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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터올 즈음해서야 나는 깜박 잠이 들었다.

"아까 김상경하고 순찰 나갔다가 겁나서 그냥 와버렸어요."
전경 K의 정말 겁먹은 말소리에 나는 잠이 깨었다.

"무엇이 어쨌는데."
경찰관이 채근하듯 물었다.
"금남로 도로 위에 별의별 게 다 떨어져 있어요. 칼, 낫, 어제 시위하면서 무기가 될 만한 것은 다 들고 나왔었나 봐요."

대체 밖에서는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광주는 지금 어디로 가는 것인가. 그러고 보니 사월 초파일이었다.

아침이 되자, 유치장에 갇힌 우린 전날처럼 우르르 화장실로 몰려갔다. 화장실 바닥에 신문 한 장이 떨어져 있었다. '신현확 내각 총 사퇴' 라는 굵은 활자의 기사가 눈에 띄었다. 불편한 자세로 쪼그리고 앉은 채 착잡한 심정으로 나는 그 기사를 읽었다.

한낮이 조금 지났을 때였다.
"탕! 탕탕탕!!!"
총성이었다. 우린 너무도 분명한 총성이기에 '아니야, 공포일 거야' 애써 자위해 보는 것이었지만 벌떡벌떡 뛰는 가슴을 어떻게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우리 노래하자"
무슨 노래를 부를까 생각하는 사이 '따따따따따--' 하는 요란한 총성이 들려왔다. 단순한 공포사격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불길한 총소리였다. 허나 설마, 설마겠지. 우리는 '아닐 거야'를 주문처럼, 최면 걸 듯 되뇌이다가 저마다 깊은 상념에 젖은 채 말을 잊었다.

벽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는 A. 무릎을 싸안고 앉아 푹 고개를 묻고 있는 E. 결가부좌를 하고 앉은 채 초점없는 눈을 하고 있는 C. 두 손으로 얼굴을 덮고 있는 D. 길게 누워 있는 B. 그리고 나...

총소리가 나면서 - 그건 역시 총소리가 분명했다 - 시위대는 얼마 동안 숨을 죽이는 기색이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함성소리는 오히려 더 거세어지고, 그 즈음 뜨기 시작한 헬기까지 요란한 굉음을 내고 있어서 바깥은 소란하기 이를 데 없었다. 거기다 경찰관들의 거동도 아까부터 수상해 보였다. 허둥대는 기색이 역력했다.

"무슨 일 있어요?"
물어도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제발 아저씨, 어떻게 된 일인지 말 좀 해주세요."
그에서야 경찰관 하나가 마지못해하며 대답하였다.
"철수야."
"그럼 우린요?"
"학생들은 괜찮을 거야, 시위대들이 풀어줄 테니까."
하지만 밤새도록 쉬지 않고 함성을 질러대던 시위대도 두렵기는 매한가지였다. 또, 군인들이 다시 우릴 트럭에 싣고 어딘가로 데려 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들의 만행으로 봐선 쫓겨가는 분풀이로 경찰서에 폭탄이라도 던질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영락없이 통닭구이 신세가 되겠군.' 서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모두는 갖은 생각들로 새파랗게 질린 채 철창에 매달려 애원하였다.
"제발, 지금 열어주세요."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안위에만 관심이 있는 듯 부산하게 오가면서도 우리에겐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그때 마침 우리의 기사인 K전경이 나타났다.
"열어주고 가야죠."
그가 경찰관에게 따지듯 말하였다.
"나는 몰라."
경찰관은 끝내 우릴 난장판 속에 팽개쳐두고 달아날 심산인 듯했다.
"열쇠 이리 주세요. 제가 책임지면 될 거 아녜요!"
K전경이 격앙된 목소리로 경찰관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마지못해하며 그는 열쇠를 K전경에게 내주었다.
"철컥."
철옹성같던 철문이 열렸다.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져있는 서류더미들을 밟으며 우린 K전경이 이끄는 대로 경찰서 뒷담을 넘었다.

이미 담은 수많은 경찰관들의 발길에 채어 많이 허물어져 있었다. 주택들이 빽빽이 맞닿아 있는 담을 몇 번 더 넘고서야 우리는 어떤 집에 이르렀다. K전경은 그 집 주인에게 우릴 부탁하더니 곧 사복으로 갈아입고 황망하게 어디론가 가버렸다.

곧 가족들과도 연락이 되었다. 그러는 동안 집주인은 밥을 차려 내왔다. 반찬이 꽤 푸짐했다. 며칠만에 우리는 제대로 된 밥으로 포식했다.

어둠이 내릴 무렵에서야 우린 그 집에서 나왔다. 모두는 마치 적지에 온 소심한 공작원들 같았다. 겁먹은 채 담벼락에 바짝 붙어 걷느라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우린 뿔뿔이 흩어졌다. 큰길까지 나왔을 때였다.

"얘!"
저만큼 앞에서 엄마가 나를 먼저 알아보고 허둥지둥 달려왔다. 그제서야 나는 그 동안의 긴장이 와락 풀리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창피한 줄도 모르고 소리내어 엉엉 울었다.
"아유, 얼마나 놀랐으면..."
엄마의 음성도 젖어 있었다.

그 날 이후로 광주항쟁이 다 끝나는 날까지 나는 거의 밖을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27일 이른 새벽, 온 광주를 숨죽이게 했던 그 여자의 음성만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광주 시민 여러분! 계엄군이 공격해오고 있습니다. 모두 나와서 함께 싸웁시다!"

나는 그때, 두꺼운 솜이불이 총탄을 막아 줄 거라며 아버지가 덮어주고 간 목화 솜이불을 머리끝까지 꼭꼭 덮고 누워 있었다.

5월 27일 그 따뜻한 봄날에 아직 어린 여자의 그 간절하고 애절한 음성을 들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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