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나는 결혼이 두려워요. 그리고 꼭 해야하나 싶기도 하고… 그렇지만 외로움이란 걸 생각해보면 결혼을 하긴 해야될 것도 같아."
흔히 말하는 '결혼 적령기'에 달한, 혹은 이미 지나쳐버렸을지도 모르는 이제 막 서른이 된 후배의 말이다. 우리사회에서 여자에게 '결혼'이 주는 것과 빼앗는 것은 무엇일까? 나의 사랑스런 후배의 두려움은 아마도 '결혼'이 여자에게 주는 것보다는 빼앗는 것이 더 많다는 데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결혼이란 '짝짓기' 제도가 얼마나 유구한 역사적 산물인지, 현재에 이르러 얼마나 다양한 위협을 받고있는 불안정한 제도인지에 대한 수많은 논의들은 지금 이 순간 '결혼'이라는 제도에 이미 발을 들여놓은 이들이나 그 문전에서 서성거리는 필부필부(匹夫匹婦)들에게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의 후배처럼 장차 해결해야 할 '결혼'이란 일생의 대 사건을 목전에 두고 고민하는 이들은 결혼에 대한 무수한 이야기들 앞에 결코 초연해지지 못한다.
나는 후배에게 "결혼의 무엇이 두려우냐고" 물었다.
"모든 것이 다 두려워요. 가사노동, 나는 일을 계속하고 싶은데 결혼한 친구들 보면 남편들은 도와주는 차원이고 여자들은 밖의 일과 가사를 다 해야 되더라고요. 게다가 육아문제에 있어서는 내가 욕심을 많이 부릴 것 같아요. 일도 팽개치고 아이에게 매달릴 게 뻔해요, 나는 그리고 가장 두려운 거.... 결혼이란 게 언니, 한 남자와만 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남자와 그 딸린 가족들 모두와 함께 부대껴야 하잖아요. 그런 일 들이 너무 엄청나 보여요. 게다가 '사랑'이란 것이 그렇게 영원할 수 있을까? 하는 것까지"
참으로 영악한 녀석이다. 나 역시 결혼 전, 가사노동의 공포로 두려움에 떨었었다. 생각해 보라, 죽는 날까지 하루도 빠짐 없이 먹고 입는 일에 바쳐질 노동에 대해서. 엄청난 높이의 시퍼런 파도 앞에 나 혼자 서 있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그것의 불평등함에 대해서는 미쳐 생각하지 못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가사노동과 앞이 보이지 않는 육아문제, 거기에 더해지는 시댁과의 관계가 대부분의 한국 기혼 여성들의 삶을 규정짓고 있다는 것을 후배는 미리 알아채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직 미혼 여성의 95% 이상이 결혼에 이르고 있는 한국에서(2001. 7. 25.문화일보) 여성에게 결혼이란 대체 무엇일까 하는 뒤늦은 의문을 안고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기혼자들 틈새에서 너무나 익숙해진 결혼의 다양한 실례들을 다시 한번 찬찬히 뜯어보았다. 또 아줌마들을 위해 만들어진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어디서도 말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가는 수많은 기혼 여성들의 고단한 삶들을 만났다.
내가 돌아본 주변의 '결혼'과 이제까지 정의해 온 결혼에 대한 이런 저런 말들은 결혼이란 것이 결국은 성혼을 하기에 적합한 성인남녀의 자유의사에 따른 결합, 만남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남성으로 하여금 여전히 자신의 가족집단의 위계질서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결혼에 들어서는 것을 미풍양속이라 부른다. 그 미풍양속 하에서 과연 남성들이 절대적인 개인의 자유의사를 가질 수는 있는 걸까? 혹시 이런 가부장제적인 인습이 남자가 진정한 성인, '어른'이 되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의 일생을 설계하는데 있어 어떤 중요한 결정도 가부장제적 위계질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아닐까? 결혼조차도 말이다.
반면에 이 미풍양속이 여성에게는 "죽어도 그 집(시집) 귀신이 되라!"라고 명령한다. 따라서 같은 인습이 뿌려놓은 제도가 여성에게는 조기에 어른이 되는 수업을 받으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남편이 어떤 부당한 행위를 해도 남편을 애들처럼 취급(?)하고 "네(여성, 며느리)가 참아라" 하는 말이 통용되는데는 이런 인습이 깔려있는 것 아닐까?
가까운 이웃이나 친구들, 그리고 여성사이트에서 만난 수많은 여성들은 결혼을 통해 사랑하는 한 남자와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남자를 품고있는 그 가족집단과 홀로 대면하고 있다. 나의 후배는 가장 두려워하는 것으로 그것을 꼽은 것이다.
