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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나 결혼하기 싫어."
"왜?"
"친구들 결혼하고 사는 거 보니까 별로 안 하고 싶어.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꼭 가정부 같잖아. 마음대로 외출을 할 수가 있나. 친구들끼리 만나자고 하면 못 나오는 핑계가 맨날 남편 아니면 시집 타령이야."
"넌 결혼도 안 한 애가 어째 그리 잘 아냐?"
"언니만 봐도 그러네 뭐. 결혼 전엔 같이 술도 마시고 영화도 보고 그랬는데, 결혼하고 나니까 칼 퇴근하기 바쁘잖아. 회식을 해도 애 때문에 안 된다고 밥만 먹고 도망치기 일쑤고…."
아직 결혼 전인 회사 후배 은미는 결혼에 대해 아주 부정적이다. 결혼에 대한 환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대개의 비혼(非婚) 여성들은 결혼을 꿈꾸게 되는데 조금 뜻밖이었다. 물론 결혼이라는 게 여러가지 이유로 불편하고 힘든 부분도 많지만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도 분명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 행복한 순간들은 그냥 얻어지는 건 분명 아닌 것 같다. 결혼에 대한 환상을 깨고 현실을 조금만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준비한다면 결혼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게 결혼 3년 차에 접어든 내 생각이다.
'결혼 준비'라 하면 혼수나 예물, 살림살이 등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비혼인 후배들에게 내가 받은 질문들은 대부분 그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집은 누가 장만했나, 예물은? 예복은? 신부화장은? 신혼여행은? 야외촬영은?…'하지만 그런 겉치레의 준비보다 몇 배는 더 중요하고 중요한 게 있는데 그걸 어떻게 알려줘야 할까.
연애 결혼이든 중매 결혼이든 일단 결혼을 결심했다면 어느 정도 결혼할 남자에 대한 탐색(?)은 끝났을 것이다. 가족 관계는 물론이고, 무슨 일을 하는지, 성격은 어떤지, 술은 얼마나 자주 마시는지 등등 기본적인 것들은 이미 다 꿰뚫은 상태. 하지만 연애할 때 알던 그 남자가 전부가 아니다. 여자든 남자든 연애할 땐 서로에게 자신의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한다. 그러니 연애시절 그 달콤하던 남자를 그대로 믿으면 큰 오산이다.
결혼은 남녀가 평등하고 동등한 관계로 출발해야 하는데 시작부터가 뭔가 불공평하다. 그 불공평함 뒤에는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결혼 준비가 있다. 먼저 남자 쪽을 보자. 결혼해서 부모님과 함께 살 것인가, 분가할 것인가에 따라 달라지지만 결혼해서 살 집을 마련한다. 그리고 신부에게 줄 예물을 준비하는데 이건 신부 쪽에서 예단을 얼마나 해 오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다면 여자 쪽은 어떤가. 가장 중요시되는 게 시부모님과 시집 식구들에게 하는 예단인데 요즘은 현금을 주는 게 일반적이다. 그 다음엔 남자가 마련한 집에 들여놓을 가구며 살림살이를 장만해야 한다. 그 외 웨딩드레스를 포함한 예복, 신혼여행, 야외촬영, 신부화장(마사지) 등을 함께 또는 혼자서 고민하게 된다.
겉으로 보기엔 불공평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남자가 집을 마련하고 여자가 살림살이 준비하는 게 뭐 어떠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이보다 더 불공평할 순 없다. 우선 결혼해서 누구와 살 것이냐는 문제부터 보자. 당연히 결혼은 한 쌍의 남녀가 함께 살기 위해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남자들은 자기 가족들, 그 중에서도 부모님과 함께 살아야 한다고 우긴다. ‘관습’이고 ‘효’라는 이름으로 특히 장남들은 거의 필사적이다. 여자들은 딸만 있는 집 장녀라도 자신의 가족 어느 누구도 데리고 결혼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예단문제. 여자 쪽에서 남자 집으로 예단으로 얼마를 보내면 다시 얼만큼을 돌려 받는다. 많게는 3분의 2 정도, 아니면 절반 정도만 되돌려 받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것저것 예단 품목을 적어 그대로 요구하기도 한다. 그런데 왜 예단은 남자 쪽 부모와 가족들에게만 하는가. 자식 키우는 건 딸이나 아들이나 힘들긴 마찬가진데 공들여 키운 딸을 결혼시키면서 돈까지 줘야 한다는 건 참으로 이상한 관습이다. 예단이 시집 식구들에게 예를 다하기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예를 왜 시집에만 해야 하는가 말이다.
