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윤석열 정부 외교실패... 이것부터 살펴야

[김성호의 독서만세 255] 박한진, 이우탁 <프레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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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starsky216)등록 2024.11.06 10:04
'친중국(親中國), 결일본(結日本), 연미국(聯美國)의 책략을 근간으로 자강을 도모하라', 19세기 말 청나라 외교관이던 황준헌의 저술 <조선책략>이 담고 있던 핵심 메시지다. 19세기 말엽, 일본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하던 황준헌이 수신사로 일본에 와 있던 김홍집에게 건넨 책으로, 향후 조선의 외교가 중국과 일본, 미국을 연결하여 북방의 러시아에 맞서야 한다는 내용으로 꾸려졌다.

그러나 조선의 미래가 어떠했는지를 우리는 안다. <조선책략>이 조선 사대부의 필독서가 되고 세계를 배우려는 움직임이 잠시잠깐 인 것은 사실이다. 청나라와 일본을 통해 급변하는 세계질서를 배우려고 사신단을 파견하고, 낡아 있던 군대를 신식으로 정비하는 노력도 일었다. 그러나 주변 강국의 야욕은 조선의 변화를 기다려주지 않았고, 조선은 내치도 외교도 제대로 이끌지 못하고 쇠락의 길을 걷다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다.

그럼에도 이 책의 핵심적 주장, 주변 강국과의 우호적 관계를 통해 자강을 도모해야 한다는 건 의미가 깊은 이야기다. 백수십년 전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한반도 또한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일본 같은 세계 초강대국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 아래 모여 있는 장이거니와 무엇보다 북한은 사실상의 핵보유국이자 강력한 재래식 무기를 남방을 향해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 한반도가 군사적관점에서 만큼은 여전히 안심할 수 없는 위기국면에 놓여 있다고 보아야 적확할 테다.

프레너미 책 표지 ⓒ 틔움출판


거듭된 외교실패... '미중' 사이 꽉 낀 한국

윤석열 정부의 실정이야 하나둘이 아니지만 외교의 실패는 백번 지탄당해 마땅한 심각한 문제다. '1호 영업사원'을 표방하며 취임 직후부터 전 세계를 오간 그다. 미국과 일본을 수차례 방문했고 동유럽과 서아시아, 남아시아도 두루 찾아 나섰다. 미일 편중외교란 비판을 들을 만큼 두 나라를 적극적으로 만나려 했으나 중국과 러시아, 무엇보다 북한과의 관계는 경색돼 더 나빠질 게 없을 정도였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한미일과 북중러 간 블록화가 강고해졌다는 평가는 이제는 새로운 일도 아니다.

북한이 이례적으로 러시아의 우군으로 우크라이나에 전투부대를 파병한 사실은 한국의 외교실패가 어떠한 상황인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지난 6월 북한과 러시아가 포괄적전략동반자협정을 체결하며 사실상 군사동맹에 가까운 관계로 격상된 것부터 그 연장선에서 이번 파병 결정이 이뤄진 것까지 한국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 그 반대편에는 지난 2022년 이례적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참석을 결정하며 중국의 반발을 불러온 윤 대통령의 결정이 있다. 나토는 이 해 러시아에 대한 대응을 넘어 반중연대로의 나토의 기능을 강화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세계는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과 이에 도전하는 러시아와 중국 등 지역패권국의 결집 양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냉전 중에도 독립국의 지위를 확고히 지켰던 핀란드와 스웨덴마저 NATO에 가입한 것은 세계가 급격한 신냉전의 양상으로 돌입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윤 정부의 편향외교는 그 스스로 이 블록구도의 한 축에 가담키 위해 내달리고 있는 꼴이다.

<프레너미>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여 있을 밖에 없는 한국의 상황에서 정치외교적 좌표를 새로 모색하는 책이다. 연합뉴스 입사 뒤 외교부문을 주로 취재해온 이우탁과 중화권을 오래 연구해온 학자 박한진이 대담한 내용을 바탕으로 두 나라의 드러나고 또 감춰진 욕망과 한국의 현명한 선택을 돌아보려 시도한다.

포기할 수 없는 시장 중국의 존재감

책은 한국을 둘러싼 현실을 진단하는 것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첨단 제조국가인 한국은 에너지 소비와 생산품 수출을 반드시 행해야 하는 국가이며 경제규모에 비해 내수시장이 턱없이 작은 나라란 것을 알린다. 확고한 한미동맹 아래 안보는 미국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중국이란 시장을 포기할 수 없단 건 이미 분명한 일이다. 미국에 이어 국내총생산 독보적 2위로 떠오른 중국 시장은 한국 뿐 아니라 다른 여러 제조국가들에게 포기할 수 없는 시장으로 기능한다.

