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기다렸다. 아주 작은 흠을, 그러나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여겨서다. 영화가 개봉하고 꼭 1년이 지나 관련한 이야기를 하는 건 이 흠을 잡는 게 누군가에겐 지나치다 느껴질 수 있음을 알아서다. 그리하여 영화의 흥행에 전혀 지장이 없을 시기에 나는 이 이야기를 전한다. 그러나 1년이 지나서까지 이 이야기를 하려 하는 데도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건 한국영화에서 종종 되풀이되는 어느 설정이 몹시 부당하단 걸 알리려 함이다. <밀수>는 독특한 영화다. 류승완 감독의 여러 작품군 가운데서도 유별난 영화라 해도 좋겠다.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그러했고, 또 인터넷으로 유통된 <다찌마와 리>가 그러했듯 <밀수> 또한 제 색깔이 강렬하게 드러나는 특별한 작품이다. 평이한 오락영화처럼 시작한 작품은 마치 동화를 보듯 비현실적인 구성과 캐릭터를 거리낌 없이 보여주더니, 어느 순간에는 잔혹하기 짝이 없는 액션, 나아가 범죄물의 인상을 팍팍 풍긴다. 다분히 가벼운 대중오락물의 성격을 드러내다가 한순간에 일변하여 진지한 장르영화의 성격을 내보이는 <밀수>에 다양한 평가가 엇갈린 것도 자연스런 일이다. 누군가는 이 영화가 500만 명이 든 이유를 알 만한 명작이라 말하고, 또 누구는 만듦새가 조악한 영화라고도 한다. 그중 무엇이 진실이고 다른 무엇이 아니라 말하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하나의 색깔 아래 통일감 있는 작품이냐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작품이다. 그러나 이제껏 없었던 새로운 시도들과, 다채로운 장르적 매력이 깃든 영화라고는 이야기할 수 있을 테다. 어쩌면 감독 류승완을 대단하다 하는 건 바로 이와 같은 자유로움 때문이 아닐까. ▲ 밀수 포스터 ⓒ NEW <베테랑2> 감독의 인상적 전작 줄거리는 간명하다. 바닷가 마을 군천항에 화학공장이 들어서며 이곳에 터 잡고 살던 해녀들이 순식간에 어려움에 처한다. 겨우 잡은 해산물이 죄다 병들어 상품가치를 잃은 탓이다. 그렇다고 공장에 책임을 따져 묻자니 나랏법은 있는 자에겐 가깝고 없는 자에겐 먼 것이다. 지금도 그러하니 서슬 퍼런 독재정권 치하엔 어떠했겠는가. 이 마을 해녀들을 꽉 쥐고 있는 건 춘자(김혜수 분)와 선주 아버지를 둔 진숙(염정아 분)이다. 남달리 서로를 챙기는 이들은 공장이 생긴 뒤 갈수록 어려워지는 생계 탓에 업종변경을 시도한다. 그건 다름 아닌 밀수. 일본과의 국교가 단절된 시기, 세관을 우회해 일본에서 들어오는 물건을 밀수하면 큰 돈을 만질 수가 있는 것이다. 화물선이 약속된 포인트에 물건을 미리 던져놓으면 해녀들을 태운 배가 그곳에 나타난다. 그리고 해녀들이 잠수해 물건을 건져 올리는 일이다. 평생 물질해온 해녀들에겐 식은 죽 먹기 같은 일이다. 죽어가던 군천항에 오랜만에 활기가 돈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했던가. 비극은 오고야 마니, 여느 때보다 큰 판을 벌인 춘자와 진숙의 계획이 어떤 경로로 새어나간 것이다. 일을 한창 하던 중에 세관 경비정이 출동하고, 어수선한 가운데 진숙의 아버지와 동생이 휘말려 죽고 만다. 춘자는 그 소란통에 사라지고, 붙잡힌 해녀들만 감옥에 들어간다. 순식간에 아버지와 동생을 잃은 진숙은 춘자가 자신들을 밀고했다 생각하고 이를 간다. 영화는 수년이 흘러 춘자가 다시 군천항을 찾은 뒤의 이야기로 옮겨간다. 저를 철천지 원수로 여기는 진숙이 있는 곳, 제 잘못으로 친구의 아버지와 동생을 죽게 한 곳으로 그녀가 간 이유는 한 남자 때문이다. 이름하야 권 상사(조인성 분), 전국구 밀수왕으로 불리는 그로부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다. ▲ 밀수 스틸컷 ⓒ NEW 1년을 기다려 이 글을 내는 이유 나는 왜 이 글을 쓰는가. 그건 권 상사의 캐릭터, 또 그가 남긴 몇 마디 대사 때문이다. 권 상사는 말 그대로 상사로 전역한 군인이다. 그는 애꾸눈을 한 부하(정도원 분)와 함께 다니는데, 권 상사와 애꾸 모두가 월남에 파병 갔던 참전용사 출신이라고. 특히 그는 제 과거에 꽤나 자부심이 있는 듯, 제 역량을 과시하는 말로 군대며 과거 전쟁 이야기를 하길 즐긴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나랑 쟤랑 둘이서 베트콩 수백명씩 쓸고 다녔어" 같은 것들. 이 글은 바로 이로부터 비롯됐다. 