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육아 참나무어린이집대청소 중에도 해맑은 참나무어린이집 부모들. 왼쪽에서 세 번째가 접니다.
참나무어린이집
동료도 아닌데 같이 일하고, 친구도 아닌데 마음 맞는 '공동육아러'
4년 전, 처음 어린이집 분과모임에 참석했을 때 어색했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오랜만에 일로 만난 동료도, 학창 시절 친구도 아닌 어른들과 마주한 자리였습니다. 어린이들도 없이 예닐곱의 엄마, 아빠가 동그랗게 모여 앉아 서로를 별명으로 부르는 자리, 상상만 해도 어색하지 않으신가요?
다행히 그날의 모임은 잘(?) 끝났습니다. 어린이집 운영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갑자기 양육자의 고민을 털어놨다가 또 갑자기 회사일에 대한 불평불만을 터트렸다가 재밌는 일이 있었다며 썰렁한 유머를 주고받으면서도요. 널뛰는 대화 속에서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며 의아해하면서도 즐거웠던 기억입니다.
회의를 마치고도 맥주캔을 기울이며 2-3시간 더 얘기를 나눴습니다. 배보다 배꼽이 큰 모임이었죠. 함께 밤길을 걸어 귀가하던 이웃 엄마, 아빠에게 "꼭 대학 때로 다시 돌아온 것 같아요"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참 오랜만에, 다 큰 어른들과, 실리를 따지지 않고 마냥 즐겁게 대화를 나눴기 때문이었습니다.
재작년 홍보분과장을 맡아 운영위원이 됐을 때는 '왜 이리 일이 많냐'고 자주 불평했습니다. 이직한 회사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집 어린이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집 밖에서 돈도 안 되는 일로 왜 이러고 있나 싶을 때가 왕왕 있었죠.
그런데 돌아보면 그때 제 불평불만에 누구 하나 쓴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수 있다'며 공감해 주었고 '무엇을 도와줄까'라며 일을 덜어주었죠. 덕분에 힘들지 않았다고 포장할 수는 없지만, 덕분에 무사히 건너온 것이 사실입니다. 1년의 임기를 마치자 다른 이가 나의 부담을 짊어졌고, 올해엔 또 다른 이가 배턴을 이어받았습니다. 저는 다시 옆에 서서 그들이 너무 지쳐 쓰러지지 않게 조금이나마 짐을 나눠집니다.
회사처럼 이익을 내야 하는 목표를 공유한 사이도 아니고,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며 서로의 구석구석을 아는 사이도 아닙니다. 힘들고 하기 싫으면 어린이집을 탈퇴하고 돌아서면 그만인 사이이기도 하죠.
어린이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공동체 때문에 품을 낸다는 것은 당장 성과도 없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성과를 위해 현재의 시간과 체력을 투자하는 어리석은 짓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한 줌 공동육아러'인 저는 오늘도 서로에게 '서로'가 되어주기로, 곁을 지켜주기로 마음먹습니다.
어린이집 일에 즐겁기도 힘겹기도 하면서 약 3년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이 많은 모임과 일의 의미를 알게 됐습니다.
일과 육아에 치여 살다가 어린이집 일을 이유로 홀로 집 밖을 나서는 순간이, 이렇게 모인 이들과 맥주 한 잔 하며 보낸 숱한 밤(?)들이, 그저 '일'만은 아니었던 것이죠. 그것은 위안이고, 소통이고, 관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