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7.25 07:01최종 업데이트 24.07.25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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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미국의 경제학자 J. K. 갤브레이스는 현대의 불확실성을 말했다. 19세기의 확고하고 예측 가능하다고 믿는 세계관이 20세기 들어 여러 분야에서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 골자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났지만 불확실성은 더 심화하는 듯하다. 그는 경제적 측면을 주로 말했지만, 디지털 혁명과 환경 위기 속에서 불확실성은 전방위로 확장되고 있다.

현대의 불확실성은 포스트모던이라는 이름으로 철학자들의 성찰 대상이 되기도 했고 다양성의 인정, 수평적 네트워크와 경계의 해체 등이 대응 방향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철학자들의 기대와 달리 이러한 새로운 현상과 대책들이 다수의 사람들에게 '미지에 대한 공포'로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미지에 대한 공포가 정치 지형의 변화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 지구적 극우의 발흥이 대표적인 예다. 기존의 보수진영은 무너지고, 돌아갈 수 없는 과거로의 회귀를 기대하며, 보이는 문은 모두 걸어 잠그는 폐쇄적 보호주의가 이를 대체한다. 저소득, 저학력 계층의 상당 비율이 이들에 합류한다.

정치 지형의 해체와 재구성이 진행 중이며, 한 시대를 풍미해 온 온건 진보와 온건 보수는 새 지표를 찾지 못하고 쇠락해간다. 오래전부터 극우가 주류 세력으로 자리매김해 온 한국 등 일부 세계는 오히려 이러한 혼란에 무감각해 보이지만, 민주주의 역사가 비교적 긴 서구 세계는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더 방황하는 모양새다.

유난히 중요한 선거가 많은 올해 지구촌은 이러한 불확실성의 영향권 속에서 여러 예측 불허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선거 결과만 불확실한 것이 아니라 과정들도 드라마틱하다. 개중에는 미지에 대한 공포 앞에서 무비판적 순응이 빚어내는 충격적 결과도 있지만, 이성에 대한 신뢰와 뒤이은 행동들이 만들어낸 반전도 있다.

이러한 대혼돈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시간이 말해주겠지만 혼돈의 한복판에 있는 현대인들은 갈피를 못 잡는 형국이다. 2016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돼 회자한 말이 '군주민수(君舟民水)'다. 민주주의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면 정치집단이 배라면 민심은 그를 띄우는 물이라는 의미가 된다.

고사(故事)에는 물이 나쁜 배를 전복시킨다는 의미를 내포하지만, 실제로는 좋은 배가 건실하지 않아 전복되기도 한다. 지금은 물이 폭풍을 만나 요동을 치고, 그 위의 수많은 배들이 전복되는 시대다. 그러기에 좋은 선적물을 실은 배라면 선체를 안전하게 관리할 의무 또한 있다. 그렇지 않다면, 전복되기 전에 조타수나 선장이 물러나야 한다.

예측불허 드라마 같은 미 대선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트럼프 타워 밖에서 한 남성이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깃발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100여 일 남은 미국의 대통령 선거와 그 과정을 보면 불확실성의 세계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집약돼 있다. 특히 최근 두 달여 동안 벌어진 일들은 반전에 반전을 더하는 예측불허의 드라마와 같다. 반전이 드라마 속에서 보면 재밌지만, 실제 내 앞에서 벌어지면 불안해지는 것뿐이다.

지난 5월 30일 미국 뉴욕 법원 배심원단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성추문을 감추기 위해 행한 일련의 행동들과 관련해 유죄 평결을 내렸다. 미국에서 대통령급 고위인사에 대한 첫 유죄 판결을 앞두게 된 것이다. 정상적인 사회였다면 대선을 앞둔 후보에게 치명적인 일이었다. 특히 사건 내용의 특성상 정치인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를 향한 지지율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반면 6월 27일 첫 티브이 토론에서 충격적인 무기력함을 보여준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지층과 기부자들로부터 거침없는 사퇴 압력을 받았다. 현직 대통령이라는 프리미엄을 너무 믿었던 바이든 자신의 책임이 가장 컸지만, 현직 대통령 대선 후보를 주저앉히려는 움직임 역시 미국 역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성추문 입틀막'을 위해 돈을 지급하고 그 돈 사용처를 감추기 위해 회계를 조작한 이유로 사법 처리된 사건과 기대 이하의 토론 능력을 보여줘 지지자들을 실망시킨 사건은 비교할 수 없을 경중의 차이가 있다. 역시 정상적인 사회였다면 그렇다. 하지만 미국 사회는 파렴치에는 눈을 감아줬고 무능력에는 눈을 부릅떴다.

