워냈다. 본래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는 건 자연의 섭리라지 않던가. 아즈마는 어느 순간 마치 처음부터 그러했던 것처럼 잊혀지고 말았다.

그런데 수년이 흘러 그가 돌아왔다는 소식이 돌았다. 그리고 그 작품이 발표된 것이다.

<실종일기>는 행방불명되었다가 수년 만에 돌아온 아즈마가 그간 있었던 일을 만화로 그린 작품이다. 쓰레기를 뒤져 먹고 살던 노숙생활부터 막노동과 가스배관 작업을 하며 겪은 일, 정신병원 입원까지의 이야기가 특유의 유머와 함께 절제된 컷구분 속에서 담담하게 옮겨졌다. 정말 처절한 이야기는 너무 처절하여 담을 수 없었다는 고백에 마음이 쓰이는 가운데, 어째서 아즈마가 만화 본고장 일본에서 일류라 불렸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노숙부터 일용직 생활, 정신병동 수감기까지

흥미로운 대목이 여럿이다. 처음 아즈마는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노숙자다. 대충 인적 드문 곳으로 들어갔지만 어떻게든 먹어야 살 것이 아닌가. 돈도 없고 그렇다고 구걸할 용기도 일할 의욕도 없는 상황, 결국 남은 건 쓰레기를 뒤져 연명하는 것뿐이다. 뒤질 만한 쓰레기는 인가에 있으니 사람 없는 시간을 노려 산에서 내려와 마을을 돌아다닌다. 그렇게 쓰레기 봉투를 풀고 이것저것을 뒤적이며 그런 삶에 익숙해져 간다. 얼마쯤 지났을까. 그는 어디에 가야 쓸만한 물건을 얻는지를 파악한다. 노숙도 노숙나름, 전보다 훨씬 풍요로운 노숙자가 되어가는 것이다.

한 대목을 살펴보자. 아즈마는 식당가나 편의점에서 매번 멀쩡한 음식을 잔뜩 내버린단 사실을 알게 된다. 샌드위치, 빵, 과자, 케이크, 푸딩, 우유, 요구르트까지 봉투만 풀었을 뿐인데 멀쩡한 음식물이 한가득이다. 그날부터 식생활이 격변한다. 챙긴 걸 다 먹지 못하여 썩혀버릴 정도였다고. 그런 그에게도 원칙이 몇 있으니, 뜯은 봉투를 깔끔하게 묶는 것은 그중 제일이다. 잘못했다간 쓰레기를 다른 곳에 버릴 수도 있고, 노숙자에 대한 인상까지 나빠질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묘사는 유럽과 북미 등지에서 주목받고 있는 '스킵다이빙(skip diving)'을 떠올리게 한다. 지나친 생산과 소비, 폐기를 자극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폐해를 경고하는 실천적 저항운동으로써 쓰레기를 뒤져 음식물을 구해 쓰는 일이 일명 스킵다이빙이다. 스킵다이버들은 돈을 쓰지 않고도 멀쩡한 음식이며 온갖 물건들을 구할 수가 있다고 말한다. 쓰레기 가운데서 멀쩡한 물건을 구한다면 그게 어떻게 쓰레기일수가 있느냐고 말이다.

쓰레기를 처분하지 못해 외딴 곳에 쓰레기산을 만들고 환경오염을 일으키며 소각하고, 땅에 매립하며, 상당한 양을 바다에다 몰래 투기하는 현실 가운데서 스킵다이빙은 필요불가결한 대안이라고 말한다. 남이 버린 쓰레기를 뒤지는 일이 존엄을 위협하지 않느냐고 얼굴을 붉힐 수도 있겠으나, 스킵다이버가 구한 멀쩡한 물건들을 보고 있자면 마음을 달리 먹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정말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다.

스킵다이빙의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기도 전에 아즈마는 스킵다이버가 된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그저 먹는 데만 한정되지 않는다. 아즈마는 알코올 의존증 환자다. 그림체가 망가지고 삶이 흔들려 주체할 수 없을 지경이 되어 집을 나온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어느새 술을 찾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버린 술, 그 술을 섞고 저 나름의 칵테일을 만들어 마시는 일이 오늘의 애주가에게도 처절한 동시에 흥미진진하게 다가온다. 이 사람 왜 저러는가 싶으면서도 눈을 가린 손가락 사이로 몰래 지켜보게 되는 것이다.

아즈마의 가출은 그저 노숙에서 그치지 않는다. 노숙생활을 허물어져 있던 그의 정신과 몸에 기대치 않았던 건강을 선사한다. 그럴밖에 없는 것이 말이 노숙이지 더없이 성실한 일상이 자연 가운데서 펼쳐진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잘 먹고 잘 싸는 삶이다. 맑으면 일하고 비가 오면 책을 읽는다. 구체적으로는 이렇다. 새벽 4시에 일어나 2시간 안에 하루 준비를 마친다. 그날 먹을 밥과 태울 담배, 디저트와 술, 물까지를 오전 중에 확보한다. 바닥, 특히 노숙생활을 통해 깨우친 명당을 잘 살피다보면 하루 만엔 까지도 주운 적이 있다고 한다. 그 돈은 대부분 술을 사는데 쓰이는데, 술을 하루 세 잔만 마시기로 결심한 덕에 만취는 얼마 하지 않는다.

아즈마 히데오 일본 NHK 뉴스에 소개된 아즈마 히데오의 인터뷰 장면. ⓒ NHK


고통스런 삶과 맞바꾼 어디에도 없는 만화

노숙 생활 중 공공도서관은 쉴 터전이 되어준 모양이다. 신원이 불명확한 노숙자에게도 도서관은 책을 허가 없이 빌려주었고 공원에서 빨래를 말리며 빌린 책을 읽은 날도 많았다고 한다. 이쯤이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저 멀리 월든 호숫가에서의 보낸 시절보다 아즈마의 노숙생활이 더 풍요롭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이른다.

일용직으로 가스관 매설, 관리 업체에 취업을 한 후에도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가 가득하다. 안전관리가 엉망이고, 날림공사며 도면과 다른 부실시공도 여럿이다. 노동법 위반이며 사기, 갈 데 까지 간 막장인간들의 못난 행동들 사이에서도 사람 사는 세상의 질서를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 새롭다. 차츰 일터와 일감, 사람들에 적응해나가는 아즈마의 이야기는 인간이 어떻게 성장하고 힘을 얻는가를 돌아보게 한다.

주변이들이 우러러보는 잘 나가는 만화가의 삶에서 경멸의 시선을 받는 노숙자로, 또 육체노동자와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로, 제가 겪은 지난 시간을 극화해 그려내는 솜씨가 상당하다. 겪지 않았다면 떠올릴 수 없었을 이야기가 한가득이다. 처절하면서도 실감나는 그의 지난 시간들이 둥글고 귀여운 그림체 가운데 생명력을 안고 떠오른다.

도태된 이들에게 세상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기대고 도망치는 이의 나약함을 손가락질하기 전에 그들을 불안케 한 것이 무엇인지 응시하는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은가. 뭐 그렇고 그런 생각이 만화를 보는 동안 고개를 쳐든다.

나는 <실종일기>야 말로 아즈마의 걸작이라 여긴다. 삶으로 써내려간, 제 고통을 작품과 바꿔낸 이런 이야기는 정말이지 귀하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서평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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