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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나라에 10억 부자 열풍이란다. 부자도 십억을 가진 부자, 백억을 가진 부자, 천억을 가진 부자로 여러 가지 겠지만 굳이 십억 부자 열풍이 부는 것은 그것이 그나마 실현 가능한 부자의 꿈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서점마다 부자학을 가르치는 책들이 넘쳐 난다. 전체 인문 사회 서적 매출의 70%가 부자학을 가르치는 책들이란다. 어느 서점에서는 삼십대 초반에 십억대 부자가 된 사람을 초청 강사로 초빙해 강연회 및 팬 사인회를 열었다.
그에 대한 참석한 사람들의 열광도 여느 연예인의 팬 사인회처럼 열기가 뜨거웠다. 서로 악수를 하려고 손을 내밀고 그의 사진을 찍거나 그의 모습을 자신의 휴대폰 첫 화면에 담았다.
그렇다. 바야흐로 부자 열풍이다. 이제 돈이 많다 것은 성공한 것이며 돈 많은 것만으로도 유명인이 될 수 있는 시대다. 수많은 사람들이 황금만능주의의 문제들을 꼬집었지만 그것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지는 낡은 생각 일뿐이며 이제 돈은 세상의 최고 가치로 인정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렇게 부자 되기를 열망할까?
부자를 꿈꾸는 사람들의 이유는 여러 가지 겠지만 그래도 의외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돈 싫어하는 사람 있어요?" 다소 허망한 대답이다. 어떤 명확한 의미가 있기보다는 당연하다는 태도다.
그럼 그 삼십대 초반에 십 억대 부자가 된 사람은 무엇 때문에 큰돈을 벌었던 것일까? 그의 생각은 다른 부자 지망생들에 생각보다는 보다 구체적이다.
"부자 되기를 원하는 것은 자유를 얻기 위함입니다. 부자가 되면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아도 되고 돈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죠. 그래서 저는 부자는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오! 자유라… 부자를 열망했던 이유가 이런 낭만적이고 인간적인 이유 때문이었다니….
부자의 꿈이 '자유'라는 말을 들으니 어느 평범한 영국 노동자의 말이 생각난다. 당신도 부와 명예를 갖고 있는 왕족이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명쾌하게 대답했다.
"저는 왕족이 되는 건 싫습니다. 왜냐하면 난 그들보다 소중한 것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유입니다. 전 키스를 하고 싶으면 아무 곳에서 해도 되고 이렇게 머리를 빨갛게 염색하고 싶으면 언제든 마음대로 하면 됩니다. 왕족들은 부와 명예는 가졌지만 그런 삶의 자유를 갖고 있지는 못하죠.
어떻게 보면 화려할 지는 모르겠지만 예쁜 새장 속에 갇혀 있는 날지 못하는 새죠. 전 제가 갖고 있는 자유가 그들의 부와 명예 보다 훨씬 더 소중하고 의미있는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바라보며 즐길 뿐 제 자신이 왕족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결국 이 평범한 영국 노동자가 말한 행복도 자유다. 한국의 부자 열풍에 중심에 서있는 사람이 말한 것도 자유다. 곧 행복은 자유이며 그 자유를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그 자유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는 것이다.
그럼 십억을 갖으면 진정 자유로워 질 수 있을까? 그 점에 대해서는 내가 아직 십억을 갖지 못했으니 쉽게 말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전 국가대표팀 감독 히딩크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월드컵 8강 진출을 확정 지은 후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고 말했다.
아마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16강을 이루면 8강에 가고 싶고 8강에 가면 4강에 들고 싶을 것이다. 우리에게 십 억이 주어지면 우린 정말 돈과 인생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이제 나는 배부르다"고 말 할 수 있을까?
또한 설령 십억을 모으면 충분히 자유로울 수 있다고 해도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며 십억을 모을 수나 있을까? 솔직히 나는 로또복권에 당첨되거나 투기에 손대지 않는 한 평범한 월급쟁이로 십억 만들기는 불가능 할 거라 본다.
지금 30대에 10억대를 모았다는 그의 재산 축적 과정도 가만히 살펴보면 결국엔 부동산 투자, 투기다. 그는 부동산, 증권, 경매, 채권 등에 손을 댔고 그중 가장 고수익을 낸 부분은 부동산이다.