충격은 계속된다. 지난 13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버틀러에서 대선 유세를 하던 트럼프 전 대통령을 향한 저격 사건이 발생했다. 다행스럽게 트럼프 전 대통령의 부상은 경미했고, 곧바로 선거 일정을 소화해 나갔다. 심지어 연출하기도 어려울 극적인 사진 한 장이 탄생했고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미국인들의 호감도는 더 상승했다.

그리고 15일부터 18일까지 공화당은 예정대로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전당대회를 열고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공식 대선후보로 결정했다. 트럼프 후보 지명자는 곧 드러날 거짓 정보들을 다수 섞어 가며 특유의 대중을 사로잡는 연설로 후보직을 수락했다. 정상적인 사회였다면 검증을 통해 비판을 받을 내용이 다수였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았다.

반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1일 조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을 향한 사퇴 요구를 수용하고 대선 후보 도전을 전격 철회했다. 이 역시 미국 역사상 초유의 일이었으며 상황은 다시 반전이 됐다. 민주당 대선 후보에 가장 가까이 와있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지지율이 트럼프 후보를 상회하는 여론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기울던 운동장이 다시 평평해져
 

지난 23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 감염으로 델라웨어주 사저에서 격리를 마치고 워싱턴 인근 앤드루스 합동 기지에 도착한 에어포스원에서 내리고 있다. ⓒ 연합뉴스

 
이제 미국 대선과 관련한 어떠한 예측도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주요 일정이 모두 끝난 공화당과 달리 민주당은 후보 결정까지 전 세계적 관심을 받게 됐으며, 중단됐던 민주당 지지 성향의 거액 지원금들이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다. 공화당을 향해 기울던 운동장이 다시 평평해지고 있다.

정치인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순간이 더 없이 견디기 힘들다고 한다. 바이든 대통령도 그럴 것이다. 모든 관심은 새 민주당 후보로 쏠리게 되고 대통령의 레임덕이 시작될 수도 있다. 심지어 공화당 일각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 대통령직 사퇴까지 요구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잘 알고 있을 바이든 대통령은 그럼에도 대선 후보에서 물러났다.

바이든 대통령을 최악의 역대 미국 대통령 리스트에 거론하는 이들도 있다. 과연 바이든 대통령의 직무가 그토록 최악이었을까? 사실 바이든 대통령의 경제 성적은 최악은커녕 많은 긍정적 결과를 남기고 있다. 팬데믹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서유럽국가와 달리 바이든 정부의 미국은 빠른 회복력을 보였으며 주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지난해 미국의 성장률은 기대를 넘어선 3.1%를 기록했고, 우려했던 불황을 피해 갔다. 올해 1분기 성장률 역시 3%를 기록하며 양호한 성적이 지속됐다. 실업률도 2년 이상 4% 이하로 유지하고 있고 실질 임금도 증가했다. 세기적 인플레이션이 올 것이라 우려됐지만 현재 물가 상승률을 3%대까지 떨어뜨렸다. 소비자 신뢰도 상승하고 있다.

물론 주택, 식품과 같은 필수 영역에서 여전히 불안정하고, 높은 생활비가 문제로 남아있지만 팬데믹이라는 거대한 위기를 건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팬데믹 기간 트럼프 정부의 일관성 없는 대국민 소통, 방치된 공중보건, 경제적 충격 관리 미흡,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는 사망자 수 등은 놀라울 만큼 잊혔다.

불확실성의 세계는 이처럼 공정하다고 볼 수 없는 비합리적인 정치 지형을 양산한다. 분명 바이든 대통령은 억울할 것이다. 그것이 후보직 사퇴를 더 어렵게 만들었을 수 있다. 트럼프와 바이든, 역사는 정말로 이 두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현시대 미국인들과 같은 수준으로 기록할까?

미국의 46대 대통령 조 바이든은 이렇게 물러난다. 대통령으로서 그의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러 요인으로 미국 국민들을 불안하게 했다. 하지만 자연인 조 바이든은 무척 억울할 것이다. 자연인 도널드 트럼프와 비교되는 상황에서 더더욱. 하지만 그는 결정했다. 적어도 물러날 때를 아는 지도자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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