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어릴 때는 건강하고 착하게 자라나고 한편으로는 학교에서 착실하게 공부 잘하길 고대하면서 뒷바라지를 했다. 방학에는 틈틈이 세상 보는 눈을 키우라고 없는 살림에도 여행만큼은 자주 다녔다. 대학에 들어가고부터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도 모르고 그저 취업해서 자기 밥벌이하는데 몰두하느라 천 리 만 리 멀어진 기분이었다. 모처럼 가족끼리 모여 식사를 했다. 20대가 지닌 보수적 가치관과 50대가 지닌 진보적 가치관이 부딪혔다. 자신들은 중립인데 부모 세대가 편향적이라고 하면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라는 조언까지 한다. 힘들게 번 월급의 상당액이 세금으로 나가서 힘이 들다고 하소연하면서 각자 처지에 따라 지지하는 이유가 다를 텐데 왜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느냐는 말을 보탠다. 힘이 쪽 빠졌다. 자식이 크면 하나의 인격체가 되어 철학을 논하고 예술 감상을 나누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구가 되길 바랐던 나의 꿈이 헛된 꿈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세계 정세를 바라볼 때도 슬기롭게 대처하면서도 헌법에 명시한 남북통일을 잊지 않고, 세계 시민 가치에 걸맞는 인간애를 발휘하길 바랐던 나의 생각은 '강요'가 되고 말았다. 중립은 회색지대로서 기회주의나 다름없다. 중용과 중립은 다르다. 중학교 3학년 때 배우는 덕목이다. 대학을 나와 직장인이 되어서도 그 둘의 차이를 혼용하는 태도에 갑자기 그동안 내가 아이들에게 기울였던 교육의 가치가 무엇인지 혼란이 왔다. 그러나 누굴 탓한단 말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도태될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아이들을 어떻게든 성공하라고 부추겼던 내 마음이 문제가 아니었던가? 아이가 월급을 받아 사주는 물건과 용돈을 효도라 생각하면서 알게 모르게 뿌듯해했던 그 마음도 한 몫한 것이 아닐까? 내가 아들 세대와 갈등하듯 부모님도 나와 갈등하면서 외로운 마음이 들었겠단 생각도 든다. 그때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 부모님의 생각을 바꾸려고 화도 내고 울기도 했으니. 치숙(채만식)에서 숙부가 조카에게 '그놈 사람 버려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사회주의에 빠져 감옥살이를 하는 통에 각혈까지 하는 아저씨 입에서 착실하게 일하는 자신을 쓸모없다고 비판하니 조카는 화가 단단히 난다. 그리고는 대학 공부까지 마친 아저씨가 부모와 처를 배반했다고 비판하는 작품이니 지금 이 작품을 20대가 읽는다면 누가 풍자의 대상이라고 생각할까? 과연 조카라고 생각할까? 조카가 말하는 대로 동의하면서 숙부를 비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저절로 비감에 빠진다. #치숙 #20대정치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