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증원,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전국의 10개 국립의대의 학비를 무상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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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순홍(bird21)등록 2024.09.22 11:32

지난 2009년에 로스쿨이 도입되었다. 당시 사법시험 합격자 수가 1000명이었는데 로스쿨 입학 정원은 2000명이었다. 의대 졸업자가 의사국가고시에 대부분 합격하는 것처럼, 로스쿨을 졸업한 사람도 변호사 시험에 대부분 합격하는 것으로 여겨지던 때였다. 따라서 변호사 숫자가 당장 2배로 늘어나므로 한정된 법률시장에서 기존 법조인들의 수입이 줄어들 것은 뻔한 이치였다.

그럼에도 현직 변호사들이 당국에 변호사 자격증을 반납하며 로스쿨 도입에 저항하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고, 대부분이 잠재적인 예비변호사인 판검사들도 사표를 내며 법원과 검찰청을 떠난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비슷한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인 법조인들과 달리 의사들은 의대 입학증원을 두고 왜 이렇게 격렬하게 저항하는 것일까 ?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와 배경이 있다.

우선 대학의 거의 모든 학과의 재학연수는 4년인데 비해, 의대는 6년으로 절반이 더 많다. 또한 사체해부 등 실험 실습이 많아서 등록금도 훨씬 더 많이 내야한다. 이렇게 의대 학비는 다른 학과에 비해 두 배 가량이 더 들어가는 것이다. 게다가 의대졸업 이후 3~4년간의 전공의 과정 때는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으며 수시로 야간 휴일 당직 등을 도맡아 해야 비로소 전문의가 된다. 의사들은 다른 전문직 종사자들과 달리 한 사람의 전문가가 되기위해 비용과 시간을 훨씬 더 많이 들여야하므로 그에 따른 보상과 대가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의사 숫자를 늘리는 것은 시대적 대세다. 저출산으로 인구는 서서히 줄어들고 있지만, 빠른 고령화로 의료 수요는 급속히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의 공공 의료보험 체계와 그동안 한국의 빠른 소득수준 향상은 급속한 의료 수요 증가에 큰 몫을 차지한다.

그런데 선진국 클럽인 OECD 38개 나라중에서 한국은 인구당 의사 숫자가 37등이다. 그 아래 38등은 멕시코다. 또한 한국의 국내총생산은 세계 10위권이고 1인당 국민소득은 30위권인데 비해, 한국 의사들의 소득은 봉직의 개원의 모두 세계 1위다. 어떤 사람이 사업이나 투자를 잘해서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면 국가의 자랑거리일 수 있다. 그러나 특정 전문적 종사자의 소득이 나라의 전반적인 형편과 달리 세계 최고인 것은 무언가 잘못된 것이고 이상한 일이다. 그 이유는 그동안 한국이 빠르게 발전한데 비해, 의사 숫자는 수십년째 그대로 묶여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전공의들을 시작으로 의대재학생들까지 집단 사직과 휴학으로 의대 입학증원을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런데 현직의사와 예비의사인 의대생들 본인과 그 직계가족들을 제외하고 의사 숫자를 늘리는 것에 반대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 모든 사람이 지금은 건강해도 언젠가는 질병에 걸릴 수도 있고, 언제라도 이런저런 사고를 당할 수 있는 것이므로 대부분의 국민은 의사 숫자를 늘리는 의대 입학증원에 찬성할 것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할까 ? 한 가지 방안이 있다.

전국에 있는 10개 국립의대의 학비를 2025년 입학생부터 무료로 하는 것이다. 국립의대를 졸업하면 그 지역에 있는 병원에서 최소 10년 이상 일해야 하는 조건부다.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문제가 생길 수 있으므로, 각 지역의 의대를 무상졸업하고 다른 지역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은 그동안 지원받았던 학비를 이자까지 계산하여 반환하는 단서를 추가한다. 기존 의대생들도 원하는 사람은 대학 당국과 계약서를 쓰고 앞으로의 학비를 무상으로 지원받으면 된다. 그렇게 되면 지역의 의료공백 문제까지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는 부수적인 효과까지 덤으로 얻게 된다.

