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로 들어 온 돼지 목살을 자식들이 오면 같이 드시겠다고 여태 지니셨다가 오늘에야 내놓으신다. 부엌에서 쿰쿰한 냄새가 나서 여기저기 쏘아보다가 원인을 알았다. 돼지고기 색깔이 퍼릇한 게 보인다. 냄새를 맡아보니 역하다. 당장 두엄 더미에 갖다버렸다. 그냥 버리지 말고 땅에다 묻지 그랬냐면서 고양이가 먹으면 어쩌냐고 걱정하는 엄마 말에, 여우는 일부러 땅속에 묻었다가 썩혀서 고기를 먹기도 한다고 아버지가 덧붙이신다. "여우가? 어떻게 아세요?" "옛날에 홍역 돌면 여기 벌판이 다 애들 공동 묘지였어. 겨울에 병이 돌아 땅도 못 파고 버려두면, 여우가 오장을 끌어다가 땅에 묻었다가 먹으니까 알지." 전설 같은 이야기에 우리는 귀를 쫑끗하면서 들었다. 구운 고기 대신 데친 쪽파를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서 아버지께서 모처럼 말문을 트신 고리짝 이야기가 꿈인가 생시인가 싶다. 부모님과 얘기를 들으면 사람 책을 읽는 듯 흥미진진하다. 도대체 내가 모르는 엄마, 아버지 이야기가 얼마나 더 많을까? 지난번에는 북쪽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화폐개혁으로 돈이 필요없게 되자 몸에 지니고 내려 온 돈을 다 버려서 경의선 철도에 북한 지폐가 가득했단 이야기를 하셨는데, 이번 이야기도 그 못지않게 충격적이다. 부모님 정신이 총명하실 때, 더 자주 찾아뵙고 내 몸에도 그 이야기를 심어 내 자식들에게 전해주고 싶단 생각이 불처럼 일어난다. 일부러 취재를 나가도 쉽게 얻을 수 없는 생생한 역사책이다. #여우 #경의선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