중요한 사실은 아시아가 중국을 중심으로 지역적 가치사슬을 확고하게 구축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중국을 '세계의 공장'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세계의 조립 공장'이라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입니다. 중국 혼자 모든 것을 다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상품을 생산하기 위한 부품과 소재를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생산하고 이를 중국에서 최종 조립해 완성품을 만드는 구조 때문입니다. -83,84p

그러나 미국과 중국을 둘러싼 상황이 점차 경색되고 있단 건 주지의 사실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과 미국의 경제구조가 전과는 다른 형태로 재편된 건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중국은 저부가가치형 수출구조에서 탈피해 디자인과 연구개발, 라이센싱이며 브랜드에 집중 투자한다. 반면 미국은 지난 반 세기 가까이 신경도 쓰지 않던 제조업 육성에 나서며 자국내 취업률 상승과 임금 향상에 집중한다. 두 나라간 산업형태는 점차 많은 접점을 공유하게 됐다. 시장에서 두 나라 기업이 경쟁하는 종목이 한둘이 아니다.

미국과 중국은 각기 경제와 외교 정책을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공유이익 부분의 갈등이 커지고 있습니다. (중략) 공유이익의 갈등이 커지면서 양국은 자그만 충돌에도 부딪힐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153p

안보와 경제 모두에서 미국과 중국은 점점 더 강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남쪽과 동쪽 바다 모두에서 영유권 분쟁을 벌여온 중국은 이 일대 국가들을 지지해온 미국에 불편한 기색을 수차례 드러내왔다. 항공모함이 이 일대에 진주하고 중국이 대규모 해상훈련을 펼치는 것도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미국은 중국 제품에 특별 관세를 물리고, 중국으로 첨단기술이 들어갈 수 없도록 경제제재도 진행해 왔다. 미국 내 중국이 인수한 기업들에 대해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 사업권을 침해한다는 논란도 지속됐다.

윤 정부서 단절된 남북 관계... 책임은?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은 운신의 폭이 갈수록 줄어왔다.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선 것이 무색하게도 미국의 사드 설치 압박으로 이듬해부터 중국과 외교적 갈등을 빚을 밖에 없었다. 중국이 한국관광을 전면 금지하고 한국 기업에 불이익을 주는 소위 '한한령' 조치까지 이어졌다. 한국의 외교는 미국과 일본 일변도로 흐르고, 한반도의 긴장은 갈수록 높아만 진다.

<프레너미>는 마치 생물처럼 거듭 변하는 국제정세 가운데 한국의 위치를 고민하게 한다.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는 국제정치 판도 가운데 한반도를 둘러싼 나라들의 이해관계와 욕망을 이해하고 한국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한다. 지난 몇 년의 시간은 책이 진단하고 기대한 길을 정면으로 깨부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연결점을 잃지 말고 살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제안에도 윤 정권은 편향된 외교로 스스로를 블록 한 구석에 가두어 놓고 말았다. 북한의 파병에도 쓸 수 있는 수단이 단 하나 남지 않았고, 꼭 그만큼 한반도 남북 두 나라의 거리는 멀어지고 말았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경색될수록 한반도의 긴장 또한 높아지게 될 밖에 없다. 한 편에 서서 그조차 주도하지 못하는 한국은 주도권을 잃고 제 운명을 남의 손에 내맡기는 길을 걸어온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분단된 현실에 대한 자각으로 이어진다. 분단을 해소하지 않고는 민족의 손으로 그 운명을 결정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무엇이 남북, 나아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번영을 막는가. 가까이는 핵이다. 그를 해소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한반도에서 핵을 완전히 포기시키기 위해, 또 그 너머의 평화를 만들기 위해 이 나라는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 윤 정부의 외교, 그가 내린 선택이 암담하게만 느껴지는 건 바로 이 때문인지 모를 일이다.

남북 관계의 진정한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제약 요소는 '북한 핵'입니다. 언제든 한민족의 생존을 파멸로 몰고 갈 핵무기가 북한 땅에 있는 한 대규모 사회간접자본 투자 등 남북 경협 등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단기적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이어서 중장기적으로는 분단을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는 목표를 국민적 합의로 공유해야 합니다. 정권의 교체 여부와 상관없이 이는 반드시 연속성이 담보돼야 합니다. -286p

덧붙이는 글 김성호 서평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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