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군부권위주의를 거치는 동안 우리나라 언론에 대한 권력의 개입과 탄압은 꾸준히 이뤄져왔다. 이에 맞서 싸우다 결국 여러 신문사들이 독재정권에 굴복하게 되면서 정부에 의해 편집방향이 좌지우지되는 이른바 언론의 암흑시대에 돌입하게 됐다.
언론사 현직에서 일하면서 "군홧발에 의해 무자비하게 난도질당하는 기사로 인해 피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다"는 김태일(영남대 정치외교학과)교수는 현재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 언론들이 과거 민주화 과정에서 "체질개선을 거치지 않고 자율성이 확대된 점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독재 시절 일부 세력에 의해 독점된 보수적이고 퇴행적인 관행은 그대로 두고 자율성만 확대하다보니 언론의 문제점이 지적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50년대 지역 정론지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던 '매일신문'도 80년대 '1도 1사제'로 유일하게 지역을 대표하는 신문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정치권력에 의한 통제와 독점적 지배구조 로 인한 성장 때문에 지금의 비판을 받고 있다.
덧칠해진 '색깔론'을 제대로 보자
언론에 의해 왜곡되고 자칫 편중될 수 있는 정치보도를 바로 읽기 위해 김 교수는 먼저 '색깔론'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가질 것을 강조했다. 우리 속에 반공주의가 자리잡고 있으며, 공산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명백히 존재하는 상황을 이용해 언론이 자칫 침소봉대하는 격이 많다는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예를 들면서 그는 "정치기사를 보는 데 있어 어디까지가 덧칠해진 색깔론인지 구분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단순히 공산주의에 대한 문제를 넘어서 색깔론은 생각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으로 봐야 한다. 김 교수는 "정치적 억압 때문에 소수의견을 가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상황에서는 발전이 없다"며 "우리 사회가 정치적, 사회 문화적으로 소수의 의견이 무시되고 획일화된다는 것은 그리 좋은 일이 아니다"고 밝혔다.
하나가 되기보다는 '차이를 인정한 공존'을 택하라
통일문제연구소장을 오래 지냈지만 '통일'이라는 말 자체를 싫어한다는 그는 "통일보다 평화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정곡을 찌르는 말이라며 "남북이 서로 인정하고 교류하며 다양성과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하나가 되자'는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 슬로건도 반대한다. 서로 다른 점을 이해하고 이 대회를 통해 전 세계의 다양성이 어떻게 공존하는지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또 "'차이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것'은 정치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 적용되나 언론에서는 이 같은 차이를 획일화된 기준에 의해 무시한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정치와 언론이 만드는 지역주의에 동원되지 말라
언론은 색깔론뿐만 아니라 지역주의의 확산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지역주의의 뿌리는 어디서부터인가. 우선 역사적 근거가 있다. 그러나 지역주의가 과거 신라, 백제로부터 유래됐다는 설명은 근거가 없으며, 이는 오히려 실제로 지역주의를 만들어낸 박정희 이후 정치인들의 잘못을 경감시킬 수 있다.
또 경부선을 중심으로 한 경제성장이 지역감정의 요인이 됐다는 이유도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전국적으로 많은 유동인구를 감안할 때 사회적인 요인이 있다는 것도 주원인이 되지 못한다.
김 교수는 이를 "특정 정치인과 지역을 동일시하며 맹목적으로 지지하게 만드는 정치와 언론이 지역주의를 동원하는 것"이라고 규정하며, "시민들이 언론이 동원한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부패 개혁 위한 언론의 올바른 의제설정 필요
김 교수는 "정치 부패를 어떻게 척결할 것인지 언론이 과연 근본적인 대처를 제대로 했었던가"라는 의문에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떨어진 양말을 꿰매 신고 다닌 이승만과 변기물을 아껴 쓰기 위해 벽돌을 넣고 썼다는 박정희를 두고 개인적인 검소함으로 그들의 정치적 부패를 덮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중성을 가지고 있으며, 잘못한 점은 가려내야 하는 것이 옳다. 김근태 의원 역시 과거 고문을 받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고문의 가혹함이 아니라 야만스런 고문관들이 돌아서서 가족걱정을 하는 인간의 이중성을 봐야만 했던 것이라고 한다.
연일 정치권의 권력다툼을 탑 뉴스로 보도하기 바쁜 언론이 정작 문제의 근본을 파고 들어간 적이 있는지, 서민들이 힘든 문제, 이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는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의제설정을 한 적이 있는가. 언론의 역할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유권자의 '시민정치'로 정치개혁 극복하자
정치 부패를 극복하고 개혁을 이루기 위해 유권자인 시민이 나서야 할 때가 왔고 서서히 그런 조짐들이 보이고 있다. 김 교수는 다가오는 2004년 총선거에서 '시민단체의 정치적 중립성'이 논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지금까지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키는 것을 금역처럼 여겼으나 이는 도덕성과 관련 없는 문제며, 이제는 변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을 통해 참여와 자기실현의 욕구에 대해 새삼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정치적 중립이라는 것 자체가 기득권이 자신의 권리를 침해받지 않기 위해 만든 억압적 제도"라며 "진정으로 옳다는 판단 하에 옳은 사람이 당선되도록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는가"라며 반문했다.
정당정치가 이루지 못한 시민의 참여와 정치에 대한 과감한 개입을 이루지 못한 시민운동에 대한 대안으로 김 교수는 '시민정치'의 개념을 사용한다. "시민의 자발성의 힘을 담아내는 그릇이 필요하다. 정당정치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민사회가 나서서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권력 감시와 비판이 주된 역할인 '시민운동'에서 정치사회에 직접 참여하고 개입하겠다는 '시민정치'로의 발전이 정치개혁을 이뤄낼 수 있는 버팀목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