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 검색, 콘텐츠까지... 삶에 침투하는 기술기업, 이대로 좋을까?

[김성호의 독서만세 252] 바이난트 용건 <온라인 쇼핑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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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starsky216)등록 2024.10.15 10:11
급변하는 세상이다. 어제의 기술이 오늘은 무용한 쓰레기로 전락하고, 오늘은 돌보지 않던 무엇이 내일의 주역이 된다. 변화의 중심은 기술이다. 인터넷 기반의 온라인 생태계는 더 이야기하는 것조차 무가치한 일상이 되었다. 손 안에 쥔 컴퓨터에 우리 뇌의 일부를 외주주고 있다는 평가 또한 새롭지가 않다. 집 한 칸을 위풍당당하게 채우고 있던 백과사전과 국어사전이 쓰임을 잃은 지 오래, 다음은 지금 이 순간 더없이 가치 있는 무엇일지 모른다.

쇼핑은 자본주의의 출구인 동시에 입구이기도 하다. 삶을 꾸려가기 위해 소비하지 않는 이가 없고, 내로라하는 일등 기업부터 동네 노점상에 이르기까지 소비자의 주머니를 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쇼핑의 주도권이 온라인으로 기울었단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다. 전통시장과 편의점, 대형마트에 이르기까지 기존에 가졌던 독점적 주도권을 잃고 남은 시장서 분투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온라인이 다 같은 형태의 시장인 건 아니다. 시장의 참여자도 참여하는 방식도, 그 전략과 기획방식이 하나하나 다르다. 오프라인의 시장이 전통시장과 편의점, 중형마트와 대형마트, 창고형마트까지 천차만별인 것처럼 온라인 공간의 시장 형태와 참여자들도 천차만별인 것이다. 변화하는 기술흐름과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 이들이 기민하게 제 경쟁력을 가꾸어 가는 것도 자연스런 일이다.

온라인 쇼핑의 종말 책 표지 ⓒ 지식노마드


기술로 변하는 온라인 쇼핑 판도

<온라인 쇼핑의 종말>은 세계적 기업 아마존을 중심으로 전 세계 온라인 쇼핑판도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을 짚어내는 책이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가상현실 등 미래의 주인공이 되리라고 고개를 치켜드는 기술과 그에 발맞춰 변화하고 있는 쇼핑생태계의 현재를 보여주고 미래를 모색한다. 특히 아무리 대단한 혁신이 이뤄진다 해도 플랫폼에 올라탄 구멍가게 신세를 벗기 어려운 대다수 리테일, 즉 군소 유통업자들의 설 자리가 급변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바인난트 용건(Wijnand Jongen), 네덜란드 e-커머스협회 창설자이자 미래학자로 알려져 있다. 기술에 따라 변화하는 상업생태계에 관심이 많아 직접 온라인 쇼핑 포탈을 창립하고 중국과 미국 등 시장을 선도하는 국가들을 오가며 책을 써 출간에 이르렀다고 전한다.

온라인 상업생태계의 미래를 점치는 책이 많지만, 유럽의 시선으로 그 변화의 첨단에 서 있는 미국과 아시아에 관심을 갖고 구조적으로 살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저술이다. 무엇보다 책이 출간되고 5년여가 흐르는 동안 책이 예측한 변화가 대체로 옳았다는 점은 미래학자들의 저술을 시차를 두고 읽기를 즐기는 나와 같은 독자에게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온라인 쇼핑의 종말>은 과거 전통적인 온라인 상거래 플랫폼이 축소되고, 심지어 종말을 맞이하리라고 주장한다. 전통적인 온라인 상거래란 오프라인 기반 업체들이 온라인 플랫폼에 제품을 올려 거래하는 것으로, 온라인 플랫폼은 그저 오프라인의 가게처럼 상행위가 이뤄지는 장소로 제한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변화한 기술은 제품개발부터 마케팅, 상거래와 배송에 이르는 전 단계를 고립된 별도의 산업분야로 남겨두지 않는다. 물류체인 전반이 급속도로 통합되고 있으며 저항을 억누르는 힘이 강하게, 때로는 부적절하게 작용하게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 사례와 함께 언급한다.

밸류체인이라 불리는 일련의 과정을 통합하는 움직임은 여러 업체가 공통적으로 내보이는 것이지만, 어디까지나 대표주자는 아마존이다. 미국 이커머스 시장에서 압도적 1위로 군림하는 건 기본값일 뿐이다. 아마존 고와 같은 무인매장 등 다양한 오프라인 점포에서 월마트와 견줄 만한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글로벌 이커머스에서도 손꼽히는 강자로 알리바바와 함께 시장을 선도한다. 클라우드 서비스에서도 강자로 올라섰고, 플랫폼 내 검색광고가 급성장해 22%를 넘어서 구글을 위협할 정도가 됐다는 평이다. 아마존 프라임으로 대표되는 콘텐츠 제작 및 배급도 성공적으로 운영돼 소비자들이 아마존 생태계에서 나갈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아마존이 장악한 온라인 상거래, 어디까지 갈까?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는 수차례에 걸쳐 아마존이 유통에 머무르지 않을 것임을 공표한 바 있다. "우리 아마존은 기술기업이다. 유통사업 진출은 단지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라는 그의 말은 후발 창업자와 유통기업들에게 커다란 영감을 던지기도 했다. 기술을 통해 소비자를 통합하고 시장을 선도하는 서비스를 점거하는 일이 사업의 성패를 가늠한다고 믿는 이가 많았다.

