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20 15:51최종 업데이트 23.10.20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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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기는 진부한 연말 레퍼토리의 메인이다 ⓒ 펙셀스


올해도 한 해를 마무리할 때가 시나브로 다가오고 말았다. 이맘때면 부쩍 차가워진 공기를 느끼면서 세월이 너무 빠르다든가, 일 년 내내 특별히 해놓은 일이 없다거나 하는 생각에 잠기곤 한다. 작년과 재작년에도 떠올렸던 상념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진부한 연말 레퍼토리의 메인은 제때 하지 않고 미룬 일이다. 올해도 그야말로 숨 쉬듯, 여러 가지 일을 미뤘다. 마감을 미루고 빌린 책의 반납을 미루고 조카와의 약속을 미루고 침구 정리를 미루고 은행 방문과 치과 치료를 미뤘다.


물론 미루는 습관을 고치고자 나름대로 노력했다. 특히 마감이 집요한 빚쟁이처럼 돌아오는 연재가 일 년 넘게 계속되면서 더 이상 미루는 습관을 방치할 수 없었다. 이젠 정말 미루기라는 오랜 중독에서 벗어나야 했다.

개중에 일시적이지만 효과가 있었던 시도를 소개하면 해야 할 일을 스케줄러나 아이패드가 아니라 커다란 보드에 대문짝만하게 써놓는 거다. 강의실에나 놓여 있을 법한 화이트보드는 인터넷에서 약 10만 원에 팔리는데 중고 거래 앱에서 화이트보드를 검색하면 무료로 나눠주겠다는 글이 제법 많다.

원가가 싸지 않은 물건을 공짜로 준다는 건 물건의 활용도가 매우 낮은 동시에 흉물스럽게 자리만 차지한다는 뜻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버리다시피 한, 먼지 쌓인 보드를 집에 들이고 보니 과연 데퉁맞게 크고 가정집의 분위기와 조금도 어울리지 않았다. 꼭 대통령 암살 계획을 세우는 망상증 환자나 집착으로 미쳐버린 스토커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도 마음의 짐을 큰 글씨로 시각화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보드 옆을 지나기만 해도 내 키보다도 큰, 마음의 짐이 인사를 건네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큰 얼굴을 들이밀면서 '좋은 말로 할 때 나를 외면하지 말라'고 경고하곤 했다. 

그러나 누구나 미루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집채 만 한 마음의 짐도 흐린 눈으로 지나칠 수 있다. 결국 화이트보드는 미루는 습관을 뜯어고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어떻게든 할 일을 미루고 보자는 나의 의지가 생각보다 더 강력하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미루기 중독자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미루는 걸까? 미루기 중독자가 된 데는 글쟁이라는 정체성이 기여한 바가 크다. 알다시피 글쟁이들은 일을 미룬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마감을 하루만 늦춰달라고 애원하는 글쟁이 클리셰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물론 글쟁이가 아닌 사람들도 할 일을 미룬다. 하지만 글쟁이들은 정도가 심각하다. 

예를 들면 10년 전, 단편소설을 한 신문사에 응모하기로 했다. 신춘문예라는 이름으로 여러 언론사가 원고를 받는데 하필 그곳에 접수하기로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12월 초면 응모 마감이 끝나는 여느 신문사와 다르게 가장 늦게까지 작품을 받아주고 또 집에서 도보로 10분이면 여유롭게 도착할 수 있어서였다.

내근자에게 원고를 들고 찾아가면 저녁 8시까지 받겠다는 말을 들었다. 언론사 정문에 도착한 시각은 7시 50분이었다. 조명이 꺼진 로비는 어둑했고 건물 안은 조용했다. 이전에도 마감일에 원고를 들고 가서 알게 된 바로는 마감날 언론사에는 하루 종일 퀵 서비스 오토바이와 누런색 봉투를 든 문청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모든 행렬이 끊기고 조용하다는 건, 미루는 인간 중에서도 최악이라는 뜻이었다(비록 사정은 있었지만).

