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21 20:25최종 업데이트 24.08.2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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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3년 8월 23일 한미연합사 전시지휘소(CP TANGO)를 방문해 '23년 을지 자유의 방패(UFS, Ulchi Freedom Shied) 연습상황을 점검하며 훈련에 참가한 장병들에게 격려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정권은 북중러 견제를 명분으로 한미일 안보협력 구축에 심혈을 기울인다. 이런 시기에 정권의 지지 기반인 뉴라이트들이 '식민지 근대화론'을 선전하는 일들이 계속해서 논란을 일으킨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언뜻 보면 한일 과거사 문제와 연관된 것으로만 비칠 수 있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이 이론은 한국인들의 마음속에서 북한은 물론이고 러시아와 중국도 멀어지게 만들 소지가 있다.

뉴라이트가 두각을 보인 두 시기는 2000년대와 2020년대다. 두 시기의 공통점은 민주진영이 집권한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이라는 점과, 남북 긴장관계가 크게 이완된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보수권력이 동요하는 모습과 북한이 훅 다가오는 모습이 나타난 직후에 뉴라이트가 분기하며 행동하는 장면이 두 시기에 공통적으로 표출됐다.

뉴라이트 입장에서는 민주진영보다 북한이 당연히 더 위협적이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의 집권은 한국 사회를 어느 정도 진보시키기는 했지만 근본적인 혁신에는 다가서지 않았다.

그러나 남북 간의 화해나 통일은 질적으로 다른 문제다. 남북통일은 누가 주도하든 한반도 냉전구도를 약화시켜 냉전보수진영의 존재 의의를 현격히 떨어트린다. 남북이 각각 정권을 유지하며 화해·교류하는 단계에 머문다 해도 냉전구도가 크게 동요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보수진영 입장에서는 김대중·노무현·문재인과의 공존은 그런대로 참을 만해도, 김정은과의 공존은 전혀 다른 문제다.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뒤에 뉴라이트가 튀어나오고 2018년 4·27판문점선언 및 북미정상회담 뒤에 뉴라이트가 또다시 튀어나온 데는 남북 공존을 좌시할 수 없는 보수세력의 절박함이 배경에 깔려 있다.

뉴라이트운동의 핵심인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를 인터뷰한 2004년 12월 9일자 <데일리 엔케이> 기사의 제목은 '[신지호 대표] 북한관이 보수-진보 시금석'이다. 뉴라이트인가 아닌가, 보수인가 아닌가를 가르는 핵심 기준이 민주진영에 대한 태도보다는 북한에 대한 태도로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제목이다.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한국 사회 보수-진보는 구체적인 정책에 기반해 있기보다는 북한문제에 대한 입장에 따라 갈라져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일단 북한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한국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토대라고 생각합니다."

이 발언에서도 드러나듯이, 뉴라이트의 정체성은 북한에 대한 적대적 태도로 결정된다. 그런 뉴라이트들이 식민지근대화론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 이론이 일제강점기를 미화하고 식민지배 불법성을 부인하는 용도뿐만 아니라,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러시아까지도 배척하는 용도로 활용될 수 있어서다.

'일본 자본주의가 한국을 근대화시켰다'... 그 주장의 효과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지난 1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 남소연


한때는 운동권이었지만 보수로 전향한 뒤 대북 압박을 맹렬히 외쳐온 김영호 통일부장관이 성신여대 교수 시절인 2008년에 <한국정치외교사논총> 제30집 제1호에 기고한 논문은 '국가론의 관점에서 본 대한민국 건국의 특징과 의의'다.

논문 서론에서 그는 우리 민족이 "구한말 국민국가 형성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는 근대국가 형성이 조선왕조 말기인 대한제국하에서 실패했음을 명확히 한 뒤 논문 초반부에서 이렇게 기술했다.

"우리 민족이 근대국가를 본격적으로 체험하기 시작한 것은 억압적 일본 식민지국가를 통해서였다.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가진 일제 식민지국가는 해방 후 한국 국가 형성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의 국가에 대한 관념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억압적 일본"이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구한말의 한민족이 이루지 못한 근대국가가 일제 식민지배하에서 본격적으로 체험됐다고 기술했다. 일본 덕분에 근대화됐다는 주장을 과격하지 않게 전달한 셈이다.

