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동두천 성병관리소 철거 저지를 위한 천막농성 5화 철거 임박,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건물을 지켜주세요!" 임성용 원본 그림의 이름: 촛불문화제.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680pixel, 세로 907pixel" height="340pt" src="file:///C:/Users/SAMSUNG/AppData/Local/Temp/tmp63C5.jpg" v:shapes="_x380742592" width="254pt"> 성병관리소 철거 저지 집중행동 '촛불문화제'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애니... 너를 생각하면 엄마는 눈물이 난다. 35년 전 그 추운 겨울, 보산동 강변 단칸 셋방에서 너를 낳았지. 넌 얼굴이 검은 여자 아이였어. 이 애를 어쩌나! 다리 건너 공동묘지 산에다 버릴까, 포대기에 너를 싸안고 나서려다 네 눈빛을 보고 차마 그럴 순 없었지. 젖을 물려야 하는데... 선뜻 젖을 내어 물리지도 못하고 네 울음소리를 들었단다. 흐린 불빛 아래 방바닥을 뒹굴며 혼자서 몇 시간의 산고 끝에 너를 낳으니 뭔가 거추장스러운 물건을 몸에서 꺼내놓은 것 같았어. 네 무게만큼 억눌린 체증이 한꺼번에 풀린 듯 허탈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키울 수 없는 아이를 어떡할까, 그 고민뿐이었어. 옆집 언니가 와서 연탄불에 물을 데우고 너를 씻겨주고 밤새 내 곁을 지켜주었어. 어쩔 수 없이 너의 엄마가 된 나는 그치지 않고 우는 너에게 젖을 먹였어. 그런데 그 순간이 어쩌면 그리 따뜻하던지... 다음 날, 언니가 목사님에게 연락을 했나봐. 엄마 같은 여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너와 같은 아이들의 보육원도 운영하는 목사님이 오셨어. 목사님이 당분간 엄마를 돌봐줄 테니 백일 때까지만 아이를 키우라고 하셨지. 핏덩이 아이를 맡길 순 없었으니... 그 겨울의 석 달 남짓이 세상에서 엄마와 애니가 만나 살던 날의 전부였어. 애니! 이젠 너도 서른 살 중반이 되었겠구나. 엄마는, 돌 지나서 미국으로 입양되었다는 네 이름이 '애니'였다는 것만 알아. 애니는 엄마 얼굴을 모르고 이름도 모르지. 아빠가 누군지는 더욱 모르고... 엄마 이름은 '김영숙'이야. 엄마도 네 아빠가 누군지 몰라. 우리가 설령 지금 어디선가 만난다고 해도 서로가 누군지 전혀 알 수 없듯이 우린 까마득히 모르는 사이야. 애니를 보내고 엄마는 크게 슬프거나 비참하진 않았어. 솔직히 말하자면 애니가 내 몸을 빌어 태어난 것은 없던 일로 하고 너를 잊어버렸어. 그런데 해가 가고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이 지나고... 무슨 일인지 애니 생각이 먼 기억을 베이듯 스치면 나도 모르게 언뜻 눈물이 난다. 엄마는 애니를 낳고, 그 이후로는 임신을 하게 되면 무조건 애를 뗐어. 그러다 미군 군무원이었던 백인 남자를 만났는데, 정말이지 그 남자랑 아이도 갖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 싶었어. 하지만 그 꿈은 끝내 이루지 못했어. 엄마는 군무원을 만나기 전, 동두천 소요산 숲속에 있는 '몽키하우스'라고 부르는 곳에 보름 정도 갇힌 적이 있었거든. 그때 난 성병 검진에서도 이상이 없었는데 무작정 끌려갔어. 창문을 쇠창살로 가린 감옥 같은 수용소에서 독한 항생제 주사를 맞아야 했어. 그 주사를 맞으면 너무 아파서 거의 혼절할 지경이었고 실제로 죽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게 문제였는지 엄마는 임신을 할 수 없는 몸이 되고 말았어. 엄마가 되라는 신이 내려주신 모성을 그렇게 말살당하고 나서, 언젠가부터 임신할 염려가 없으니 한편으론 홀가분하기도 했어. 아, 내가 왜 이런 얘기를 애니에게 하는지! 엄마가 살아온 세월의 저쪽을 돌아보면 누구에게도 말로는 하지 못할 피 어린 날들이 켜켜이 쌓여 있어. 세월이 갈수록 그 막막했던 세월이 더 막막해지는 건 누구 탓일까. 내 탓을 당하더라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두어 마디 하고 죽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내 얘기가 애니에게 한마디도 전해지진 않겠지만... 원본 그림의 이름: 평화문화제.