영화의 주요한 뼈대와 관련이 없는 특정 캐릭터의 설정, 또 몇 마디 대사의 불편함을 반드시 누군가는 짚어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그건 류승완이라는 감독, 즉 <군함도>와 같은 영화로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의 고통을 다분히 애국적, 누군가는 국뽕적이라 할 수도 있을 감상적 잣대로 짚어냈던 이의 영화가 해서는 안 될 선택이라 믿어서다. 일명 베트남 전쟁, 즉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말한다. 1964년 통킹만에서 북베트남 어뢰정이 미구축함에 선제공격을 가했다는 빌미로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일어난 10여 년에 걸친 전쟁이 아니었던가. 사망자만 약 150만 명이 발생한 이 전쟁의 촉발점, 즉 통킹만 사건은 전쟁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던 로버트 맥나마라의 1995년 출간된 회고록을 통해 미국의 자작극이었음이 만천하에 공개됐다. ▲ 밀수 스틸컷 ⓒ NEW 베트남을 함부로 말해선 안 되는 이유 한국은 이 전쟁에서 명백한 가해자다. 1964년부터 1973년까지, 전쟁이 가장 격렬했던 시기 백마부대와 맹호부대, 청룡부대 등 정예병단을 파병해 수많은 전투를 치러냈다. 파병을 미국의 제안이 아닌 한국 정부의 제안으로 이뤄졌단 게 정설이다. 전황이 계획과 달리 돌아가 당황한 미국이 주한미군 축소 내지 철수를 검토하고, 이를 막기 위해 한국이 파병을 제안했다는 이야기다. 즉 한국은 손을 들어 남의 전쟁에 침략자 편을 들어 참전했다는 뜻이다. 총 34만 명 파병, 공식 전사자만 5000명을 넘어선다. 특히 미군으로부터 게릴라 출몰하는 중부지역을 인계받은 해병대는 전체 참전 장병의 3% 넘는 병력이 사망할 만큼 큰 타격을 받았다. 한국군이 입힌 피해는 더욱 참담하다. 정확한 기록을 추산하긴 쉽지 않으나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2004년 발간한 '베트남 전쟁과 한국군'자료 상엔 4만1450명을 사살했단 기록이 있다.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른 평가가 나올 수도 있겠다. 미국으로부터 지원받은 막대한 차관을 사회간접자본 및 산업설비에 투입해 산업화를 앞당긴 건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경부고속도로를 비롯해 도로와 항만이 보강되고 통신망 확충이 이뤄졌다. 중화학공업 부문 설비 투자도 집중적으로 진행됐다. ▲ 밀수 스틸컷 ⓒ NEW <밀수> 앞에 선 <군함도>의 민망함 그러나 북베트남 정규군, 흔히 베트콩이라 부르는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게릴라, 나아가 민간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이끌었다는 비판은 어떠한가. 한국과 유사한 역사를 갖고 프랑스와 일본의 오랜 식민지배를 이겨낸 이 나라를 다시 침략한 미국이다. 그 시작부터가 꾸며진 침략전쟁이었다. 저들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겠다는 베트남의 열망을 미국과 한국이 짓밟았다. 경제적,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그 앞에 놓일 수 있는 것일까. 제국주의적 침탈과 식민지배, 이념대립에 따른 대리전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한국은 베트남과 함께 겪었다. 피해자였던 한국은 더러운 전쟁의 가해자가 됐다. 그로부터 다시 수십 년이 흘러 한국은 500만 명이 든 상업영화에서 '베트콩을 수백 명씩 쓸고 다녔다'는 대사를 캐릭터를 강화하기 위해 사용한다. 물론 영화 속 캐릭터가 정치적으로 옳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영화는, 또 영화산업은 어떠한가. 적어도 제가 하는 말의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따져볼 필요는 있는 게 아닐까. 일본을 향해 과거 잘못을 사과하라고, 역사를 돌아보라고 외치는 한국이다. 류승완의 <군함도>가 바로 그런 영화였다. 그렇다면 한국은 베트남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정말이지 이런 방식, 이런 대사는 아닌 것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밀수 #류승완 #김혜수 #조인성 #김성호의씨네만세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