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자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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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선(andus829)등록 2024.10.16 08:26
강한 자

정규 학교를 퇴직하고 다시 근무하게 된 만학도 학교(이 학교는 교장, 교감으로 퇴직을 해도 평교사로 부임하여 근무(봉사)를 한다.)에 부임했을 때 교장으로 근무하고 계시던 선생님께서 어느 날 조회 시간에 교직원들에게 하신 말씀이 지금도 귀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벌써 몇 년이 넘어가는데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다는 건 그만큼 時宜適切(시의적절)을 넘어 세월을 아우르는 진리가 들어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무슨 말씀인고 하면 바로 이런...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게 강한 자이다."라는 말씀.

별로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고 있던, 그러니까 물고 물리는 약육강식의 세계, 인간의 세계, 밀림의 세계에서 아주 당연하게 여기고 있던 생각이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라는 단순한(?) 진리였는데 그걸 어느 한순간에 뒤집어 버리다니...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험악하고 경쟁이 난무하는 정글에서 다른 존재보다 강해야 살아남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약해 빠져 가지고는 제 한 몸 추스르기 힘들고 살아남기를 보장 받지 못하는 게 아닌가?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말은 표면적으로는 자연계의 경쟁에서 강자가 승리한다는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겠다. 자연계에서는 힘이 센 동물이 더 약한 동물을 제압할 수 있고, 더 많은 자원을 차지할 수 있기에 이 관점이 맞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사자는 밀림의 왕으로서 약한 동물을 사냥하며 자신의 우위를 유지한다. 인간 사회에서도 비슷한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강한 사람들은 더 나은 기회를 가지고 자신을 더 잘 보호할 수 있는 경향이 있다.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권력과 부가 있는 사람들이 더 나은 생존 가능성을 보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말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는 한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단순히 신체적이거나 경제적으로 강하다고 해서 모든 상황에서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강한 자도 때로는 예기치 않은 변화나 위기 속에서 무너질 수 있으며, 다양한 요소가 생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진이나 전염병 같은 자연 재해나 사회적 위기는 아무리 강한 자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

반대로,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다'는 말은 적응력과 회복력에 더 초점을 맞춘다. 이 관점은 다윈의 진화론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생존을 위한 진정한 강함은 단순한 힘이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에 얼마나 잘 적응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환경이 변화할 때, 과거의 '강함'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 그때 중요한 것은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이 개념은 들어맞는다고 볼 수 있다. 경제적, 기술적 변화가 매우 빠르게 이루어지는 세상에서 단순히 강한 자가 아니라,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고 적응할 수 있는 자가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쉬운 예로 기업의 경우, 전통적인 강자들이 새로운 기술이나 시장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몰락하는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반면에, 작은 스타트업이 유연성과 창의력으로 시장을 선도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살아남는 자가 진정한 강자임을 보여준다.

엊그제 비가 그치고 항상 걷던 월명산을 걸었는데 이제는 거의 저버린 꽃무릇 사이에 아직도 붉은 빛을 발하고 있는 몇 송이의 꽃을 보게 되었다. 이야말로 강인한 생명력, 즉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경우이니 강한 꽃의 살아남음이 아니라 살아남아 강함을 보여주는 경우가 아니면 무엇일까?

이는 개인의 삶에서도 중요할 것 같다. 역경을 겪을 때, 단순히 강한 사람보다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결국 성공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한다.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는 말은 단순한 물리적, 경제적 힘이 아닌, 정서적, 심리적, 사회적 힘을 강조하는 철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강함의 정의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 한 시대의 강함이 다음 시대에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으며, 새로운 강함이 필요하게 된다. 결국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는 말은, 인간의 진정한 강함은 역경 속에서 변화를 수용하고 그 안에서 성장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는 깊은 진리를 담고 있다. 아마 당시 교장 선생님의 말씀은 점점 입학생 수가 줄어드는, 즉 학교의 존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입학 자원 상황에 대해 우리 교사들의 지원자 발굴에 대한 생각을 환기시켜 주시기 위한, '강한' 체하면서 기다리다가 문 닫는 경우보다 꾸준히 발품을 팔고 시간을 들임으로서 입학 자원을 끌어오는, 그래서 결과적으로 학생들 가방끈 길이도 늘여주고 학교도 문을 닫지 않는 win win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살아남아 강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하신 것 같다.

주위 대부분의 동료들이 다음 생을 기약하고 겨울에 나올 잎사귀를 기다리며 화사함을 마감할 때 아직은 내 할 일이 남았음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한 송이 꽃무릇을 보면서, '그래, 네가 강한 놈이다'를 느꼈으니 강함이 생존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게 진정한 강함이라는 깨달음을 준 꽃무릇이다.

첨부파일 꽃무릇.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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