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458pixel, 세로 972pixel" height="214pt" src="file:///C:/Users/SAMSUNG/AppData/Local/Temp/tmp6414.jpg" v:shapes="_x380766784" width="322pt"> 10월 1일 소요산 주차장에서 열린 평화버스 평화문화제 ⓒ공대위 지난 주 10월 1일. 엄마가 오래 전에 갇혔던 '몽키하우스'(성병관리소) 입구 주차장에서는 '동두천 성병관리소 철거에 반대하는 동두천평화문화제'가 열렸단다. 서울과 수원에서 평화버스가 출발했고 250여 명의 시민들이 모였어. 문화제는 '공대위- 전국 64개 시민사회단체' 주최로 세 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는데, 각계 시민단체 대표들이 '성병관리소 철거 반대' 발언을 하고 '보존과 활용'에 대한 역사문화적 정당성을 호소했어. 풍물패의 길놀이를 시작으로 파견행동예술작가의 퍼포먼스와 가수들의 노래, 시민합창단을 비롯한 다양한 공연이 이어졌고, 참여 시민들은 폐쇄된 성병관리소 철조망에 꽃과 리본을 달았어. 문화제를 마친 시민들은 '성병관리소 보존 요구 만장'을 들고 곧장 동두천 시내로 진출하여 시가행진을 시작했어. 약 100여 명의 행진단을 따라 함께 합류한 동두천 시민들도 많았는데, 그러한 광경은 중소도시 동두천에선 좀체 찾아볼 수 없는 일이었어. 더구나 동두천은 미군부대, 미기지촌, 군사도시의 이미지가 여전히 남아있고 지역 주민들의 정서도 매우 보수적이라서 대규모 시위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 곳인데 놀랄 만한 일이 벌어진 거야. 1992년 미군에게 살해된 기지촌 여성 '윤금이 사건'으로 전국적 여론이 끓어오른 적이 있었지. 한국 전쟁 이래, 남한땅에 미군이 주둔한 후로 40년 만에 동두천에서 '미군 범죄 규탄' '불평등한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개정투쟁'의 불씨를 당긴 것이었어. 그로부터 다시 30년이 더 지난 동두천에서 수백 명의 시민들이 모여들어 전국 단위 규모의 집회가 벌어졌다는 사실은 '하나의 사건'으로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어. 행진 대열 선두엔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라'는 현수막이 앞장서고, 행진을 이끄는 구호는 시종일관 "동두천시는 역사 흔적 지우기 중단하고 성병관리소 보존하라"는 것이었어. 그러나 동두천시 공무원들은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문화제가 끝난 이틀 후, 철거공사 업체 대표를 데리고 성병관리소 철거 반대 천막농성장 현장에 나타났어. 담당 공무원은 "입구를 막고 있는 천막 치워 달라, 공사장비 들어온다, 공사 방해하면 경찰 부르겠다."고 천막지킴이들을 몰아세웠다지. 특히 소요산공원관리소 소장이란 자는 자신이 무슨 대단한 권한을 가졌다고 굉장히 화를 내면서 여성 지킴이에겐 충분히 겁박을 느낄 만한 행동을 보였다고 하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었어. 성병관리소 철거를 책임진 동두천시 관광휴양과 주무부서 과장은, 철거반대 천막농성을 40일째 하고 있는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김대용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경찰 부르지 않게 해달라"는 부탁을 했대. 그 말은 계속 철거 저지한다면 경찰을 부르겠다는 말이 아니겠어. 관광휴양과장도 내심 충돌을 바라지 않고 경찰 경비력을 동원하는 일은 없기를 바라고 있듯이, 성병관리소를 보존하고 지키려는 사람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야. 누군들 물리적으로 싸우고 업무방해로 입건되고 연행되길 바라겠어. 심지어 현장 오가는 경찰도 그렇고 철거업체 대표도 그렇고 담당 공무원도 그렇고, 하는 말들이 다 똑같은 거야.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왜 시청이 대화의 문을 닫고 이대로 두는지 모르겠다. 최소한 협상이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어. 문제는 행정집행 결정권을 가진 '동두천 시장'이 아예 보존이라면 귀를 막고 독단적으로 철거를 밀어붙이고 있으니, 그 누구도 철거를 잠시 미룰 여지조차 없다는 거야. 