책은 아마존이 이제 막 전체 체인을 점거하려는 야욕을 드러내던 시기, 그와 같은 변화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란 걸 알도록 한다. 유럽이 개인정보를 활용한 부적절한 광고, 우월적 지위를 부당하게 활용, 자사 서비스 우대, 반독점 등의 사유로 수차례 아마존 서비스에 과징금을 부과했음에도 아마존의 시장점유율이 매년 꾸준히 올라 지배적 사업자가 된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 소비자는 시장 전체를 관망하지 않고 개별 서비스만 이용하느라 업체의 전략적 움직임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이 곳곳에서 부당함을 낳는다.

모든 체인을 점거하기 위한 핵심고리는 역시 온라인 마켓이다. 아마존과 같은 거대사업자의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가격경쟁력과 소비자 편의성이다. 특히 아마존은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할 자격이 있다고 꾸준히 주장해왔다. 이를 위해 입점한 리테일러들은 박한 이문을 남길 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아마존이 입점 리테일러들의 편의를 봐주지 않는단 사실은 그들의 독점적 지위가 강해질수록 리테일러들이 받는 압박 또한 커져온 지난 시간이 증명한다. 책이 적고 있는 구체적 사례는 소비자가 그저 눈앞의 편의만을 좇는 게 스스로의 목을 조르는 일이 아닌가를 의심케 한다. 이쯤이면 저자가 책에 '온라인 쇼핑의 종말'이란 제목을 붙인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 것도 같다.

책은 또한 유럽이 시장을 놓치고 있다는 사실도 아프게 내보인다.

전 세계 100대 시장과 플랫폼 중에서 미국이 70개를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는 중국이 25개, 유럽이 5개를 차지하고 있다. 유럽에는 구글은 물론이고 페이스북이나 위챗에 필적할 만한 기업이 없다. 사실 기껏해야 부킹닷컴, 스포티파이와 잘란도 정도가 그 대열에 합류하려는 유럽의 시도들이 이뤄낸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148p

기술기업의 문어발식 진격... 영향은?

아마존과 구글 등 미국발 세계적 기업이 쇼핑과 검색이란 본업에 머무르지 않고 사람들의 삶 전반에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는 사실을 저자는 심각하게 바라본다. 그에 대응할 역량을 유럽은 얼마 가지고 있지 못하다. 미국발 세계적 기업의 점유율은 높아만 지고 유럽의 업체는 리테일러로 고립되어 간다.

타개할 방향은 어디에 있는가. 쇼핑객을 분석하고 가격이 아닌 편의성으로 승부를 보려는 몇몇 업체들의 사례는 정론이지만 무력하게만 보인다. 결국은 시장이 잠식되고 사회적 제재는 우회당할 것인가. 책은 해법을 내놓지 못하지만 적어도 상황을 직시하는 것이 대책을 마련하는 길이란 사실을 알린다.

어디 유럽만의 이야기일까. 한국의 상황도 얼마 다르지 않다. 시장 독점적 지배자가 되기 위한 무한경쟁의 소용돌이 속에 한국 온라인 마켓 주자들이 죄다 뛰어든 실정이다. 그 가운데 티몬 사태와 같은 일이 벌어졌고 리테일러들만이 피해자로 남겨졌다. 선두주자인 쿠팡은 가격은 물론 발빠른 배송, OTT 강화 등을 차별화의 지점으로 삼았다. 여러 논란이 있음에도 쿠팡이 순항하고 있다는 사실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온라인 쇼핑의 종말>에서 탁월한 답을 구할 수는 없을 테다. 다만 책은 고민하게 한다. 변화하는 기술과 산업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구조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그 사이에서 인간의 자리를 생각하게 한다. 그로부터 포기하지 않게 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택시기사나 통근하는 사람들, 대학생과 노인들은 소포를 배달하면 안 되는 것일까? 사물인터넷과 빅데이터는 이러한 새로운 대중기반 이니셔티브를 보다 더 지속가능한 배송 프로세스의 일부로 편입시켜 줄 수 있다. (중략) 사회적 배송의 반대쪽에는 드론 배송이 있다. 프로펠러가 달린 스마트폰 같은 비행용 미니로봇은 집 앞 잔디밭에다 소포꾸러미를 내려줄 수 있다. (후략) 드론 배송은 향후 10년 동안 전자상거래에 커다란 혼란을 야기시킬 것이다. 드론 배송은 대형 소포우편물 배송업체들과 쇼핑 생태계들로만 제한되어 있는데, 이는 높은 개발 및 실행 비용 때문이다. -301, 302p

기술은 점차 새로운 부문으로 넘어간다. 효율적으로 바꾼다는 명목 아래 자본과 결탁한 기술이 그만한 역량을 갖추지 못한 이들의 자리를 대체한다. 얼마간은 효율적으로 보이겠지만 열악한 상황에 놓인 이들, 또 기술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에게 가혹한 압력이 따를 날이 멀지 않다. 그러나 그들 또한 사람이며 공동체의 구성원이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초국적 자본과 첨단 기술기업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단 것 또한.

<온라인 쇼핑의 종말>은 역설적으로 온라인도, 쇼핑도 종말을 맞지 않을 것을 알도록 한다. 종말 앞에 선 것은 적응하지 못한 지역의 인간들이다. 바이난트 용건이 고민하듯 네덜란드가, 유럽 전체가 그와 같은 종말을 맞이할 수 있다. 한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우리가 할 것은 그와 같은 치열한 고민, 새로운 산업의 전기에서 귀퉁이로 밀려나지 않는 경쟁력과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일 테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서평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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