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컸구나, 아들아

독일에서 만난 1020, 무심(無心)한데 다정(多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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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은(argon24)등록 2024.09.09 10:56
어느 낯선 도시, 주변 경관을 살피며 목적지를 향해 부지런히 지나고 있었다. 두 명이 간신히 지날 만한 좁은 길이라 약간 긴장했다. 불안함은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는 경계로 이어진다.

한 사람이 마주 보며 걸어온다. 이제 막 아이 티를 벗어난 소년이다. 스치며 눈을 마주친 순간 살포시 웃으며 인사한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나지막한 음성이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흔히 건네는, 별로 특별하지도 않은 의례적인 인사밀. "할로(hallo, 안녕)".

긴장이 풀리며 미소가 나왔다. 멀어지는 아이 모습을 한번 더 보려고 뒤돌았다. '잘 컸구나, 아들아'. 소년의 인사는 알 수 없는 감정과 의문을 불러온다. 의례적이고 무심(無心)한 인사에서 다정(多情)을 느끼는 모순된 감정 말이다. 우리나라 같은 연령대 아이들은 이 상황에서 어떠한가 하는 질문 말이다.

이곳 1020은 덜 무섭다.

독일 학교는 중고등학생이라도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공부하지 않는다. 중학생은 오후 1시경, 고등학생조차 늦어도 오후 3, 4시 전에 하교한다.

아이들은 대부분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하교한다.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아이들은 한 줄로 자전거를 타고 가며 행인이 놀라지 않도록 간단히 신호를 준다. 자전거 벨을 살짝씩 눌러 자신들이 지나감을 알려준다. 학생들이 연거푸 할로, 할로를 외치며 지날 때는 무슨 게임을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행인들도 여러 방식으로 장난스레 그 인사를 받아준다.

아래 층에는 20대 청년 혼자 산다. 그는 퇴근한 오후에 앞마당에서 자주 뭔가를 한다. 정성스레 나무 바구니를 만들고 인디고블루 색이 제대로 나올 때까지 바구니를 칠하기도 한다. 현관을 지나다니며 그와 마주칠 때면 그 바구니를 자전거에 달고 장을 보러 갈 거라거나 오늘은 어디까지 하이킹을 갔다 올 건지 말해주기도 한다. 이 젊은이의 또 다른 취미는 식물 기르기다. 물론 얼마 못 가 시들어버린 화분을 그가 내버릴 때마다 가져와 살린 식물만 몇 개째 인지 모른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식물을 가까이 두고 키워보려 한다.

그렇다, 이래서 이곳에서 만난 1020은 (한국의 그들보다) 덜 무섭다.

학교에서 학생으로 대부분 시간을 보낸다.

20여 년 전, 하나의 짤이 인터넷에 돌아다녔다.

"학생이라는 죄로, 학교라는 교도소에서, 교실이라는 감옥에 갇혀, 출석부라는 죄수명단에 올라, 교복이라는 죄수복을 입고, 공부라는 벌을 받고, 졸업이란 석방을 기다린다."

이 짤을 보자마자 미셸 푸코의 명저 [처벌과 감시]를 떠올렸다. 이 짤을 만든 이가 미셸 푸코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는지는 모르겠다. 매섭고 예리하게 우리나라 학생 존재를 규명한 것이라 놀랍다.
미셸 푸코는 학교, 병원, 감옥은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즉 근대에 발생한 이 세 체계는 감시와 처벌의 기제가 공통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학생, 환자, 죄인들은 감시받고 있으며 스스로 결정하고 누릴 자유가 없이 제한된 자유만 있을 뿐이다. 각각 해당하는 장소에서 자의로 벗어날 수 없으며, 일정시간 동안 묶여 있어야 하기에 퇴원, 퇴소, 하교를 자유의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맥락으로 배경내는 <인권은 교문 앞에서 머문다> 책을 통해 아예 '학생 인권'으로 우리 사회에 화두를 던지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 1020은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학교에서 이들은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 제도적 시스템 마련하고 개인 도덕윤리를 이끌어야 한다.

우리나라 1020은 '노키즈존( no Kids zone)', 의 버릇없는 아이거나 '중2병' 걸린 환자이거나, 이제는 사이버범죄의 잠재적 가해자이다. 이것이 정당한가 의심해야 한다. 우리나라 청소년 범죄의 악랄함과 잔혹함을 보여주는 사건이 신문지면을 연일 차지하고 있다. 이번 딥페이크 범죄사건에서도 1020 남성 가해자율이 매우 높고 그중 70%는 10대 가해자라고 한다. 우리네 아들은 물론 내 남동생, 이웃집 오빠, 남자친구, 아는 남자애들이 '잠재적 가해자'인 셈이다. 얼마나 놀랄 일인가 말이다.

가히 ' 1020 남성 포비아(povia) '에 쌓여있다고 할 수 있다. 포비아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로써, 특정한 상황, 활동, 대상에게 공포심, 두려움과 불쾌감을 느껴서 회피한다. 한 무리의 1020을 놀이터에서 만나기라도 하면 우리가 느끼는 그 감각이 딱 이것 아닌가. 공포와 회피말이다.

우리나라 1020 이들은 가정, 사회 어디서도 그 위치가 불안하다.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다. 어린이도 아니지만 독립적인 어른도 아니다. 어른의 보호와 통제를 받는 미성숙한 사람 그 중간 어디쯤에 있다.

독일 딥페이크 예방가이드라인을 소개한 앞의 기사 <오마이뉴스>에서 봤듯이, 사건 예방이 중요하다. 학교에서 딥페이크 예방을 위한 과목을 의무적으로 편성하여 '디지털 윤리의식'을 함께 가르쳐야 한다. 관련 전문가를 소집하고 딥페이크를 분별하고 대응할 수 있는 기술커리큘럼을 개발해야 한다. 현직교사들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대응할 전문역량을 연수기간에 제공받아야 한다.

'몰카는 범죄'라는 인식도 불과 몇 년 사이에 이뤄졌다. 이제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딥페이크도 범죄'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 딥페이크 범죄는 1020 남성을 비난하거나 개인 윤리성에 기대해서는 해결할 수 없다. 개인이 가진 도덕성과 윤리에 기대해서는 딥페이크와 같이 새로운 기술을 이용한 첨단범죄는 근본적으로 근절될 수 없다.
무엇보다 정부, 지방정부는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번 딥페이크 사건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정부 대책의 미흡과 부실한 법과 제도적 허점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원인과 대책을 분석하고 제시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와 사단법인 3P아동인권연구소와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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