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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적 중립성은 독이 될 수 있다.

연일, 보수 일간지들이 인수위의 인터넷을 통한 국민 참여 방식에 경기를 일으키고 있다. 이들은 이러한 정책이 검증도 없이 실행되는 인기영합주의 정책이라고 혹독하게 몰아치고 있다. 이러한 경황에서 ‘경향’에서도 똑같은 주제를 다루게 되어 주의 깊게 사설을 곱씹어 보았다. 신년 데스크 릴레이 칼럼을 통해 대선의 중립보도의 문제점에 대한 언급도 있었기에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사설의 내용은 지극히 실망스러웠다.

이번 사설은 서두에서 인터넷을 통한 국민참여에 일단 긍정적 평가를 내린다. 그러나 본론부에 이르러서는 예의 많이 본 듯한 중립자의 모습을 띄기 시작한다. 점잖게 인터넷의 여론 왜곡가능성과 역기능에 일침을 가한다. 후반부에는 급기야 노무현 정권과 시민단체에게 엄중한 경고를 한다.

우선, 인터넷의 여론이 모든 세대를 반영할 수 없다는 한계점에 일정부분 수긍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글의 전체적 맥락과 결론부에서 인터넷을 통한 국민참여 방식에 비난의 근거로 사용된 세 가지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국회 중심의 대의민주주의와 충돌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대의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제도이다. 인터넷을 통한 국민의 참여는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로 지적된 국민의 무관심과 다양한 계층의 배제라는 약점을 보완해 주는 획기적인 수단이다. 어느 정도의 부작용을 감수하더라도, 순기능이 더욱 크고 민주주의의 근본 원리에 더욱 근접한 정책적 시도를 대의정치를 위해 희생하라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어불성설이다.

'노무현 정권은 여소야대의 열악한 정치 환경을 극복하는 수단으로 이 제도를 이용하려 해서는 안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개혁’이라는 국민의 시대적 열망을 등에 업고 당선되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원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의 운신의 폭은 넓지 않다. 이번 인수위법안 역시 한나라당의 반대로 통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소수 정당은 국민의 지지를 발판으로 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 인터넷을 통한 국민참여는 여론의 방향을 감지하고 때로는 힘을 모으는 효율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전후맥락을 무시하고 정치수단으로 사용하지 말라는 엄포는 군인에게 총없이 전쟁에서 최선을 다해 싸우라는 말과 다름없다.

'시민단체는 비정부기구라는 기본적 정체성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시민단체는 우리사회의 소금과 같은 존재였다. 언론이 감히 손댈 수 없었던 많은 부분의 개혁을 이끌어냈다. 96년에 펼쳐진 낙천낙선운동과 꾸준히 시행되고 있는 국정감사 모니터링 참여 등은 그 효과를 여실히 증명하였다. 이렇게 장려되어 마땅할 활동에 대해 ‘주제를 잊지 말고 행동하라’는 엄포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수록 빛을 발하는 민주주의의 원리와도 어긋난다.

언론의 본질은 사실보도와 불편부당에 있다. 하지만 옳고 그름의 판단이 분명한 사안에서의 기계적 중립성은 불편부당을 가장한 비겁함에 불과하다. '젊고 강한’언론을 천명한 경향신문이라면 좀 더 명확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보수 일간지들이 유포하고 강조하는 인터넷의 부작용과 편협성에 동조하기보다 단점을 보완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전환을 선도해야 한다. 덧붙여 이 제도가 가지고 있는 변화와 창조의 역동성을 강조하여 더욱 많은 사람의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것이 지금 시대가 원하는 참된 언론의 모습이고 경향이 가야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향신문의 옴부즈맨광장에도 송고되었습니다.

경향신문 1월 8일자 사설 '국민참여' 제대로 하려면

온 라인과 오프 라인으로 광범위하게 국민들의 의견을 들어 정부의 인사 및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인수위의 계획은 예전에 겪지 못했던 새로운 국정운영 방식이다. 특히 국민들이 인터넷을 통해 직접 국정에 참여하는 방식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시도해보지 않은 초유의 실험이다. 시민단체들의 국정참여도 활발해질 전망이다. 이같은 현상은 한국사회가 크게 바뀌고 있으며, 그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처음 접하는 국정운영 방식이다보니 많은 국민들이 거부감과 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야당을 중심으로 대중영합주의의 표본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무턱대고 거부만 할 일은 아니다. 우리는 월드컵에서 촛불시위, 대선에 이르기까지 최근 1년 가까운 기간동안 사회 저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실체를 여러차례 확인했다. 시대의 정신은 탈(脫)권위적이고도 투명·공정한 사회를 지향하고 있으며, 이런 때에 방관해오던 국민들의 참여는 무엇보다 소중하다. ‘국민참여’ 국정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인수위는 좀더 깊이 연구를 해야 한다. 우선 그 많은 불특정다수의 의견을 방만하게 받아들여 과연 얼마나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지 효율성을 따져봐야 한다. 자칫하면 정권의 의도에 따라 ‘국민의견’이 선택되고 제도는 인기 위주의 형식적 이벤트로 전락하기 쉽다. 따라서 의견접수 창구를 부문별로 압축하는 방안도 검토해봐야 한다. 특정집단의 의도된 여론몰이나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에서 소외돼 있는 계층과 세대의 의견은 어떻게 수용하고 해석할 것인지도 문제다.

또 이처럼 생소한 직접민주주의 정치 방식은 잘못하면 국회 중심의 대의(代議)민주주의와 충돌을 일으키기 쉽다. 그러므로 새로 출범할 노무현 정권은 여소야대의 열악한 정치환경을 극복하는 수단으로 이 제도를 이용하려 해서는 안된다. 시민단체도 활발한 운동을 전개해야 할 때이지만 비정부기구라는 기본적 정체성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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