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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29일 안동교도소에서 특별사면으로 출소한 김경환씨
ⓒ 이승욱
2003년 6월 12일 오후 7시 30분경,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은 아내의 얼굴이 금방 굳어졌다. 나는 직감적으로 관할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불안한 표정의 아내에게 전화를 건네받은 나는 이전과 똑같은 얘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이 출소 후 세 번째 걸려온 전화였다. 그 사이에 두 차례나 등기우편으로 출석요구서가 날아왔다.

나는 1999년 9월 이른바 '민족민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4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안동교도소에서 복역하다가 올해 4월 29일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었다.

하지만 나의 시련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또 하나의 족쇄가 기다리고 있었다. 국가보안법의 족쇄를 3년 8개월여만에 가까스로 풀고 출소하자마자 다시 보안관찰법의 족쇄가 채워졌다.

이 법에 따르면 나는 현재 "보안관찰해 범죄를 다시 범할 위험성이 있다고 인정할 충분한 이유가 있어 재범의 방지를 위한 관찰이 필요한 자"(제4조 1항)로 보안관찰처분 대상자가 되는 것이다.

보안관찰처분 대상자는 출소 전에 보안관찰처분 대상자 신고를, 출소 후 7일 이내에 관할 경찰서장에게 출소 사실을 신고하여야 한다. 또 출소 전 신고사항에 변동이 있을 때에는 7일 이내에 변동사항을 신고하여야 한다.

신고 내용은 원적, 본적, 주거, 성명, 생년월일, 성별, 주민등록번호, 가족 및 교우관계, 입소 전의 직업, 본인 및 가족의 재산상황, 학력, 경력, 종교 및 가입한 단체, 병역관계, 출소예정일, 출소 후의 거주예정지 및 그 도착예정일, 보안관찰해당범죄 사실의 요지, 판결법원, 판결연월일, 죄명, 적용법조, 형명, 형기, 보안관찰해당범죄외의 전과관계 등이며, 신고서에는 2인 이상의 신원보증인이 서명, 날인해야 한다.

나는 고심 끝에 이 법을 거부하기로 결심했다. 이 법은 이성과 양심과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지킬 수도 없는 악법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보다도 이 어리석고 귀찮은 일을 왜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납득할 수가 없다.

내가 어디에 살며, 누구와 살고 있는지, 전직이 무엇이며 무슨 일로 수형생활을 했는지는 아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일이다. 굳이 경찰이나 검찰, 국정원이나 교정시설이 확보하고 있는 자료가 아니더라도 인터넷에만 들어가도 나와 관련된 기사와 자료는 금방 찾을 수 있다.

사정이 그러함에도 내 발로 다시 경찰서를 찾아가서 '건전한 사회복귀 의사를 현실적으로 표시'하고 동일한 내용의 신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따위의 구차하며 자존심 상하는 일을 왜 반복해야 하는지 나는 정말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앞으로 피보안관찰자가 되어 보안관찰법이 명시하고 있는 세부사항을 일일이 신고할 자신도 없다.

세상에 출소하자마자 다시 법을 어기겠다고 나서는 바보는 없을 것이다. 자신의 신념과 존엄과 양심을 지키려다 법정에 서 본 사람은 국가권력의 가공할 위력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수사과정와 재판절차의 신산함과 괴로움을 절감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나는 이 나라에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이 법을 거부한다. 왜? 어떤 권력도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침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헌법 제 10조는 분명히 밝히고 있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러한 의무를 보장할 의무를 지닌다."

보안관찰법은 헌법재판소가 아무리 위헌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해도, 내 판단으로는 명백히 헌법에 반하는 위법이다.

나는 이 희대의 악법을 자세히 알고 나서 경악과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구상의 마지막 냉전지대인 대한민국에서 이른바 '사상범'으로 낙인찍힌다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고달픈 일인지를 뼈아프게 절감했다. 나는 이 사회에서 불가촉천민(Untouchable)이었던 것이다.

이 법이 폐지되지 않는다면, 내가 죽지 않는 한 이 법의 굴레에서 벗어날 길은 없어 보인다. 나는 평생 동안 '저는 지난 날을 반성하며 건전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겠습니다'를 반복적으로 복창하며 살아가거나 아니면 이 법을 지키지 않은 죄로 값비싼 대가를 치르거나 하는 수밖에 없다.

보안관찰법의 입법 목적은 자명하다. 보안관찰처분이 필요한 자들에 대하여 "재범의 위험성을 예방하고 건전한 사회복귀를 촉진하기 위하여 보안관찰 처분을 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사회의 안녕을 유지함을 목적으로"(제1조)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은 정치적 반대자들이나 비판세력에 대한 '길들이기'와 '족쇄 채우기' 혹은 '정치적 보복'이라는 혐의를 벗기 어렵다.

▲ 지난 4월29일 민혁당 사건으로 3년 8개월만에 특별사면으로 출소한 김경환 씨가 마중나온 아내 이경희 씨와 포옹하고 있다.
ⓒ 이승욱
'재범의 위험성'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위험성'이나 '개연성'은 객관적으로 입증이 가능한가. '행위의 반사회성'이 아닌 '내심의 반사회성'을 처벌하는 것은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닌가.

