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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츠와나에서만 볼 수 있는 구제역 검문소

은행에서 돈을 찾은 뒤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배낭과 짐을 챙기고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나와 그녀, 그녀의 언니와 여동생 등 4명이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6시. 이른 아침인데도 이미 30여명의 승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6시 30분 나타를 거쳐 프란시스타운으로 가는 봉고버스를 기다리는 승객들이다.

예외 없이 버스에는 승객들이 꽉 찼다. 두 명 앉는 자리에 나와 그녀의 세 자매 등 4명이 엉덩이를 붙여 끼어 앉았다. 도로는 2차선으로 넓고 갓길도 표시되어 있는 등 다른 국가와 확연히 달랐다. 나타로 가는 길은 레쇼모강을 따라 짐바브웨 국경선과 나란히 달리면서 내려가는 길이다. 탄자니아에서 봤던 작은 나무만 있는 사바나 초원이 끝없이 펼쳐졌다. 해바라기와 옥수수를 대량으로 재배하는 집단 농장들도 많이 보였는데, 농장에 트랙터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기계화 농업이 이뤄지고 있는 듯하다.

나타로 오는 동안은 마을은 거의 없고 초원만 보인다. 르완다에서 넘어와 탄자니아 국경마을인 베나코에서 카하마 지역으로 달리는 풍경이 연상되었다. 2시간 30분가량 달렸을 때 처음으로 '가축검역소(Veterinary Checkpoint)'가 나왔다. 말로만 듣던 보츠와나의 구제역 방역이 시작된 것이다. 모든 승객들은 버스에서 각자 자신의 짐을 갖고 내리게 한 뒤 공항검색처럼 일일이 짐을 검사한다. 검역소의 안내판에는 '일체의 동물이나 동물사료 등을 가져가는 경우 신고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공항의 검역절차와 똑같다.

배낭 옆에 매단 내 슬리퍼도 꺼내게 한 뒤 소독을 하도록 한다. 모든 승객들에게 소독약을 뿌린 바닥의 깔판을 밟고 지나가도록 한다. 신발 등을 통해 구제역 바이러스를 옮길 것을 우려한 방역 조처이다. 국경이 아니라 도로 검문소에서 구제역 방역을 하는 것은 아프리카 여행 중 처음이자 보츠와나에서만 경험하는 독특한 절차다. 여행객을 상대로 한 구제역 방역자체가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없었다.

구제역 방역을 위한 가축 검역소는 보츠와나 여행 중 도로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고, 마운의 오카방고 델타로 들어가는 입구에도 있었다. 이처럼 구제역 방역을 철저히 하는 것은 보츠와나의 중요한 가축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보츠와나에서 소는 전통적으로 가장 중요한 가축이다. 소는 생계수단이면서 부의 상징이고, 지금도 쇠고기는 주요 수출품이다. 이미 1890년대에 구제역 발생으로 쇠고기 수출에 커다란 피해를 입은 보츠와나가 가축검역에 신경을 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오카방고 델타 주변의 가축검역소
 오카방고 델타 주변의 가축검역소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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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이카' 노래에 담긴 아프리카 젊은이의 슬픈 사랑 이야기

여전히 보츠와나의 사바나 초원 등에는 소떼를 방목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보츠와나의 어린이들은 케냐와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 주변의 마사이족처럼 어릴 적부터 소를 돌보면서 자란다. 소는 가난한 보츠와나 시골사람들의 양식이자 신부를 맞이할 때 치러야 하는 값이다. 동부 아프리카와 남부 아프리카의 시골총각들에게 소는 장가를 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처럼 아껴야 하는 보물이다. 보츠와나와 나미비아, 남아공 등 남부아프리카에서는 신랑이 신부에게 주는 지참금을 로볼라(Lobola)라고 부른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 중 하나인 '말라이카(Malaika)'는 '신부값'으로 치러야 할 소가 없어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보내야 하는 아프리카 젊은이의 아픈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내가 탄자니아 아루샤에서 산 케냐 그룹인 '사파리사운드밴드(Safari Sound Band)'의 시디 음반에도 '말라이카'가 있어 아프리카 여행 중 즐겨 들었었다.