그의 재산 축적의 대부분은 자본의 눈치 빠른 이동만으로 일궈 낸 불로소득인 것이다. 물론 그 투자 과정에 그가 아무리 고생을 했고 연구를 했다 포장을 해도 최소한 그의 돈벌이 방법이 생산적이지 않고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가 싼값에 사 둔 부동산을 누군가가 비싸게 샀기에 그는 재산을 모을 수 있었으며 그에게 아파트를 산 사람은 분명 그 차액만큼의 과다한 비용을 지불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린 그냥 돈의 속성이 이렇게 누군가의 기쁨이 누군가의 아픔이 된다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생각하며 십억의 꿈을 포기해야만 할까?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 또 그렇게 도저히 불가능한 십억 만들기에 계속 집착해야 할까? 그것 역시도 아닐 것이다. 될 수 있는 더 쉽고 좋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쉽고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어렵더라도 실현 가능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차피 십억 부자가 되고픈 이유가 자유 때문이라면 십억의 실현 가능한 꿈을 이루기 위해 그 십억이라는 개념을 바꿔 보면 어떨까? 우린 십억만큼의 자유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개념을 바꾸기만 한다면 우린 이미 최소한 오억 정도의 자유는 갖고 있는 작은 부자들은 된 것 같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자유도 최소한 오억의 가치는 있다고 생각 된다.
사실 불과 십년, 이십년 전 만해도 우리는 지금의 반에 반만큼의 자유도 누리지 못했다. 거리에서도 직장에서도 이 대한민국 어디에 있어도 우리는 통제 당하거나 속박 받고 있었다. 통행금지가 있었고 단정한 옷차림과 단정한 머리 모양을 강요받았다. 함부로 하지 못할 말과 표현이 있었으며 사방에는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널려 있었다.
지금 당장 인터넷만 접속해도 알 수 있다. 대단한 위치의 권력자들에 대한 비방과 조롱이 거리낌없이 넘쳐 난다. 하지만 그 표현의 정도만 극히 심하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남들 다 쳐다보는 길거리에서 연애를 하건 아니면 떼거리로 엽기적인 짓을 하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실 예전 같으면 벌써 삼청교육대로 끌려갔거나 최소한 경찰서 유치장 신세를 져야 할 행동들이 이젠 아무런 제약 없이 이루어진다.
물론 권력과 독재의 통제와 억압이 자본의 통제로 바뀐 건 사실이다. 기득권 세력들이 대중에 대한 통제 수단을 교묘하게 바꾸었으니 우린 아직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때 보다는 지금이 더 자유롭다. 그 때는 돈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했고 권력으로부터도 속박 받았다. 최소한 지금은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만큼은 넉넉하다. 둘 중 한가지는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경제적인 구속보다는 권력으로부터의 통제가 훨씬 더 무서울 수 있다. 그런 통제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은 그나마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하지만 무엇이든지 그것이 너무 많으면 그 소중함을 모른다고 했던가. 지금 사람들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의 가치를 잊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잊고 지내는 이 소중한 자유의 가치를 찾는다면 그것으로 최소한 오억은 될 것 같다. 그리고 나머지 오 억은 이 기본적 자유의 바탕 위에 자신이 추가로 오억의 자유를 만들어 내면 되는 것이다.
비교하면 이런 것이다. 모두에게 똑같이 하루의 자유를 주었다. 누구는 잠을 자고 누구는 운동을 한다. 하지만 그 행위에 대한 만족감은 모두 틀리다. 별로 한 것도 없이 하루가 허무하고 후회되는 사람도 있을 테고 하루가 편하고 즐거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결국 나머지는 자신의 몫이다. 자신이 자신의 삶을 더 자유롭게 하기 위한 자신만의 그 무언가를 하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돈 많이 벌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으면 제일 많이 꼽는 것이 있다. 좋은 집과 좋은 차와 가족들의 행복이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하지만 굳이 억지로 그것을 갖으려 무리를 하거나 마음 상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작고 허름한 차라 할지라도 '그래, 괜히 남들 눈 의식하지 말고 그냥 타고 다니는데 불편함이 없으면 되지 뭐…' 라고 생각하면 또 그럭저럭 타고 다니기가 괜찮을 것이다. 작고 낡은 셋집도 마찬가지다. '조금 좁더라도 가족들의 온기가 흐르고 웃음이 있어 편안히 쉴 수 있으니 고맙지…'라고 생각하면 또 그런 대로 편안한 집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렇다고 억지로 이런 생각을 권유하지는 않는다. 능력이 되고 형편이 되면 더 좋고 커다란 차도 집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경제력이 부족한데 그것 때문에 몸달아 하거나 괴로워한다고 더 좋아 질 것은 없다.
