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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로 들어서면 아이들의 환호성에 유리창이 흔들린다. 일선에 있을 땐 아이들이 그다지 귀엽고 예쁜지 몰랐었다. 가끔씩 만나는 개구진 눈빛의 아이들을 볼 때 예전에 갖지 못했던 여유를 갖게 됐다. 지난해는 한 걸음 느리게 기다리는 인내심속에 아이들을 향한 사랑스러움을 키울 수 있었던 해다.

▲ "사인해주세요" 일학년 개구쟁이들
ⓒ 우성남
아들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학교에서 '명예교사' 신청용지를 보내왔다. 명예교사는 학부모 중에서 제각기 전공한 분야와 특기를 '특기적성시간'에 가르칠 수 있다.

둘째아이가 어리긴 했지만 격주 목요일 2시간을 봉사한다기에 신청에 응했다. 내게 주어진 학년은 5학년 미술 특기적성반과 아들아이의 반 명예교사였다. 이 아이들과는 나름대로 즐거운 수업으로 친구처럼 일년을 보냈고 학기말에는 교내 전시회를 열었다.

5학년 아이들과 토론을 해서 자기만의 독창적인 느낌으로 한 점이나 두 점씩 작품을 준비하기로 했다. 재료와 기법은 어떤 것이든 상관없고 용지의 크기나 형태도 자유롭게 선택하기로 했다. "아주 특이하고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자." 그림은 곧 나를 표현하는 것이니까 누구 흉내 내는 거 말고 '자신의 느낌 ,자신을 생각'을 표현하기를 덧붙였다.

아이들은 대부분 화려하고 값비싼 재료로 구상을 해서 작품계획을 올렸다. 아무래도 그 동안 보아 온 세련되고 화려한 작품들로 '눈 호강'을 해왔던 것이리라. "자, 물론 화려한 것도 좋지만 종이 한 장과 연필 하나만으로 표현했다고 해서 초라한 것은 아니야, 버려진 쓰레기들로도 좋은 작품을 만들 수도 있다." 쓰레기란 말을 듣자 아이들은 박장대소를 하며 웃는다. 쓰레기와 예술작품의 관계가 무척 낯선가 보다.

▲ 재미있는 사람
ⓒ 우성남
아이들과 수업하는 시간이 쌓여질수록 아이들의 생각도 기존의 틀에서 자유로워졌고 아이들은 장난스레 버려진 일회용 컵이나 찢어진 종이를 이용하여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자화상을 예쁘게만 그리려는 여학생도 있었지만, 풍자해서 눈알이 밖으로 나와 있고 파리가 그 주위를 '웽웽'거리는 표현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매시간 준비물 없이 빈손으로 온 남학생에게 웃어주며 "비록 준비없이 왔지만 이곳에 빠지지 않고 자리한 것도 훌륭하다. 선생님이 종이 한 장 줄테니 앞으로 진행될 너의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겠니?" 매번 겸연쩍고 수줍기만 했던 내성적인 아이도 조금씩 열정을 내게 되었고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어 내심 흐뭇했다.

내성적인 아이는 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아이들을 지도할 때 장난치고 극성맞은 아이는 힘은 들지만 차라리 별 어려움 없이 의사가 소통되기도 한다. 문제는 너무나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아이다. 이런 정적인 아이의 속마음을 꺼내 보기란 조금 과장해서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만큼이다. 일년 동안 명예교사의 보람이라면 내성적인 그 아이의 적극성과 활짝 웃는 웃음을 본 것이다.

일학년 교실 에서도 몇 번의 도우미 수업을 했었고, 학기말에는 교내전시에 출품할 협동작품을 지도하였다. 아이들과 상의하여 '재미있는 사람'을 주제로 정했다. 아이들은 가끔씩 학교에 오는 나를 복도에서부터 환대해주었다. 그날그날 내가 입고 간 의상도 체크해주고 모자를 쓴 것에도 귀고리의 변화에도 민감한 아이들이 있었다, 일학년 교실에 서 있으면 마치 내가 스타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 46개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 바지
ⓒ 우성남
예시작품을 보여주면 "우와 아줌마 아니 선생님, 화가예요? 우와~너무 멋있다." 쉬는 시간이면 우르르 달려들어 주위를 둘러쌓아 성을 만들었다. 한 아이가 손을 들여대며 "사인해 주세요" 큰소리로 외치자 아이들도 덩달아 종이를 가져와 사인해 달라고 졸라댔다. 그 모습들을 본 담임선생님도 한껏 웃으시고 나또한 즐거운 마음으로 웃는 하루가 되었다.

못쓰게 된 남방과 구멍난 청바지를 가지고 아이들과 작품을 만들었다.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도 심어주고 작품이 꼭 값비싼 재료로만 탄생되는 것이 아님을 인지해주고 싶은 의도도 숨어 있었다. 폐품으로 만들기 경험을 해 본 아이들은 생활 속에서 돌아다니는 폐품으로 기발한 생각에 접근하여 사고확산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자원절약과 환경보전이라는 것 이외에도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얻게 되고, 이러한 생활 습관을 통하여 항상 새로운 것에 흥미를 갖게 되므로 '창의력 계발'에 큰 도움을 되는 것 이다.

▲ 주전자를 타고가는 조영남아찌 인어 공주?
ⓒ 우성남
아이들 하나하나가 심혈을 기울여 한조각 한 조각 완성하여 46개의 이야기가 몸속에 담겨 있는 '재미있는 사람'을 완성했다. 서로서로 협동하여 만든 '재미있는 사람'을 끼워 맞추며 눈 오는 날 강아지 춤추듯 신나했고, 종이상자로 만든 손과 다리를 끼워 넣고 얼굴에는 아빠의 고장난 안경까지 올리고는 박수를 치며 까르르 좋아했다. '재미있는 사람, 재미있는 작품'이 드디어 탄생된 것이다.

아이들이 나를 재미있는 스타처럼 대해 준 보답으로 난 쉴 틈 없이 내몰리는 현대의 아이들에게 '쉼표' 하나 찍어주는 시간을 주었기를 기도해본다. 또 그 천방지축 꾸밈없는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선생님 아니 재미있는 아줌마'로 아이들 추억 속에 예쁘게 남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어린이에게 쉼표 하나 건네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이들이 편안하게 위로받고 숨 쉴 공간이 많아졌으면 싶다. 우스개 말로 "공부를 가르치다 가슴에서 천불이 나면 그것은 내 자식이 맞다"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자식에 대한 기대와 염려가 밑바탕에 깔려 있어서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낀다는 '포장'으로 부모들이 그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고 강행하는 경우가 많다. 나또한 머리로 아는 것 따로, 실행하는 것 따로인 엄마임을 고백한다. 그러나 힘을 다해 '쉼표' 하나 건네는 엄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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