'말라이카'는 스와힐리어로 '천사'를 의미한다. 케냐와 탄자니아 등 동부아프리카에서는 국민가요로 불릴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보츠와나나 남아공 등 남부아프리카에서도 사랑을 받는 노래다. 구슬픈 선율과 애잔한 사랑에 대한 노랫말이 마음을 파고든다.

"말라이카, 나쿠펜다 말라이카(나의 천사, 나 그대를 사랑하오).
말라이카, 나쿠펜다 말라이카(나의 천사, 나 그대를 사랑하오).
닝게쿠오아 말리 웨(나 그대와 결혼하고 싶소. 그대는 인생의 반려),
닝게쿠오아 다다(나 그대와 결혼하고 싶소. 나의 여자여).


 나신드와 나 말리 시나 웨(난 어이 하리오, 내겐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소).
닝게쿠오아 말라이카(나의 천사여 그대와 결혼하고 싶지만),
나신드와 나 말리 시나 웨(내겐 아무 것도 없소).
닝게쿠오아 말라이카(내 마음속의 천사, 그대와의 결혼을 갈망하지만)...
......"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꼭 들어봐야 할 노래다. 아프리카의 전통적인 삶인 유목생활과 소의 가치, 결혼 풍습, 사랑에 대한 갈망 등이 이 노래 한 곡에 모두 들어 있기 때문이다. 마사이족을 비롯한 아프리카에서는 남자가 장가를 가려면 신부가족에 보통 소 10마리 정도를 줘야 한다.

'말라이카'라는 노래는 1960년 케냐의 파드힐리 윌리엄이 이끄는 그룹 '잠보 보이스'가 처음으로 음반에 수록한 뒤 여러 가수와 그룹들이 불렀으나, 칼립소의 제왕이라 불리는 미국의 해리 벨라폰테와 아프리카 음악의 여왕이라 불리는 남아공의 미리암 마케바가 듀엣으로 부른 노래가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말라이카>노래가 실린 케냐 그룹 <사파리사운드밴드> 시디
 <말라이카>노래가 실린 케냐 그룹 <사파리사운드밴드> 시디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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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아가씨의 세 자매와 헤어지다

3시간 정도 걸려 나타(Nata)에 도착했다. 카사네에서 프란시스타운으로 내려가는 길과 마운으로 빠지는 길이 만나는 나타 삼거리의 주유소는 정류장과 매점, 휴게소를 겸하는 곳이었다. 버스에서 승객들이 내려 매점에서 빵과 음료수 등을 산다. 나는 빵과 음료수를 사서 미모의 여도둑 세 자매에게 주고 작별인사를 나눴다. 세 자매는 타고 온 버스로 그대로 프란시스타운으로 가고, 나는 차를 갈아타고 위쪽의 마운으로 가야 한다.

같은 자매인데도 언니와 동생은 말이 없이 조용하고 착한데, 그녀만 돌연변이다. 그녀는 아침에 돈을 받고 기분이 좋아져 차를 타고 오는 내내 떠버리가 되었다. 그녀의 자루 같은 큰 가방에는 구두가 가득 들어 있었는데, 짐바브웨에서 만든 구두를 갖다 판다고 했다. 그녀의 집이 짐바브웨 국경과 가까운 카사네 지역이다 보니 짐바브웨로부터 물건을 넘겨받기 위해 고향에 자주 오는 것이다.

그녀는 나에게 프란시스타운의 자신 집 전화번호와 핸드폰 번호를 적어 준다. 내가 마운에서 오카방고 델타를 구경한 뒤 남아공으로 내려갈 때 자신의 프란시스타운 집에서 머물다 가라는 것이다. 그녀는 아직도 나의 배낭 속 지갑에 대해 미련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나 보다. 뻔뻔한 것인지, 그 배짱이 놀랍기만 하다. 보츠와나의 도둑 아가씨, 디데는 아프리카 여행 중 만난 군상 중 가장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었다.

세 자매를 태운 버스는 프란시스타운으로 떠나고, 나는 마운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길가 정류장으로 갔다. 특별히 정류장 표시나 건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도로 옆에서 지나가는 차량을 히치하이킹 하는 것이다. 워낙 먼 거리에다 사람도 많지 않다 보니 노선버스가 그리 많지 않다. 보츠와나에서 히치하이킹은 일상적이고, 차량들은 적당한 요금을 받는다. 이곳에도 남자 3명과 여자 4명 등 현지인들이 기다리고 있다. 전날처럼 또 차를 잡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부터 앞선다.

