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12 07:11최종 업데이트 24.08.12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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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13일 경기도 연천군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육군 25사단 장병이 휴대전화를 사용하며 휴식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9년, 의무복무 중인 병사들의 일과 후 휴대전화 사용이 처음으로 시범 운영되던 때의 일이다.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의무경찰들도 일과 후 휴대전화 사용의 시범 운영 대상이었다. 당시 경찰청은 시범 운영 대상 부대마다 휴대전화 사용 방식을 다르게 적용하고 있었다. 오후 7~8시에 한 시간만 사용하게 하는 부대가 있었고, 오후 6시~9시에 3시간 동안 사용하게 하는 부대가 있었다.

군 휴대전화 사용시간 1시간과 3시간의 차이

그 무렵 경찰 간부들과 함께 시범 운영 부대를 둘러볼 일이 있었다. 하루에 1시간만 사용하는 부대에서는 그 시간 동안 부대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의경 대원들은 모두 자기 자리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바빴다. 휴대전화를 쓰게 해주면 대원들 간 소통이 없어지고 부대의 단결력도 떨어질까 걱정이라던 경찰 간부들의 우려가 일리 있어 보이는 광경이었다.

이어서 일과 시간 이후부터 점호 전까지 3시간 동안 휴대전화를 쓰는 부대를 방문했다. 앞서 방문한 부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통의 군부대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곳곳에서 운동하고, 공부하고, 대화하고 있었다. 다만 간간이 스마트폰을 사용할 뿐이었다. 휴대전화를 사용하게 되었다고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사람의 행동은 통제에 따라 양상이 바뀐다. 휴대전화를 한 시간만 쓰도록 강하게 통제하니 그 시간을 놓치면 가족, 친구들과 연락을 나눌 수 없다는 생각에 다들 스마트폰에 매달리게 되고, 휴대전화를 세 시간 쓰도록 느슨하게 통제하니 다들 보통 사람들처럼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다 필요한 일이 생기면 꺼내 쓰게 된다.

자율 판단의 영역이 줄어들고 외부로부터의 통제가 강화되면 사람은 평소와 달리 왜곡된 행동을 보일 수밖에 없다. 결국 경찰청은 의경들에게 일과 후 3시간 동안 스마트폰 사용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휴대전화 사용시간 확대 백지화한 국방부
 

한 장병이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다. ⓒ 정책브리핑

 
8월 7일, 국방부는 병사 휴대전화 사용 시간 확대 계획을 백지화하고 현행을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국방부는 2021년 11월부터 3차에 걸쳐 휴대전화 사용 시간을 확대하기 위해 시범 운영 기간을 가져왔다.

현행 제도가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일과 후에만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반납하게 하는 방식이라면, 시범운영은 아침 점호 때 나눠주고 밤 9시에 거둬가는 방식이었다. 간부들과 마찬가지로 휴대전화를 상시 소지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다만 군사비밀을 취급하는 보안구역 등에서는 간부와 마찬가지로 휴대전화를 소지할 수 없고, 근무 시간과 경계 근무, 당직 근무 투입 시에는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게 했으며 점심시간, 개인 체력단련 시간 등에만 사용할 수 있었다. 실상 휴대전화를 쓸 수 있는 시간이 크게 늘어난 건 아니었지만 간부에 준하는 수준의 자율성을 보장하며 병사들이 휴대전화를 소지하고 다닐 수 있게 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돌연 국방부가 시범운영 결과를 발표하며 현행 유지 방침을 밝힌 것이다. 보안위규, 불법 도박, 디지털성폭력 등의 악성 위반행위가 지속 적발되고 있고, 시범운영 기간 적발된 위반 건수가 시범운영 전과 유사하다는 근거도 덧붙였다. 실제 시범운영 기간 위반 건수는 1005건으로 시범운영 전 1014건에 비해 9건 정도 줄었다. 일과 중 근무, 교육훈련 집중력이 저하되고 동료와의 대화가 단절되며 단결력이 저하된다는 일부 간부들의 의견이 있었다는 근거도 제기되었다.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근거들이다.

시험운영 기간 규정 위반 적발 건수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면 이러한 국방부의 설명은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일과 후에만 휴대전화를 쓰게 해줄 때와 종일 휴대전화를 소지하고 근무 중 사용을 통제할 때의 규정 위반 적발 건수가 비슷하거나 오히려 줄어들었다면 휴대전화 사용 방식과 규정 위반 적발 건수 간에는 큰 상관관계가 없다고 해석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게다가 국방부가 문제점으로 꼽는 불법 도박, 디지털성폭력은 애초에 병사들이 병영 내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와는 상관관계가 없다. 이미 사회에서도 휴대전화를 쓰던 병사들이 병영 내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게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불법 도박에 중독되고 성범죄자가 되었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사용 시간 확대와는 더더욱 관계가 없는 사항들이기도 하다. 보안위규 역시 보안 구역에서는 애초에 스마트폰을 소지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 사용시간이 확대되었다고 해서 군사 보안에 타격이 간다고 보기도 어렵다. 근무 시간에는 쓰지 못하는 휴대전화 때문에 근무, 훈련 집중력이 떨어진다던가, 동료와의 대화가 단절된다는 지적 역시 아전인수일 뿐이다. 문제 상황과 원인 진단이 엇박자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한심한 국방부
 

2022년 9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방공중대를 찾아 장병들과 셀카를 찍고 있다. ⓒ 대통령실

 
사실 병사 휴대전화 사용 시간 확대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윤석열 정부의 국정 과제 중 하나이기도 했다. 3년 가까이 시범 운영을 하더니 국방부가 타당하지도 않은 근거들을 나열하며 대통령 공약을 엎어버린 것이다. 일각에서는 장관 취임 전부터 병사 휴대전화 사용에 부정적 입장을 보여 온 신원식 국방부장관의 의중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많다.

장병들에게 자율을 허용하면 질서가 무너진다는 구시대적 발상이 여전히 군에 망령처럼 떠돈다. 휴대전화 사용을 시간 단위로 통제하고, 때 되면 나눠주고 얼마 지나 도로 거둬가지 않으면 군부대 질서와 군기를 유지할 수 없는 지경이라면 그건 군의 문제지 장병들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군인들을 못 믿고 빡빡하게 통제하면서 어떻게 유사시에 군인들에게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작전 임무 수행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통제 일변도의 병영 문화는 장병들의 왜곡된 행동 양상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3년의 긴 실험 끝에 이상한 결론을 매듭 지은 국방부가 한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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