살림살이 준비는 어떤가. 남자가 집을 마련했으니 그 집이 전세든, 월세든, 아니면 아예 집을 샀든 간에 집의 주인(명의)은 남자가 된다. 요즘 공동명의로 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아직 대부분은 남자 이름으로 집을 얻게 된다. 하지만 여자가 준비하는 살림살이는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기는 하지만 재산으로서의 가치는 그다지 없다. 아무 문제없이 잘 살 경우에만 가치가 있는, 이를테면 소모품인 셈이다.
이렇게 불공평한 결혼을 한 후에는 또 어떤 일들이 있을까. 시집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면 생활비를 드려야 하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시부모님께 용돈을 드려야 한다. 명절은 물론이고 제사 때마다 남편의 조상을 위해 전 부치고, 나물 무치는 노력봉사를 해야 하고, 시시때때로 시집 일에 불려 다녀야 한다. 명절 때는 언제나 시집에 우선적으로 가야하고, 심지어는 명절에 친정에 아예 가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결혼을 하면서 남자가 얻는 건 아내이다. 그런데 이 아내는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때로는 돈도 벌고,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도 키운다. 거기다 남자 부모와 조상 제사에 남자 대신 노력 봉사로 효도까지 해 준다. 반면에 여자는 남편을 얻었지만 돈 버는 것 말고는 함께 사는 공동생활에 거의 하는 일이 없다. 맞벌이를 해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가사분담을 한다하더라도 주체적으로 하지 못하고 시키는 일만 겨우겨우 할 뿐이다. 그렇다고 처가에 노력 봉사 할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이런 결혼 문화가 너무나 보편적이어서 많은 여성들이 불공평하다고 느끼면서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결혼 전에는 이런 것을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 분위기도 한몫을 하고 있다. 결혼하는 10쌍 중 3쌍이 이혼한다는 최근 통계 결과만 봐도 결혼이란 게 꿈처럼 달콤하고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쯤 다들 공감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결혼은 30년 가까이 남남처럼 살던 여자와 남자가 앞으로 남은 생을 함께 살아가기로 약속하는 것이다. 결혼 전에 할 일 첫 번째는 아무 것도 숨기지 말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의논하는 일이다. 이를테면 집은 누구 명의로 할 것인가, 돈은 누가 벌고 재산 관리는 누가 할 것인가, 가사는 어떻게 분담하고, 맞벌이를 한다면 아이는 언제쯤 낳고, 육아는 어떻게 할 것인가, 가족계획을 할거라면 피임은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 양가에 용돈은 얼마를 드릴 것인가, 명절 때 양가 방문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식으로 결혼하면서 부딪치게 될 여러 문제들은 미리 대화를 통해 사전 협의가 필요하다.
결혼식을 꼭 예식장에서 화려하게 할 필요도 없고, 그 하루를 위하여 비싼 돈주고 마사지 받을 필요도 없고, 야외 촬영은 더더구나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예물도 마찬가지다. 결혼반지 하나면 충분하지 않은가. 비혼 여성들이여, 진정 사랑해서 결혼을 결심했다면 두 사람이 어떻게 행복하고 즐겁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자. 결혼을 앞두고 대개의 신부들이 겪는다는 우울증과 스트레스는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결혼에 에너지를 쏟다보니 생긴 증상들이 아닐까.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결혼을 결심한 사이라면 콩깍지가 씌여 남들이 봐서 악조건인 것도 자신은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의 얘기도 들어보고 이미 결혼한 선배들의 충고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지난해 처음 등장한 부부재산등록제를 적절히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사람마다 세상사를 보는 눈은 다릅니다. 이해관계에 따라 똑같은 사건도 각기 다르게 해석합니다. 오늘 우리는 아줌마들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바라보려 합니다. 거창하게 페미니즘을 말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아줌마들의 시각으로 전하고자 할 뿐입니다.
'아줌마들만 봐!' 연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오늘부터 약 2주간 한 편의 글이 '아줌마들만 봐!' 타이틀로 오마이뉴스에 연재할 것입니다. 남편을 말한다(2월 18∼19일), 결혼을 말한다(2월 20∼22일), 아줌마를 말한다(2월 23∼26일), 육아를 말한다(2월 27∼ 3월 1일), 나를 말한다(3월 2일 ∼ 4일)의 소제목에 따라 각각 두세 편의 글을 올립니다.
마침 2월 22일은 오마이뉴스 창간 2주년입니다. 우리는 이 기획연재에 아줌마 뉴스게릴라들의 동참을 기꺼이 환영합니다. - '아줌마들만 봐!'연재 참가자 일동
'아줌마들만 봐!'연재에 우선 참여한 사람들은 아줌마들의 인터넷 해방구인 웹진 줌마네(www.zoomanet.co.k)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줌마들입니다. 이 글을 쓴 강지숙은 내 안에 숨어있는 아줌마의 힘을 찾기 위해 5년 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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