더 극단적인 예로 신용불량자가 삼백만이 넘는 시대에 이 만큼이라도 살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래서 우선 작은 것부터 하나씩 바꾸어 생각을 바꾸어 좋은 차가 아니라도 좋은 집이 아니라도 우린 이미 십억은 못 되도 5억 정도의 자유는 갖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행복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것이 편할 것 같다.
돈을 사랑하는 어느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돈 버는 사람들은 돈에 우선권을 부여한다. 그들이 꿈꾸는 삶은 '자유'다.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자유의 많은 부분이 돈에 의해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돈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으며, 돈에 대해 이중적 잣대도 갖고 있지 않다. 돈이 주는 긍정적 측면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돈의 노예가 되어 부자가 되기만을 꿈꾸는 태도도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돈이 주는 편리함을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돈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인 태도나 잘못된 욕심을 버리고, 자신의 월급 통장을 관리할 수 있는 자발적 능력 또한 중요할 것이다. "
맞는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돈이 주는 압박감과 힘겨움과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나는 모두가 투자, 투기, 경매, 눈치 보기로 십억씩을 모으기 위해 열광하는 사회보다는 열심히 일하면 차별 받지 않고 당당할 수 있는 사회,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데 십 억씩은 필요 없는 사회를 희망한다.
십억이 없더라도 자유로울 수 있고 십억이 아니라도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것이 십 억을 갖기 위해 스스로 힘겨운 갈망을 해야 하는 것보다는 자신을 더 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아쉽더라도 지금 주어진 5억만큼의 행복을 만들어 준 분들에게 감사하고 나머지 5억만큼의 자유가 더 보장 될 수 있는 진보된 세상을 위해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는 것이 최소한 나에게는 더 현실적인 십억 부자가 되는 방법일 것 같다.
우리가 잊고 지내는 동안 우리에게 5억 만큼의 자유를 준 분들을 생각해 보자. 그 안락함의 유혹 속에서도 힘겨운 길을 선택한 수많은 사람들.
그 중에는 독재 권력의 총칼 앞에 비겁한 신문 기사를 쓰기 보다는 30년, 40년 후에도 떳떳한 글을 쓰기 위해 스스로 펜을 꺾거나 저항의 글을 쓴 언론인도 있고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목숨마저도 던져 버린 분들이 계시다.
꼭 그런 대단한 것이 아니라도 우리 도시민들에게 맛있는 조개를 따기 위해 시린 갯벌에서 지친 허리를 펴지 못하는 할머니도 있고 팔월의 땡볕 아래서도 고추밭을 지키는 할아버지도 계시다.
그런 분들이 계시기에 그나마 이만큼의 행복이라도 가능하지 않은가! 그들에게 5억 만큼의 행복을 나눠 받았으면서도 우린 그런 행복은 잊고 살면서 내 자신의 행복만을 갈망하는 건 아닌가.
나도 부자가 되고 싶다.
하지만 내가 되고 싶은 부자는 누군가의 눈물을 가장 적게 필요로 하는 부자이다. 소중한 땀방울로 맺어진 꼬깃꼬깃한 돈일지라도 그래도 나에게라면 조금 덜 아까운 마음으로 주어진 돈들을 모은 부자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십억이 필요한 사회이기보다는 십억이 없어도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소망한다. 그 때가 되면 우린 십 억의 돈을 보유하지도 필요치도 않지만 모두가 십억대 부자인 아름다운 부자들의 세상 속에 살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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