초조한 마음으로 문화국이 있는 5층에 도착했다. 마감을 고작 5분 남기고 단 하나의 원고를 제외하면 전부 낙방인 원고가 수북이 쌓인 원고의 무덤에, 높은 확률로 낙방할 원고 하나를 보태고 돌아섰다(그 참담한 기분이란!). 

그때 갑자기 주술사처럼 폭탄 맞은 머리에 초록색 렌즈를 착용한 예술대 스타일의 여성이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 아까 두고 간 원고에 연락처를 빠트렸단다. 주술사는 바닥에 주저앉아 원고 더미를 헤집었다. 그 광경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나도 나지만 너도 너다….'

주술사와 함께 건물 밖으로 나오는데 택시 한 대가 우리를 들이받을 기세로 급정거했다. '설마 지금도?'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누런색 봉투를 든, 누가 봐도 시를 쓸 것 같이 생긴 남자가 문을 열고 내렸다. 시계를 보니 8시였다. "빨리 가요!" 주술사와 나는 중창단처럼 외쳤다. 그는 꾸벅 인사하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낙방을 확신하면서도 품에 안고 있던 원고, 미루는 사람 중에서도 중증인 글쟁이 셋, 그들을 상대하느라 질린 언론사의 내근자, 주술사의 혼비백산한 표정, 그리고 당연한 귀결인 우리의 낙방…. 미루기 중독자의 은은하게 불행한 인생에 관해서 생각하자 그때 그 장면이 팝업창처럼 두서없이 떠올랐다. 

졸속의 중요성
 

데퉁맞게 큰 화이트보드는 마음의 짐을 시각화한다. ⓒ 펙셀스


10년도 더 지난 올해 또다시 비슷한 장면을 연출했다. 두 번째 책을 출간하기 위해서 출판사에 보낼 원고의 목차를 정리하고 출간 제안서를 쓰는 데 자그마치 7개월이 걸린 거다. 어떤 변명도 소용없는 게 7개월은 책 한 권을 새로 쓸 수 있는 시간이다.

돌아보면 10년 전이나 올해나 전력을 다하기 무서웠다. 모든 걸 쏟아붓고 실패할 바엔 차일피일 미루고 실패하는 편이 낫다. 실패의 책임을 무능력이 아닌 미루기에 전가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거의 평생을 회피하면서 너무 많은 걸 놓쳤다. 완성할 수 있었던 소설을 놓치고 더 빨리 작가가 될 수 있었던 적기를 놓치고 더 많이 실패하면서 배우고 성장할 기회를 놓쳤다. 무엇보다 내가 하는 일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도 있었던, 기나긴 시간을 허공에 날려버렸다. 

그나마 출판사에 보낼 이메일을 쓰고 전송 버튼을 누르기까지, 7년이 아닌 7개월이 걸린 걸 위안 삼았다. 결정적인 도움을 준 사람은 손자였다. 비혼이라면서 숨겨둔 손자가 있느냐고? 그 손자가 아니라 '손자병법'을 쓴, 춘추전국시대의 손자다. 주짓수를 더 잘해보려고 읽은 고대의 전술서를 통해서 졸속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손자는 부정적인 뉘앙스의 개념인 졸속을 중요한 가치 기준으로 삼았다. 일단 전장에 나서면 속전속결이 우선이고, 위험부담을 안더라도 기동력을 발휘해서 과감하게 밀어붙이라는 거다. 이미 다 아는 얘기 같지만 좋은 의미로 충격적이었다. 

미루기 위한 핑계로 내세웠던 게 '속도보다 방향'이기 때문이다. 물론 방향도 중요하지만 어떤 기회는 일정 속도가 아니면 붙잡을 수 없다. 신중한 미루기보다 성급한 졸속이 백 배는 더 낫다는 손자의 가르침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한동안 방치됐던 화이트보드 위에 커다랗게 썼다. '어차피 다 졸속이다.'
덧붙이는 글 브런치에도 게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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