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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1일.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중앙일보와 동아일보가 똑같은 문구의 헤드라인을 1면에 올렸다, '한총련 합법화 재검토'.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청와대 몇몇 수석의 입을 빌어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조선일보도 뒷받침한다. '정부-한총련, 한-미 동맹을 어쩔 것인가'. 섬뜩함의 정도로만 따지면 한총련의 시위는 이들의 문구에 몇 수 접어야 할 것 같다. "대한민국의 뿌리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도시게릴라형 공격", "한총련의 난동으로 온 나라에 벌집을 쑤셔놓은 듯한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과연, 과연 그런가. 되물을 수밖에 없다. 한총련이 미군 훈련장에 들어가 시위를 벌인 사건이 보도되기 이전에 미군 스트라이커 기동타격대가 한국에서 첫 훈련을 가지는 사건의 의미를 제대로 고민해 본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나는 아니다. 인계철선 노릇을 해온 미 2사단의 전면적 재배치와 맞물려, 이를 대신할 수 있는 기동타격 부대가 '유사시 한국에서 신속히 작전을 전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국 땅에 발을 들여놓은 것의 의미에 대해 한번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있는 정치적 민감함이 내게는 없었다. 이것을 과감하게 지적한 그들의 행위가 '대한민국의 뿌리를 송두리째 흔들고, 온 나라에 벌집을 쑤셔놓고 있는'행위인가. 되물을 수밖에 없다.
한총련에게는 다른 시민사회단체에게 부여된 '합법적으로 집회 및 시위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한총련의 이름으로는 어떠한 집회 허가도 얻어낼 수 없었다. 언로 역시 확보하기 어려웠음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저들이 '합법화'와 '일괄적 수배 해제'를 주장하며 길거리에 모형 감옥을 설치하고 그 안에 들어가 몇날 몇일을 보내도 그것을 보도해 준 언론은 극히 일부 뿐이었다. 이렇게 사회 자체가 총체적으로 한 정치적 단체의 의사 표출 통로를 차단하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그들의 '틀을 벗어난 시위'에 대해 돌을 던질 수 있는가.
혹자는 이렇게 반문한다.
'그래도 국민들의 공감을 얻어야 하지 않느냐. 같은 반미시위라도 작년 촛불시위는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는데, 한총련의 시위는 되려 국민들의 외면을 받고 있으니 문제 아니냐'.
국민들의 공감, 좋다. 그것의 필요성을 부정함은 아니다. 그러나 사안 자체가 다르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사건에 대해 무죄 평결을 내린 미군 법정에 대해 국민적 분노가 이미 형성되어 있던 사건과, '스트라이커 부대가 한국에서 벌이는 훈련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아니 그런 부대가 한국에 들어오기나 했는지'조차 제대로 알고 있는 국민들이 없는 사건이 동일한 전제 아래에서 논의될 수 있는가.
되묻는다. 합법적으로 의사를 표출할 수 있는 통로를 봉쇄당하고 언로까지 허락받지 못한 '이적단체'가 (국민들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릴 수 있는 통로는 어떤 것이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해 지혜로운 답변을 내놓을 수 없는 자라면, '국민들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는 이유로 한총련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청와대와 정부의 호들갑도 지나치다. '동맹국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았다'는데, 그 동맹국이라 함은 누구의 동맹국을 말하는가. 저들에게는 그 동맹국이 우리의 안위와 이익을 지켜 주는 '수호천사 국가'일지 모르나, 시위를 벌인 이들에게 그 동맹국은 우리네 분단의 씨앗을 뿌렸고 지금도 통일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으며 경제, 사회 전반으로 우리 사회를 자신들에게 종속시키려 하는 '깡패국가'일 뿐이다.
정부에서 무슨 생각을 가지고 미 스트라이커 부대의 방한 훈련을 허가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나(어쩌면 우리 정부의 허가조차도 필요 없고, 미 8군의 허가만으로도 방한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의 방한에서 여전히 대북 침략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미국의 야심을 읽고 그것에 대해 항의하는 것이 민주공화국인 우리 나라에서 허가될 수 없는 일인가.
한총련이 완전무결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도 지적받아 마땅한 방법상의 오류가 있었다. 그러나 그 오류를 지적하는 데 역량을 소비하기에는, 지금 한총련에게 가해지고 있는 극우 세력의 총공세가 너무도 거대하다. 저들은 한총련이 합법화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안보 상업주의와 극우 담론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체제를 위협한다고 사람들에게 겁을 줄 수 있는' 단체의 존재라면 전교조와 민주노총이 합법화된 지금, 남아있는 것은 오직 한총련 뿐이다.
한총련이 계속 이적단체로 남아 있어야 이들을 빌미로 안보 상업주의적 담론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좋은 소스마저 사라진다면, 무엇을 가지고 '통일전선전술'이 남한 내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거짓으로) 폭로할 것인가. 극우 세력도 나름대로 다급하다.
그것이, 현재 한총련이 가진 힘이 미약함에도 계속해서 이들에게 총공세를 펼치고 있는 극우 세력의 내심이다. 이러한 그들의 전략이 보이는 이상, 무엇이 더 시급한 과제인가. 스스로 개혁적임을 자임하면서 '국민에게 믿음을 주는 시위를 하라'고 한총련에게 훈계할 것인가, 정치적 이념과 노선이 다르더라도 극우 세력에 의해 부당한 총공세를 당하는 한총련과 연대함인가. 나는 단연코 후자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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