정말 동두천시에서 철거가 불가피하다면 건물 이전이나 별도의 기억관 마련과 같은 절충안도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는데, 동두천 시장은 그런 논의나 협상 자체를 거부하고 있대. 9월 23일 경기도의회는 '기지촌 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안'을 통과시켰는데, 이 개정안은 기지촌 피해 여성에 대한 국가 책임을 밝히고 '기지촌 여성 피해자 보호 지원'과 경기도 차원의 기념사업 근거를 마련한 것이었거든. 따라서 기지촌 여성들을 강제로 감금한 성병관리소는 피해 증거물이며 개정조례안에서도 기념사업에 중점을 두었으므로 김동연 경기지사의 책임이 막중하다고 볼 수 있어. 그런데 경기지사는 아직까지 특별한 역할을 하지 않고 동두천시와 중재에 나서지도 않고 있으니, 철거를 막아달라고 애쓰는 사람들은 이제 누구에게 하소연할까. '근현대문화유산의 보존이 필요한 경우 임시지정 문화재로 등록할 수 있는 국가유산법'이 시행되었음에도 국가유산청도 모른 체 하고 관련 기념사업 조례를 개정한 경기도도 팔짱을 끼고 있고, 단 한 명의 국회의원이라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발 벗고 나서지 않고 있으니... 동두천 시장은 시민사회의 요구를 일절 무시하고 '해볼 테면 해봐라' "다 필요 없고 무조건 때려 부순다'는 식으로 막 나가는 게 아니겠어. 애니야!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너에게 뜬금없이 동두천과 성병관리소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구나. 그럼에도 엄마가 늦게나마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그곳이 바로 애니를 세상에 존재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야. 물론 그곳을 알기 위해서는 너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 모두에게도 많은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엄마가 입을 열고 무슨 말이든 하지 않으면 엄마의 생애는 성병관리소 건물이 사라지듯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야. 살아서도 엄마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고 '양공주'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는데,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인이면서도 '국민 취급'을 받지 못하고 살았는데, 국가에선 미군 상대 성매매 외화벌이 애국자로 포주에겐 오로지 돈벌이 수단으로 살았는데, 죽어서도 한 '인간'이 아닌 '몽키'로 묻힐 순 없잖아. 어느새 나이 든 엄마 친구들은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고 있어. 평화문화제에서는 피해 당사자 여성이 마스크를 쓰고 연단에 올라 피해 사실을 직접 알렸어. 일본군 위안부 김복동 할머니가 피해 사실을 밝히기까지 무려 45년이 걸렸는데, 엄마도 미군 위안부였다는 말을 애니에게 하기까지 30년이 넘게 걸렸구나. 사람들은 기지촌 여성들이야 일본군 위안부와 다르다고 우기는 경우가 많아. 한창 기지촌이 성황을 이룰 땐 전국 40군데 기지촌에서 벌어들이는 외화가 1억5천만 달러였다고 하니, 정부에선 성병관리소와 같은 시설을 만들고 기지촌 여성들의 성병을 강제로 관리했거든. 관리 대상인 엄마는 '한국경제를 살린 애국자'라고 칭찬을 듣고, 1달러라도 더 벌어라고 독려를 받고, 미군에게 친절한 여성이 되라고 교육을 받았어. 그런 훈육을 정부에서 시켜놓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매춘부'라고 등을 돌리다니, 기지촌과 성병관리소를 '부끄러운 과거'라고 지워버려야 하다니... 동두천 시장의 생각도 똑같은 거야. "저 음침한 흉물이 무슨 역사 유산이야?" 여성, 인권, 평화, 문화, 교육과 같은 역사적 관점이나 가치엔 전혀 관심이 없고 물질적 이기심 외엔 정신사적 의미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어. 미래지향적인 비전이나 정책, 창의적 발상이 없는 시장은 유일하게 던져놓은 '소요산관광지확대개발사업'에 정치생명을 걸고 있어. 