나의 보츠와나 배낭여행 코스(파란색. 동남부를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
 나의 보츠와나 배낭여행 코스(파란색. 동남부를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
ⓒ 보츠와나 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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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하리 사막의 황사 현상

강렬한 햇살을 맞으며 차량을 기다리고 있는데, 마침 칼라하리 사막의 강한 바람에 실려 온 거친 모래가 내 얼굴을 냅다 때리고 간다. 뿌연 모래 안개가 하늘을 뒤덮는다. 몽골 고비사막의 황사가 아프리카까지 날아왔나 보다.

오래 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가다 바이칼 호수가 있는 이르쿠츠크에서 몽골횡단열차로 갈아타고 오는데, 정말 제대로 된 황사를 만난 적이 있었다. 잘 달리던 기차가 고비 사막에서 갑자기 서행을 하는데, 뿌연 안개가 기차를 덮치더니 모래알이 객차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기차가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 철길에 쌓인 모래로 인해 탈선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몽골의 고비사막 황사가 기차를 멈췄다면, 보츠와나의 칼라하리 사막에서 불어오는 사막은 내 얼굴에 모래 구멍의 상처를 내고 지나간다.

나타는 보츠와나 전 국토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칼라하리 사막의 동쪽 초입이다. 북부의 오카방고 델타와 초베강, 남동쪽의 남아공과 국경을 이루는 림포포강과 마리코강을 제외하고는 일년 내내 물이 흐르는 강이 없을 정도로, 보츠와나는 전 국토가 사막 또는 반사막의 건조지대이다. 나타에 도착하면 사막의 입구에 도착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수도인 가보로네와 제2의 도시인 프란시스타운 등 보츠와나의 대부분의 도시들은 바로 칼라하리 사막을 피해 동남부를 따라 형성되어 있다.

20여분을 기다리는데 지나가는 차량도 거의 없고, 칼라하리 사막의 따가운 햇살은 정말 맨 얼굴을 데워버릴 정도로 날카롭게 피부로 파고든다. 여기에 매서운 황사바람까지 겹치니 눈을 뜰 수 없다. 햇볕가리개 하나 없는 아프리카 도로에서 무작정 차량을 기다리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인내를 필요로 한다.

내가 땀을 뻘뻘 흘리며 배낭을 메고 혼자 서 있자 20대의 현지 젊은이가 어디를 가느냐고 묻는다. 내가 "오카방고 델타를 보러 마운으로 간다"고 하자 젊은이는 "마운 가는 차량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그렇잖아도 걱정하던 참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가까운 그웨타 지역을 간다고 한다. 외국 여행객이 아닌 한, 북쪽의 관광도시인 마운까지 현지인들이 굳이 갈 이유는 없는 것이다.

한 시간 정도가 흘렀다. 히치하이킹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잠시 뒤 새로 나온 차량인 듯 깨끗한 픽업트럭 한 대가 지나가자 20대 젊은이가 손을 들어 세운다. 젊은이가 쫓아가서 운전사와 얘기하다 웬일인지 빨리 오라고 손짓으로 나를 부른다. 젊은이는 "마운가는 차량이니까 타고 가라"고 한다.

외국여행객이 히치하이킹을 하지 못해 땀을 뻘뻘 흘리자 지나가던 차량을 대신 잡아준 것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이렇게 이름을 알 수 없는 현지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게 된다. 여행을 떠날 때는 혼자이지만,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올 수 있는 것은 현지인들의 이런 도움이 있기 때문이다.

차량은 국립공원 소속 차량이었다. 앞좌석에는 30대 초반의 운전사와 다른 직원이 한 명 있어 나는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그들은 마운에 교육을 받으러 가는 참이라고 했다. 픽업트럭에 올라타니 히치하이킹의 고생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보츠와나의 젊은이가 없었다면 나는 얼마나 오랜 시간을 더 고생했어야 하는지 모른다.

