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후면 22대 총선입니다.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던 21대 총선, 0.7%p 차로 갈린 20대 대선, 국민의힘의 압승으로 끝난 2022년 지방선거까지. 지난 4년, 민심은 끊임없이 요동쳤습니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가 될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요? <오마이뉴스>는 대표적인 '스윙보터'이자 전체 의석수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수도권을 시작으로 각 지역구를 가로지르는 이슈와 인물을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
경기 성남시분당갑. 2000년 지역구 신설 이래 치러진 7번의 선거에서 보수정당 국회의원 후보가 모두 과반이 넘는 득표율로 6번 당선된 '보수 강세' 지역이다. 하지만 판교 신도시 구축으로 젊은 인구가 유입된 뒤부터는 변화 가능성도 엿보였다.
20대 총선 당시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권혁세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후보를 1만 1538표 차이(8.52%p)로 꺾고 당선된 것이 첫 신호였다. 김 전 의원이 21대 총선 때 재선에 성공하진 못했지만 변화의 싹은 남아 있었다. 김은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후보와의 격차가 고작 1128표 차(0.72%p)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민주계열 정당 입장에선 이제 분당갑에서 해볼만 하다는 자신감이 붙기 충분했다.
그러나 22대 총선을 앞두고 변수가 발생했다. 김 전 의원이 최근 동성 성추행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으면서 민주당에 빨간불이 켜졌다. 게다가 김은혜 의원의 경기지사 선거 출마로 발생한 2022년 6월 보궐선거 땐 '대선주자' 안철수 의원이 62.50% 득표율로 압승을 거뒀다.
잠깐 변화를 맞이하는 듯했던 분당갑의 지형이 일순간 보수진영으로 다시 쏠린 셈. 그런데 이처럼 유리한 형국을 맞이한 국민의힘은 현재 또 다른 고민에 빠진 상황이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22대 총선 때 분당갑 재출마를 노리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전·현직 의원 중 누구에게 공천장이 주어질지 애매해진 모양새다. 최대 관전 포인트가 '안철수 vs. 김은혜' 간 내부 공천 경쟁이 될 전망인 만큼 이 과정에서 당내 갈등 및 잡음이 부각될 경우 오히려 역풍이 불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오마이뉴스>는 10월 5일 분당갑을 찾았다.
민주당 분전했지만...
김병관 전 의원의 20대 총선 승리와 21대 총선 석패는 판교 신도시 구축 등에 따른 젊은 인구 유입 결과로 풀이돼 왔다. 그가 NHN 게임스 대표이사·웹젠 대표이사 등을 역임한 점도 IT 및 게임 회사 등이 밀집한 지역구에 딱 맞아떨어졌다는 평가였다.
하지만 22대 총선을 반년 남짓 앞둔 현재 지역의 분위기는 좋진 않다. 21대 총선 당시 김은혜 후보와 맞붙어 고작 0.72%p차로 패했던 김 전 의원은 2022년 보궐선거 땐 안철수 후보에게 25.01%p 격차로 크게 뒤졌다. '대선주자'라는 인물 파워와 정권교체란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면서 기세가 크게 꺾인 것. 이러한 분위기는 지역민들도 감지하고 있다.
"여긴 부촌이라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은데, 나는 민주당 지지자예요. 지금 윤석열 정부의 실정이 명백하잖아요. 나 또한 물갈이가 됐으면 희망하지만, 민주당이 분당갑에서 이기긴 쉽지 않을 거예요." -판교지구 주민 60대 남성 A씨
IT 및 게임 회사들이 밀집해 있는 분당구 삼평동의 득표 변화도 유의미하다. 김 전 의원은 20대 총선 당시 삼평동에서 권혁세 후보에게 2121표 차로 앞섰다. 21대 총선 때도 삼평동에서는 김은혜 후보를 601표 앞섰다. 하지만 2022년 보궐선거 땐 반대였다. 김 전 의원은 삼평동에서도 안철수 후보보다 2111표 적게 득표했다.
김 전 의원이 지난 9월 동성 성추행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것도 치명적이다. 민주당 입장에선 선수가 경기를 앞두고 심각한 부상을 당한 셈.
김 전 의원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내년 총선 출마 어떻게 할 것인지 지금 말씀드릴 수 있는 시점은 아닌 것 같다"며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안방마님' 김은혜 vs 새로운 주인 안철수
국민의힘 입장에선 호재인 상황이지만 고민이 만만치 않다. 과연, 누구에게 분당갑 공천을 줄 것인가.
현역인 안철수 의원은 분당갑 재출마 의지를 확고히 밝혀왔다. 그는 지난 8월 9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한번 당선됐다고 2년도 안 돼서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것은 정치인의 도리가 아니다"라며 "정치인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주민들과 한 약속을 지키는 일이고 그래서 지역을 함부로 옮기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또 지난 9월 27일 페이스북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향해 "내년 총선에서는 더 이상 피하지 말고 분당갑에서 저와 정면승부를 통해 국민들께 심판받길 결단하기를 바란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내 분위기는 아직 물음표다. 오히려 안 의원에게 험지 출마를 요구할 가능성도 높다. 안 의원도 지난 3.8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시 "수도권 승리를 위해 험지 출마를 요청하면 기꺼이 따르겠다"고 한 바 있다. 물론 '당 대표에 당선되면'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다.