실제로 주변에 두 부부의 관계는 좋은데 시어머니의 지나친 간섭으로 이혼을 하고 각자 살면서 남자가 자주 찾아와 아이들과 놀고 묵어가기도 하는 부부가 있다. 그 아내의 말은 이렇다.
"그 사람 너무 착해서 탈이야. 결국 제 엄마를 이기지 못해. 자기가 못 견디는 거야."
부부가 동침하고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곱게 보지 못하는 그녀의 시어머니는 어쩌면 특별한 경우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남자들이 아내에게 '엄마'같은 이해심과 포용력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다. 아니 의당 아내 된 자의 도리로 인식되기조차 한다.
한편 여성들의 입지가 강화되고 있는 요즘은 여성들 역시 자신의 집안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채 결혼에 입문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결혼에 이미 들어섰거나 그 앞에서 망설이고 마음 졸이는 모든 이들이 누구의 간섭 없이 선택하고, 그 선택을 감당하는 성숙한 '어른'인지 혹은 되고자 노력할 자세가 되어있는지 짚어보자.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게 되었을 때, 그 사랑이 주는 고통들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선택했는지, 선택할 수 있을지도. 그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가 가진 제도로서의 '결혼'의 실체에 접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또 후배에게 넌지시 물었다.
"요즘은 비혼(非婚)도 있던데… 특히 여자들의 경우 비혼 여성들끼리의 네트워크도 구축하고, 결혼이란 것에 대한 다양함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지 않나? 하고."
"사실 언니, 조금 외로운 것 빼고 별로 필요성은 못 느껴요. 집에서도 특별히 반드시 결혼하라는 것도 아니고. 아마 나이가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지도 몰라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요. 내가 아마 야망이 없었으면 벌써 결혼해서 아이 키우는 일에 매혹 당했을지도 몰라요."
나처럼 진화가 느린 사람이 결혼 생활 15년을 보내고서야 체득한 것들을 미리 간파한 후배의 현재 상황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어른이 되는 수업도 함께 받고 있는 나는 후배의 당찬 말에 흡족하면서도 한편 아쉬운 무엇이 있었다.
그런 계산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 분명 한 남자와 여자가 만나 한 생을 지지고 볶는 속에 있기 때문이다. 부부로서 만나지 않았다면 각자가 혼자서는 결코 깨지 못할 어떤 것을 깨쳐주어 다른 세상을 보게 하고, 이 세상 어디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연대의식을 만나게도 하는 등 수많은 보물들이 그 여정에 숨어있다. 무엇을 발견하는지는 다 다르지만 말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후배에게 한 마디 건넨다.
"그래도 괜찮은 놈 있으면 한번 해봐, 너라면 잘 할 수 있을 거야. 너는 책임이 뭔지를 잘 아는 녀석이니까."
덧붙이는 글 | 사람마다 세상사를 보는 눈은 다릅니다. 이해관계에 따라 똑같은 사건도 각기 다르게 해석합니다.
오늘 우리는 아줌마들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바라보려 합니다. 거창하게 페미니즘을 말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아줌마들의 시각으로 전하고자 할 뿐입니다.
'아줌마들만 봐!' 연재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오늘부터 약 2주간 한 편의 글이 '아줌마들만 봐!' 타이틀로 오마이뉴스에 연재될 것입니다. 남편을 말한다(2월 18∼19일), 결혼을 말한다(2월 20∼22일), 아줌마를 말한다(2월 23∼26일), 육아를 말한다(2월 27∼ 3월 1일), 나를 말한다(3월 2일 ∼ 4일)의 소제목에 따라 각각 두세 편의 글을 올립니다.
마침 2월 22일은 오마이뉴스 창간 2주년입니다. 우리는 이 기획연재에 아줌마 뉴스게릴라들의 동참을 기꺼이 환영합니다.
- '아줌마들만 봐!'연재 참가자 일동
'아줌마들만 봐!'연재에 우선 참여한 사람들은 아줌마들의 인터넷 해방구인 웹진 줌마네(www.zoomanet.co.k)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줌마들입니다.
이번에 글을 쓴 양은주는 시비걸기엔 좀 무뎌지고, 적응하는 데도 굼뜬 아줌마입니다. '시비 걸기'와 '적응' 사이에 두 다리를 걸치고 있어 불면 혹~ 날아갈 듯한 不惑을 맞아 열심히 공중곡예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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