오카방고 델타 주변의 억새풀
 오카방고 델타 주변의 억새풀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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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하리 사막을 지나다

마운으로 가는 길은 사막과 반사막, 사바나 초원이 번갈아가면서 나타났다. 보츠와나의 중앙부와 남서부에 있는 칼라하리 사막은 서쪽으로는 나미비아에 걸쳐 있고, 남쪽으로는 남아공에 걸쳐 있다. 칼라하리는 보츠와나어로는 '크갈라가디(Kgalagadi)'라고 부르는데, '메마른 땅'이라는 뜻이다.

칼라하리 사막이 사하라 사막이나 나미브 사막 등 다른 사막과 다른 점은 온통 모래로 뒤덮여 있는 것이 아니라, 반사막 지대와 풀이나 작은 나무 등이 자라는 사바나 초원 등이 혼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비가 오는 우기에는 작은 풀이 자라는 사바나의 초원지대를 이루고, 곳곳에 물이 고여 커다란 소금호수인 염호를 만들기도 한다. 비가 오면 물이 흐르지만 평소에는 흔적만 있는 사막의 하천인 와디도 칼라하리 사막에서는 자주 볼 수 있다.

나타에서 마운까지 가는 도중 나는 칼라하리 사막의 특징인 모래로 뒤덮인 전형적인 사막지대와 거친 풀만이 자라는 반사막, 무성한 풀과 작은 나무들이 자라는 사바나의 초원지대, 커다란 나무가 자라는 일부 삼림지대, 염호와 와디 등을 모두 볼 수 있었다.

칼라하리 사막의 사바나 지역에서는 불어오는 바람에 누렇게 물든 풀들의 흔들림이 마치 은빛 물결이 치는 것 같았다. 초원의 풀들이 사막의 거센 바람을 맞아 서울 상암동 월드컵 축구 경기장의 붉은악마의 물결응원처럼 몸을 낮췄다가 바람이 지나가면 다시 몸을 일으키기를 반복한다. 말들을 방목하는 곳도 보이고, 소떼들은 더위를 피해 아카시아와 우산나무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다. 우산나무는 우산처럼 가지를 사방팔방으로 늘어뜨려 넓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아프리카 동물들이 햇볕을 피하도록 양산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웨타지역을 지나면서 양 옆으로 막가딕가디 염호(Makgadikgadi Pans)와 은자이 염호(Nxai Pans)가 펼쳐진다. 오랜 시간 동안 호수의 물이 증발해 소금이 말라붙어 있거나 소금의 농도가 높아 짠맛이 나는 호수를 염호라고 한다. 염호에는 플라밍고와 얼룩말, 누들이 몰려든다.

오카방고 델타 주변의 아프리카 검은 독수리
 오카방고 델타 주변의 아프리카 검은 독수리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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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없는 사막에 사는 스프링복과 겜스복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동물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다름 아닌 스프링복과 겜스복이다. 스프링복(Springbok)은 포식동물을 만나면 스프링(Spring)처럼 껑충 껑충 뛰면서 달아나는 동작에서 이름이 붙여졌는데, 치타와 달리기에서 막상막하일 정도로 가장 빠른 동물 중 하나다.

오릭스라고도 불리는 겜스복은 큰 뿔을 갖고 있고 몸무게가 200kg 이상이나 나간다. 스프링복과 겜스복은 풀이나 열매를 통해 대부분 수분을 섭취하고, 별도로 물을 먹지 않고도 새로운 풀을 찾아 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칼라하리 사막처럼 황량한 자연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염호 주변에 군데군데 파놓은 구덩이는 옛날 부시맨이라 불리는 산족들이 물을 마시러 오는 동물들을 사냥하기 위해 놓은 덫이다. 사바나 지대를 지나자 전형적인 사막지대가 기다리고 있다. 풀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쨍쨍 내리쬐는 강렬한 햇볕과 쫙쫙 갈라진 들판만이 보인다.

삭막한 사막사이에도 도로는 아스팔트 포장이 잘 되어 있어 차량만이 씽씽 달린다. 우리가 달리는 반대편 도로에 커다란 도마뱀처럼 보이기도 하고 작은 악어 같기도 한 파충류가 차에 치여 죽어 있었다. 거의 1m나 되는 큰 이구아나였다. 죽은 지 얼마 안 되었는지 빨간 핏자국이 아스팔트 위에 그대로 묻어 있었다.