더구나 그 사업의 핵심이 '성병관리소 철거'이고 그것이 마치 동두천의 경제회복을 결정할 사안이라고 하면서, 철거방침에 단 한 발짝도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입장이야. 과연 성병관리소 철거만이 동두천을 살리는 길일까? 누가 봐도 그건 말이 되지 않는 논리이고 단순한 억지잖아. 원본 그림의 이름: 시민행진.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280pixel, 세로 960pixel" height="237pt" src="file:///C:/Users/SAMSUNG/AppData/Local/Temp/tmp650F.jpg" v:shapes="_x306676496" width="316pt"> 문화제를 마친 참여자들, 동두천 시내 시민행진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시민의 힘으로 철거를 막아내자" 평화문화제가 열린 트러스에 설치된 현수막 문구를 보았어. 엄마 가슴이 불에 데인 듯이 아파왔어. '내가 언제 이곳을 찾아와 떠돌고 있지?' 갑자기 페니실린 주사를 맞은 것처럼 눈앞이 아찔하고 어지러워... 애니야, 내 가여운 딸아! 갓난 너를 안고 엄마는 저기 철조망을 넘어 내가 살아나온 성병관리소로 조심스레 들어간다. 여기저기 눈 흘기고 매몰차게 쏘아붙이는 험담이 들린다. 성매매는 어느 나라에서건 있는 일이고 다만 '먹고 살기 위해 했던 짓'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인데, 왜 하필 미군 위안부니 국가 폭력이니 하는 것이냐고 한다. 그래서 더욱 더 저 건물을 없애야 하는 것이라고! 미국과의 우호, 국방, 협력도 중요하니 좀 긍정적으로 보라고 역정을 낸다. 그런데 말이다. 난 어쩔 수 없이 기지촌 여성이 되고 애니의 엄마가 된 게 아니란다. 그건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거야. 바로 그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감추려고 범죄의 증거물을 없애려고 하는 게 아니겠어. 10월 2일, 성병관리소 철거업체가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들렸어. 그리고 10월 4일, 천막농성장에 온 시청 공무원과 업체 대표는 철거 사전작업으로 현장 가림막을 치겠다는 통보를 했고, 10월 5일엔 공원관리소 직원들이 건물 주변 풀베기 작업을 하고 갔어. 내일모레면 가림막 자재 트럭이 들어오고, 철거 중장비가 진입하게 될 거라고 봐. 성병관리소 입구를 막고 있는 천막은 금세 치워지고 항의하는 천막지킴이들은 업무방해로 경찰의 제지를 받게 되겠지. 도무지 철거를 막을 방법은 없어 보여... 그렇지만 '성병관리소 보존' 국회 청원에 대한민국 국민 5만 명이 동의해서 청원인 목표 달성으로 해당 청원이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로 이관되었고, 경기도 청원 역시 1만 명 목표에 9,300명이 넘어 곧 청원 성사가 될 것 같아서 큰 힘을 얻었어. 시민의 힘으로 철거를 막아내자는 청원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줄은 몰랐거든. 애니야! 진료실을 지나 교육실을 지나 식당을 지나... 온갖 쓰레기더미와 퀴퀴한 냄새와 녹슨 창살과 벽마다 쓰인 낙서를 본다. 계단을 타고 2층에 좌우 여덟 개의 방을 돌아보고, 또 계단을 타고 엄마의 발길이 닿은 곳, 난간 없는 옥상으로 올라왔구나. 나는 인간으로서 나의 존엄을 확인하기 위해 소요산 등성이 맑고 푸른 하늘을 이제야 보러 왔구나. 엄마가 이곳에서 떨어져 내릴 때, 그 짧은 순간의 한 줄기 바람과 흩어진 구름과 가랑잎과... 어딘지도 모르는 묘지에 누워 엄마는 소리 없이 늙어왔구나. 애니가 궁금하지도 않고 애니를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면서, 눈물 없이 아픔 없이 내 모든 세상의 딸 애니에게 기도문 한 구절을 바친다. 내 손을 잡아줘! 우리는 사랑의 가르침을 위해 삽니다. 사랑의 슬픔을 전하기 위해서 죽기도 합니다. 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그 모든 일을 살펴보는 것이며 내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칼을 돌아보는 것이며 그 모든 일과 의로움과 칼끝에 남은 사랑이 인간의 슬픔으로 파고들 때 우리의 사랑은 완성되어 갑니다. #동두천 #성병관리소 #기지촌 #동두천시장 #미군위안부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