이에 안 의원 쪽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에 "지금 상황에서 안 의원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험지로 간다고 했을 때 오히려 당에 도움 될 것이 없다"며 "분당갑에 출마한다면 지금 강서구에서 지원 유세하는 것처럼 수도권 전 지역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장 수면 위로 부각된 안 의원의 경쟁자는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다. 2022년 경기지사 선거 출마로 안 의원에게 잠시 건네준 지역구를 22대 총선에서 되돌려 받겠다는 의사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객관적 지표만 놓고 봤을 땐 안 의원이 더 선거에서 유리하다. 대선주자급 인물인 데다 'IT 전문가'로서 지역구 특성에도 맞춤형이기 때문이다. 당장 21대 총선 당시 김은혜 수석은 김병관 전 의원과 맞붙어 50.06% 득표율을 기록했다. 안 의원은 2022년 보궐선거 때 김병관 전 의원과 맞붙어 62.50% 득표율을 기록했다.
결국 관건은 '윤심'
그럼에도 공천 경쟁의 최대 변수는 '윤심(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다. 여당의 22대 총선 공천은 사실상 '윤심'에 의해 결론날 것이란 시각이 당 안팎에서 우세하다.
이때 유리한 건 안 의원보단 김 수석이다. 김 수석은 '윤석열 대선 후보 선대위' 공보단장, '윤석열 인수위' 대변인을 거쳐 현재 대통령실 홍보수석을 맡고 있다. 줄곧 윤 대통령의 '입' 역할을 해온 만큼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가까울 수밖에 없다. 돌이켜보면, 분당갑 국회의원을 포기하고 경기도지사 선거에 뛰어든 것도 당시 유승민 경기도지사 후보를 저지하고자 하는 '윤심'을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안 의원은 최근 윤 대통령과 각을 세워왔다. 특히 지난 5월 윤 대통령 취임 1주년 당시 "이대로 계속 가는 것은 국민이 기대한 길이 아니다"라고 비판했고,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와 관련한 윤석열 정부의 대응 논란을 두고선 "국민들 설득을 통해서 수용성을 높이는 부분이 지금까지 조금 미흡했던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윤심 공천'은 양날의 검이다. 특별한 사유 없이 대선주자급 정치인인 안 의원이 아니라 '윤 대통령의 입'인 김 수석에게 공천을 주게 된다면 지역 민심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당내 교통정리가 원활히 될 필요성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안철수-김은혜' 경선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경선에 들어갔을 땐 '국민의힘 지지층'에 호소력이 있는 김 수석이 유리해질 공산이 크다.
"안철수는 정치적 카리스마가 부족하잖아. 봐봐,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고 가만히 있잖아. 깜냥이 안 되는 거야. 정치 안 하면 존경받고 지낼 텐데 개인적으로 안타까워. 정치 이제 안 했으면 좋겠어. 김은혜는 여기 원래 안방마님이잖아. 대통령님이랑도 가깝고." -이매동에 거주하는 50대 여성 B씨
10월 5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성남시민의 날 50주년 행사에 참석한 분당갑 지역주민 70대 남성 C씨는 "안철수는 뿌리가 여기(보수정당)가 아니라 믿음이 안 간다"며 "경선 붙으면 김은혜 밀어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번에 안철수 찍었다"며 "안철수가 공천 받아오면 찍어주긴 할 것"이라고 답했다.
분당을 공천도 잡음 발생한다?
경선이 아닌 본선을 감안하면 안 의원이 더 유리하다. 중도적 이미지나 전국구 인지도를 바탕으로 다른 여당 후보들보다 확장성이 상대적으로 더 크기 때문이다. 당장, 정치에 관심이 적은 지역주민들의 반응은 '안철수는 안다'였다.
"김은혜? 그게 누구예요? 안철수는 당연히 알죠." -야탑동에서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30대 남성 D씨
"정치 잘 몰라요. 김은혜? 몰라요. 저는 (정치적 성향이) 어느 쪽도 아닌데, 지난번엔 안철수 찍었어요. 그냥 (TV를 보고) 잘 알고 예전에 좋아했었거든요." -백현동에 거주하는 20대 남성 E씨
상황이 이렇다 보니 김은혜 수석을 옆 지역구인 성남 분당을에 투입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때도 잡음이 예상된다. 우선, 김민수 국민의힘 대변인이 오랫동안 분당을에서 밭을 일궈왔다. 그는 21대 총선 당시에도 김병욱 민주당 의원과 맞붙어 2.54%p(4045표) 차로 석패하는 등 가능성을 보여줬다. 또 다른 '윤심 후보'의 등장 가능성도 있다. 지난 총선 당시 분당갑 예비후보로 나섰던 박민식 국가 보훈부 장관이 이번엔 분당을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공천 갈등'이 선거 결과에 큰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분당갑이 국민의힘에 마냥 유리한 지역구라 보기 힘들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에 실망한 지역 민심이 반영된다면 민주당 또한 해볼 만한 곳"이라며 "만약 '윤심'이 공천에 작용해 그 과정에서 충돌이 생긴다면 민심에 악영향을 끼쳐 여당이 원하는 결과를 못 낼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