이렇게 정부에서 명분을 선점하게 되면, 기존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 사태는
결국 자신들의 기득권과 특권을 고수하려는 몸부림일 뿐이라는 환자와 그 가족들 그리고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의사들이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과 죽어가는 중환자들을 내버려두고,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면 중병으로 악화되거나 심지어 당장 죽을 수도 있는 응급환자들을 외면하며 병원을 떠난 집단 사직 사태가 있는가 ? 한국에서만 있는 기괴한 현상이고, 참으로 비인도적인 행태다.

한국과 같이 시장경제를 채택하고 있는 자본주의 국가인 독일에서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모든 학비가 무료다. 모든 국민은 부모의 경제적 능력과 가정형편에 상관없이 각자의 소질과 적성에 따라 교육받아야 한다는 교육의 공공성을 감안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없지는 않다. 초등 교사를 양성하는 전국의 모든 교대 학비는 다른 대학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이 역시 모든 국민이 기본적으로 초등교육은 받아야한다는 교육의 공공성을 감안하여 그 역할을 담당하는 초등교사의 양성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차제에 국회에서 의석수가 가장 많은 제1당이며 거대야당인 민주당의 행태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은 이번 의료대란 사태를 두고 대통령의 사과와 복지부 장차관의 파면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멀지도 않은 불과 4년 전인 2020년에 민주당이 집권하던 문재인 정부 때에도 의대증원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당시 정부는 의대 입학정원을 매년 400명씩 10년에 걸쳐 4000명을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이에 대해 전세계를 덮친 전염병 대재앙이었던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당시의 전공의들은 2차례에 걸쳐 전국 의사 총파업을 벌였고, 의대생들은 의사국가고시 응시를 거부하며 격렬하게 저항했었다. 결국 정부는 코로나19를 핑계로 의사와 의대생들에게 항복하면서 의대증원 방침을 철회하고 말았다.

내로남불이라는 흔한 말이 있다. 같은 행동도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것인데, 지금 의료사태를 두고 민주당이 보이는 행태가 그 말에 딱 들어맞는다. 안보에는 여야가 따로 없듯이 의대증원 문제도 마찬가지다. 야당도 집권세력이 잘하는 것에 대해서는 잘한다고 격려하면서 적극적으로 협력해줘야 한다. 의사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현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부치고 있다고 비난하지만, 이번 의대증원 계획은 의료계를 포함한 많은 전문가들이 1년 이상 충분한 시간을 들여 수많은 회의와 토론을 거치며 마련한 것이다. 또한 교육여건을 감안한 각 대학의 자체 요구를 받아들여 당초의 2000명에서 500명 이상을 줄여서 1500명 조금 못되게 확정한 것이다.

그런데 대체 무엇이 문제라는 것인가. 민주당은 집권세력을 탓할 것이 아니라, 병원을 떠난 의사들과 학교를 떠난 의대생들을 엄하게 질책하면서 현정부의 의대증원 계획에 적극 협력해야 하는 것이다. 나라와 사회안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정부여당을 탓하고 비난하면서 각을 세우는 야당의 고루하고 습관적인 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차기 집권을 꿈구는 정당이라면 민주당은 국리민복(國利民福),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행복보다 자신들의 정파적 이익을 앞세우는 잘못된 행태를 보여서는 안된다. 상대방에 대해서도 잘하는 것은 격려해주고 협력하는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야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안심하고 민주당에게 권력을 맡길 수 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집권하여 잘한 일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이 의대 입학증원이다.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등 정파를 가리지 않고 연속 세 정권에 걸쳐 온갖 압력과 회유를 물리치며 살아있는 최고 권력을 향하여 수사의 칼끝을 멈추지 않고 자신의 직분과 원칙에 충실했던 강직한 검사 윤석열의 뚝심이 빛나 보이는 일이다.

의료는 인간 생존의 가장 기본적이고 본원적인 조건인 건강과 생명을 담당한다. 다른 어떤 직역에 비해서도 최고 최상의 공공성을 가진 영역인 것이다. 정부 당국은 물론이고, 집권 여당과 야당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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