내가 탄 차량이 갑자기 멈추더니 뒤로 후진을 해 직원이 차에서 내려 죽은 이구아나를 픽업트럭의 뒤 짐칸에 실었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국립공원관리소에 보고를 한다. 직원이 쓰는 핸드폰을 보니 노키아 제품이다. 아프리카에서 삼성이나 엘지 등 우리나라 핸드폰을 많이 보지 못했다.

오카방고 델타 주변의 흰개미집 굴뚝
 오카방고 델타 주변의 흰개미집 굴뚝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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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쌓은 기둥 같은 탑, 저건 뭐지?

사막을 지나면서 눈에 띄는 또 하나의 모습은 참 궁금했다. 촛대바위 같기도 하고, 흙으로 쌓은 높은 기둥 같은 모양의 진흙 탑 같기도 한 흙무더기이다. 오카방고 델타의 나무배 탐험을 가는 길에도 흙 비석 같은 것들이 쌓여 있었다. 비석이나 경계석은 아닌 것 같고, 아무런 표시도 없고 높이 솟은 진흙 무더기사이에 구멍이 여기저기 나 있다.

그 궁금증은 다음날 오카방고 델타 사파리에 가면서 풀렸다. 다음날 사파리 차량의 운전사에게 물어보니 "흰개미 집"이란다. 흙을 물어다 갈대 잎과 섞어 탑 쌓듯이 개미집을 높이 지었다. 흙집에는 수십 개의 구멍이 있는데, 각각의 구멍은 개미들이 땅속 보금자리로 들어가는 출입구이자 공기가 통하는 통풍구란다.

흰개미 집이라고 하는 땅 위의 높은 흙무더기는 실제는 땅 속에 있는 개미집에 공기가 잘 통하도록 하기 위해 지은 통풍구 역할을 하는 굴뚝이다. 엄밀히 말하면 개미집은 땅 속에 굴을 파서 만든 지하 동굴이고, 땅 위에 솟은 흙 탑은 개미집의 굴뚝인 셈이다.

'따뜻한 공기는 위로 올라간다'는 자연의 법칙을 활용한 아프리카 개미의 기발한 굴뚝 건설 발상이다. 이 개미 굴뚝을 통해 아프리카의 찌는 듯한 더위와 수백만 마리의 개미들 사이에서 나오는 열기로 더워진 개미집 안의 공기를 밖으로 배출하기 때문에 땅 속의 개미집은 늘 서늘한 기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사막지대의 지루한 길이 계속되자 나는 졸음이 쏟아져 참을 수 없었다. 전날 도둑 아가씨와의 쫓고 쫓기는 싸움으로 한잠도 못 잤기 때문이다. 내가 고개를 떨구고 자다가 옆에 운전석으로 기울어 운전에 방해가 되자 옆에 있는 직원이 나를 여러 차례 깨우기도 했다. 그들은 내가 왜 이토록 졸음을 참지 못하는 이유를 알 턱이 없다.

위성에서 찍은 오카방고 델타(가운데 부채 손잡이와 부채꼴 모양)의 사진
 위성에서 찍은 오카방고 델타(가운데 부채 손잡이와 부채꼴 모양)의 사진
ⓒ 미 항공우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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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방고 델타 여행의 전초기지 마운

나타에서 마운까지 가는 길은 도로 포장도 잘 되어 있고, 새로 나온 신형의 픽업트럭이 전속력으로 달리자 3시간만에 도착했다. 마운은 역시 달랐다. 삼각주여서 그런지 강물이 보이고 강물을 따라 푸른 풀도 자라고, 말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마운 시내는 작고 아담한 농촌풍경과 읍내 도시의 풍경이 조화를 이룬 작은 관광도시였다. 오카방고 델타 관광의 전초기지이기 때문이다. 마운 앞에 흐르는 강은 타마라카네강이다.

마운 시내에서 내린 나는 택시를 타고 다시 오카방고 델타 여행객들을 위한 싼 캠핑장이 몰려 있는 마트라파넹 마을로 갔다. 내가 간 곳은 오카방고 델타 강변의 아우디 캠핑장. 아우디 캠핑장에는 배낭여행객을 위해 침대와 이불까지 갖춰진 텐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모래 바닥 위에 군용 텐트를 설치해 여행객 숙소로 사용하고 있었다. 보츠와나에서 배낭여행객이 이용할 수 있는 가장 싼 숙소인데, 비용은 싱글베드 텐트가 205풀라(미국 돈 37달러)였다.