김영호 장관이 대북 견제론과 식민지근대화론을 함께 유포하는 것은 북한과의 화해·협력이 남한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암시가 식민지근대화론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일제가 토지조사사업 등을 빌미로 사유재산권을 침해한 일을 일본 자본주의에 의한 한국 개발로 미화한다. <반일종족주의> 공동 저자인 주익종 이승만학당 이사는 이 책의 후속판인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에서 "일제하에서 실제 일어난 일은 조선인이 참여하고 그 결과도 향유하는 식민지 개발"이었다며 이렇게 기술한다.

"일본은 조선을 병합한 후 사유재산권 제도를 확립하고 교통·통신 등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며 조선 내 산업개발을 꾀했습니다. 일본은 토지소유권과 경계의 조사 및 등기, 법률에 따른 공평한 지세 부과, 통화 가치의 안정을 통해 사유재산권을 보호했습니다."

주익종 이사는 일본 자본주의가 일제강점기의 한국뿐 아니라 해방 이후의 한국도 발전시켰다고 주장한다. 박정희의 굴욕적인 한일협정 체결을 미화하는 대목에서 그는 "고도성장을 위해선 일본의 자본과 기술 지원이 절실"했다고 주장한다.

또 박정희 정권이 일본과 독도밀약을 체결한 일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이 밀약은 이후 30년간 양국 정부에 의해 준수"됐다면서 "그 사이 한국 경제는 자본주의 역사상 유례가 없는 고도성장을 구가"했다고 한 뒤 한국 고도성장의 일등공신으로 일본 자본을 지목한다.

그는 "고도성장의 제1의 요인은 일본과 미국의 자본, 기술, 시장을 마음껏 활용하였던 국제정치와 경제의 환경"이었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일본"이라고 하지 않고 "일본과 미국"이라고 했다. 일반적인 한국인들과 다른 배열을 한 것이다. 그가 이렇게 한 이유는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그 같은 주장은 일제 식민지배를 미화하는 동시에 일본 자본주의를 미화한다.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일본 무정부주의자들이 한국을 근대화시켰다, 일본 사회주의자들이 한국을 근대화시켰다고 말하지 않는다. 일본 자본주의자들이 한국을 근대화시켰다고 강조할 따름이다. 일본이 사유재산권을 보호했다고 거짓말하는 주익종 이사의 윗글에도 일본 자본주의에 대한 옹호를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을 맹렬히 비판하는 뉴라이트들이 식민지 근대화론도 함께 떠받드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일본 자본주의가 한국을 근대화시켰다는 주장은 자본주의 체제가 아닌 북한을 대중의 마음속에서 밀어내는 작용을 하기에 충분하다.

한미일 삼각체제와 식민지 근대화론

한미일 국방장관이 지난 7월 28일 일본 도쿄 방위성에서 한미일 안보협력 프레임워크 협력 각서에 서명하고는 악수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신원식 국방부 장관, 기하라 미노루 일본 방위상,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 ⓒ 연합뉴스


북한 정부가 수립되기 전부터 일본 자본주의가 한국을 위해 기능했다는 주장은 북한 정권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효과로도 연결된다. 반북주의자들인 뉴라이트들이 일제 식민지배를 미화하는 것은 한일 연대를 촉진하는 동시에 북한 견제의 효과도 낼 수 있는 일이라서다. 일본을 이용해 북한을 치고자 식민지근대화론을 내세우는 측면도 있다.

뉴라이트 그룹에는 과거에 자본주의체제를 비판했던 운동권 지식인들이 다수 있다. 이들이 식민지 근대화론을 통해 북한을 우회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이 자본주의의 논리와 구조를 학술적으로 다루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냉전체제를 옹호하는 데만 급급해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분석할 여유가 없었던 과거의 올드라이트들은 쉽게 생각해내기 힘든 접근법이다.

윤석열 정권이 한미일 삼각체제를 통해 북한은 물론이고 러시아·중국과도 대립각을 세우는 이 시기에 식민지 근대화론과 관련된 뉴라이트의 움직임이 한층 더 부각되고 있다. 언뜻 보면 한일연대만을 위한 움직임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에 더해 북한뿐 아니라 과거의 공산권에 대한 대항 움직임의 측면도 띠는 현상으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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