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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한 가운데였다. 한창 회사의 파업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예상치 못한 큰 외숙부의 타계로 시골에서 일을 보고 있었다.
하얀 눈이 소복히 쌓인 시골의 정취는 언제 보아도 아름답고 또 포근하기만 했다. 큰 외숙부와의 이별은 아쉽고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다행히 일이 잘 마무리되어 가족들과 함께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어떤 직감이랄까 끌림이랄까, 알 수없는 느낌에 아내에게 문득 전화를 걸고 싶었다(출산예정일이 아직 일주일이나 남아있었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아내는 전화를 받았지만 이슬이 비치고 있다며 시골일을 잘 마무리하고 끝나면 돌아오라는 소리만 할 뿐 그다지 다급해하진 않았다.
하지만 전화를 할 때의 첫 느낌이 강하게 작용한 나는 이슬이 비치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 곧바로 서울로 출발했다.
며칠 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인지 서울로 오는 버스 안에서 내내 잠에 취해 있다가 터미널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을 듣고서야 겨우 깊은 잠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아직 덜 깬 잠을 쫓을 요량으로 2월의 차가운 겨울 바람을 한참이나 맞고 있어야 했다.
역시 서울은 시골에서 얻은 정감을 일순간에 없애 버리기에 충분할 만큼 어수선하고, 시끄럽고 또한 불안정해 보였다. 억제되지 않는 감정의 굴곡을 다잡고 집에 도착하니 아내는 일정한 간격으로 진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오늘 밤 아기를 만날 수 있을까?'
갑자기 이상한(흡사 부모가 된다는) 기분이 들면서 흥분이 되기 시작했다. 만약 아기와 만나면 첫 말은 어떻게 해야 할까? 탯줄은 잘 자를 수 있을까? 하지만 진통을 호소하는 아내와 마주하니 막상 그런 생각은 점차 사그라들고 아내가 안쓰럽기만 했다.
진통은 점점 잦아들었다. 처음 10분 간격으로 오던 진통은 2월 6일 밤 12시가 다 되어서는 5분, 3분 간격으로 좁혀지기 시작했다. 상대방의 그것도 사랑하는 아내의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없는 그 기분은 당해보지 못하는 사람은 이해할 수 없으리라. 조금이라도 내가 아내에게서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틈틈히 연습하고 익힌대로 체조동작과 복식호흡을 병행했다. 하지만 진통이 멎는 것도 잠시 뿐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진통은 여전했다.
새벽 2시. 우린 3분 간격에서 2분으로 줄어든 진통으로 미루어 출산임을 판단하고 급히 산부인과로 향했다. 새벽 2시 20분쯤 병원에 도착하니 당직 간호사가 늦어도 오전 중엔 아기와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간호사는 아기의 체중이(2.7kg) 작아 무난하게 출산할 거라 했지만 진통을 계속하는 아내의 모습은 그 고통을 대신하지 못하는 내 마음과 더불어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 9시 양수가 터지기 전까지 아내는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진통을 참아내며 견디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진통에 지쳐 땀까지 흥건히 배어 있는 아내의 이마를 닦아주며 위로와 잘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이것 외에는 달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 딱하기까지 했다.
드디어 7일 오전 9시 양수가 터지고 의료진이 모두 들어와 본격적인 출산을 준비했다. 나와 장모님는 긴장된 표정으로 아내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사지를 넘나드는 극심한 고통에 반비례해 곧 아기와 만날 수 있다는 기쁨으로 아내는 잘 참아주고 있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알 수 없을 만큼의 크나큰 고통이 엄습했지만 이를 극복하고 나자 우린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딸아이 은빈이와 만났다. 정신을 가다듬고 시계를 보니 오전 9시 54분이었다.
아직 탯줄이 달려있는 상태로 의사가 보여주는 아기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아내에게 한없는 사랑의 눈길로 "우리 아기 나왔어"하고 말해주었다. 그때의 그 감동과 감사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무한한 사랑으로 점철된 아내의 그 힘든 수고를 어찌 허접한 내 글재주로 표현하랴.
위생장갑과 위생의를 입고 짐짓 엄숙한 표정으로 아이의 탯줄을 자른다.
"은빈아, 안녕? 아빠야. 축하한다.이름처럼 은혜롭고 빛나는 삶을 살아가 주렴."
한없이 기쁘고 감사한, 무어라 달리 표현할 수조차 없는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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