보츠와나에서 혼자 여행하는 데는 어느 정도의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텐트에는 침대와 이불 뿐 아니라 전깃불까지 갖춰져 텐트의 느낌이 들면서도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동으로 사용하는데 서너 군데나 되고 야외 식당과 간이 바가 있다. 야외 수영장도 있고 델타 사파리도 운영해서 편리하다.

오카방고 델타 강변의 야외 텐트에서 잠을 자는 것은 역시 색달랐다. 여행의 멋을 한껏 돋운다. 저녁이 되자 개구리 소리가 텐트 주위를 울린다. 아프리카 개구리 소리는 마치 맹꽁이 소리 같기도 하고, 탱크소리처럼 크다. 야생동물과 원숭이들이 울부짖고 새소리가 들리던 탄자니아 세렝게티 초원의 텐트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시골에서 여름에 개구리 잡던 어린 시절의 옛날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오카방고 델타를 찾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 다른 아프리카의 모습이다. 아프리카는 같은 대륙이지만, 정말 각각의 독특한 색깔을 갖고 있는 컬러풀한 땅이다.

가족단위로 여행을 온 유럽 여행객(트럭은 오카방고 델타 사파리 차량)
 가족단위로 여행을 온 유럽 여행객(트럭은 오카방고 델타 사파리 차량)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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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객의 가족단위 텐트 여행

아우디 캠핑장의 또 다른 특징은 가족단위의 텐트 여행이 많다는 것이다. 내가 캠핑장에 도착했을 때도 새로운 여행객들이 직접 가져온 텐트를 치거나 이른 저녁식사를 하느라 분주했다. 캠핑장에는 렌터카를 끌고 온 유럽의 가족단위 여행객들이 많고, 요리도 직접 해 먹는다.

부부와 딸, 아들과 함께 온 유럽 가족 4명은 랜드로버 차량에 텐트와 침낭, 음식, 식기 등을 싣고 다닌다. 아버지와 아들은 텐트를 치고, 어머니와 딸은 식사를 준비한다. 텐트를 친 아버지가 함께 요리를 한다. 저녁 식사 뒤에는 아버지가 아이들과 축구공을 차고 놀면서 뛰어다닌다.

아프리카 캠핑장에는 젊은이들 못지 않게 가족 단위의 유럽 텐트여행객을 많이 볼 수 있다.  아프리카 사막의 텐트 속에서 보낸 하룻밤은 가족들의 사랑을 단단하게 한다. 이들 가족은 아침 일찍 일어나 온 가족이 나서 텐트를 걷고 짐을 정리한 뒤 차에 싣고 다음 여행지로 떠났다.

나미비아의 빈트후크의 값싼 배낭여행객 숙소가 모두 예약이 끝난 것도 이들 가족 단위의 여행객들이 많이 차지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만 값싼 게스트하우스에 묵는 것이 아니라 유럽의 가족 단위 여행객도 캠핑장이 없는 경우에는 많이 이용한다. 게스트하우스는 직접 요리를 할 수 있는 공동 부엌을 제공하는 곳이 많기 때문에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몰려든다.

아프리카 여행을 하다 보면 의외로 소박한 텐트여행을 다니는 가족들이 많아 놀라게 된다. 가족 단위의 텐트여행은 바로 우리에게 부족한 부분이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 단위의 여행, 그것도 호텔에 묵는 것이 아니라 차를 빌려 텐트를 치고 직접 요리하는 여행을 하면서 자란 유럽의 젊은이들이 커서도 배낭여행을 많이 다니는지도 모른다. 가족 단위의 텐트여행은 아프리카 여행 중 부러운 모습이었다.

내 옆 텐트에는 오토바이 여행을 하는 젊은이가 독일의 자동차회사인 베엠베(BMW)가 만든 '지에스(GS)' 상표의 대형 오토바이를 끌고 왔다. 에티오피아의 옛 왕궁도시인 곤다르에서 만난 아일랜드 젊은이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난 오토바이 여행객이다.


태그:#보츠와나, #마운, #말라이카, #아프리카, #오카방고 델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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