국가의 안전과 사회의 안녕은 헌법이 명시한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권이 제대로 보장될 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국가가 한 번의 위법 행위에 대해 '재범의 우려'라는 자의적이고 애매모호한 기준으로 평생 동안 통제와 감시를 계속하겠다고 하는 발상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질서와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이다.

보안관찰법의 내용 가운데 헌법에 반하는 독소조항들은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많다.

보안관찰법은 "보안관찰대상범죄 또는 이와 경합된 범죄로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를 받고 형기 합계가 3년 이상인 자로서 형의 전부 또는 일부의 집행을 받은 사실이 있는 자"를 보안관찰처분 대상자로 명시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른 보안관찰 처분은 검사의 청구에 의하여 법무부 소속의 '보안관찰처분심의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법무부 장관이 결정함으로써 부과된다. 보안관찰처분의 기간은 2년이며 무제한으로 갱신할 수 있다.

헌법은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 처벌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여 이중처벌금지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이는 신양균 교수(전북대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국가권력이 국민 전체의 이익이나 필요 등을 내세워 국민의 일원인 범죄의 자유와 권리를 이중으로 침해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또한 3년 이상의 보안관찰해당 범죄에 대해 2년씩 무제한 보안관찰처분에 처하는 것은 그 근거가 희박하며 이미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보안관찰처분은 이처럼 광범위한 기본권 제한을 초래하고 있으며, 형벌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지니고 있음에도 보안관찰처분을 '보안관찰심의위원회'가 심의·의결하고 법무부 장관이 결정하도록 하는 것은 헌법상 삼권분립의 원칙,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법무부 안의 일개 위원회가 어떻게 법원을 대체할 수 있는 권한과 자격을 가질 수 있는가.

보안관찰 처분을 받은 자는 자신의 인적사항과 가족의 재산상황, 종교, 가입단체 등을 신고한 후, 3개월 간의 주요활동사항, 자신이 회합 통신한 다른 보안관찰처분 대상자의 인적사항 및 일시 장소 및 내용, 3개월 간에 행한 여행에 관한 사항, 기타 관할 경찰서장이 보안관찰과 관련하여 신고하도록 지시한 사항을 정기적으로 관할경찰서장에게 신고하여야 한다.

이를 신고하지 않을 경우 형사 처벌되는데 이는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 국가의 행정편의를 위한 협조 행위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해서 형벌을 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신고 내용들 또한 개인의 사생활을 지나치게 침해하고 있으며, 사실상 자신을 스스로 통제하고 검열하게 만들며, 다른 사람을 감시하고 의심하게 만드는 인간성 파괴 행위를 국가가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보안관찰법에 따르면 피보안관찰자가 주거지를 이전하거나 국외여행 또는 10일 이상 주거를 이탈하여 여행하고자 할 때는 미리 거주 및 여행 예정지를 신고하여야 한다. 또한 검사 및 사법경찰관리는 피보안관찰자의 재범을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지도와 회합 통신을 금지하거나 집회 또는 시위장소의 출입을 금지하는 등의 재범방지조치를 할 수 있다.

이러한 조항들은 헌법상 보장된 신체의 자유, 주거 이전의 자유, 여행의 자유 등의 기본권을 명백히 침해하는 것이다. '지도'와 '재범방지 조치' 또한 내용의 광범위함과 추상성으로 인하여 피보안관찰자의 자유권을 과도하게 제한할 소지가 큰 것이다.

냉전시대의 대표적 악법인 사회안전법이 시대의 뒷전으로 사라지면서 정치적 타협에 의해 겨우 명맥을 유지한 보안관찰법은 이처럼 허점이 많은 누더기 법률이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책상에는 '대한민국 헌법'이 놓여져 있다. 내가 요즘 자의반 타의반으로 가까이 하고 있는 책자다. 헌법 조문들을 되풀이 읽으면서 나는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나에게 큰 희망을 주면서도 그와 비슷한 무게로 동시에 절망을 안겨주는 것이다.

헌법은 국민이 정한 국민의 뜻이자 약속이다. 더욱이 지금의 헌법은 87년 6월 민주대항쟁의 위대한 투쟁이 낳은 소중한 성과이다. 그런데 민주주의와 인권을 보장한 우리의 헌법은 지금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가.

악법을 존속시키기 위한 합법적이고 제도적인 장치로 헌법이 악용돼온 사례는 드물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대한민국 헌법에 대해 자부심과 준법의식을 가지고 있다.

자유의 규범적인 내용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사람이라면 국가의 잘못된 행위 준칙에 대해 저항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이 헌법의 정신을 지키는 일이며, 개인과 공동체의 자유권을 확장하는 일이다.

나는 악법에 저항하는 불굴의 불복종 정신이 헌법의 내용을 더욱 아름답고 풍성하게 만든다고 믿고 있다. 자유, 민주, 평화, 평등, 행복의 숭고한 가치는 이기적이고 편협한 국가권력의 어두운 하늘에서 언제나 별처럼 반짝이며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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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말 정치팀장으로 일했습니다. 민혁당 사건으로 복역하고 지금은 새로운 진로를 모색중입니다. 저는 출소하자마자 다시 보안관찰법으로 묶인 상태입니다. 이 법은 희대의 악법으로 양심과 존엄에 비추어 도저히 지킬 수가 없어 불복종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보안관찰 처분대상자로서 제 입장을 밝히고 호소하고 싶어서 기자 등록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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