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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수고가 따르는 법이다. 얼마전 해외 쇼핑몰을 통해 어렵사리 입수한 미갈라(Migala)의 신보 < La Increible Aventura >도 그런 경우다. 나는 이들의 첫 음반 < Diciembre, 3 A.M. >를 인터넷을 통해 듣고 대번에 반해버렸는데, 아무리 음반을 구하려고 애를 써도 국내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라디오 전파를 타면서 조금 유명해진 대표작 < Arde > 역시 마찬가지였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국내에도 극히 소량만 수입되었다가 금세 절판됐다고 한다. 이번 2004년 새 앨범 < La Increible Aventura >는 그야말로 작정을 하고, 미국 사이트도 아닌 곳에서 엄청난 배송료를 감수해 가며 구입하는데 성공했다. 이마의 땀이라도 닦으며 "휴…" 하고 한숨을 쉬고 싶을 만큼 꽤나 욕을 봤다.

미갈라는 스페인 출신의 4인조 포스트록 밴드로서, 이미 미국과 유럽 지역에 진출해 '특이한 것 좋아하는' 이들의 귀를 즐겁게 한 바 있다. 마드리드에 소재한 '아꾸아렐라' 레이블을 통해 1997년에 데뷔한 뒤, 2001년에는 미국의 서브 팝 레이블과 연이 닿아 통산 세번째 음반 < Arde >로 세계 시장 진출까지 해낸 '국제적' 스타다.

그런데 통상 포스트록으로 분류되는 미갈라의 음악이지만, 영미권의 기존 포스트록과 이들의 음악은 종류가 다르다. 일반적인 포스트록이 인공적이고 불협화음에 가까운 노이즈를 활용하는데 반해, 미갈라는 레드 하우스 페인터스(Red House Painters)를 연상시키는 포크 사운드를 기반으로 자연에서 채집한 온갖 형태의 효과음을 덧입힌다.

때문에 미갈라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정서는 우울하고 내성적이면서도 관조적인 느낌을 준다. 또한 나무 삐그덕거리는 소리, 바람 소리, 자동차 굴러가는 소리 등의 효과음들이 만들어내는 공감각적이고 회화적인 효과 또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미갈라가 2004년 새로 내놓은 음반의 타이틀은 앞서 언급했듯 < La Increible Aventura >, 우리말로 치면 '경이적인 모험'이 되겠다. 첫 곡 'El Imperio del Mal'는 이 음반의 정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트랙이다. 단발마로 점멸하는 효과음들 사이로 아프리카 정글 부족의 '제의'적 합창이 들려오고, 이어 긴긴 잔향을 남기는 기타의 묵직한 선율이 이어진다.

여기에 야생 동물의 울음소리 같은 기괴한 비명이 오밀조밀하게 얽힌 전자음과 어우러지며 그 야성적인 눈의 광채를 드러낸다. 오케이. 음반 표지의 크게 입을 벌린 맹수처럼, < La Increible Aventura >는 원시적이고 야성적인 심상을 만들어내는데 주안점을 둔 음반인 것이다.

이 광기어린 야성의 이미지는 기존 미갈라가 표현해온 음울하고 비극적인 정서와 맞물려 보다 복합적이고 진폭이 넓은 느낌을 청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를테면,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필리핀 정글 속을 헤매고 다니는 윌라드 대위라도 된 듯한 기분이 되는 것이다.

계속되는 두번째 곡 'Dear Fear'는 플라멩고를 변형한 느린 템포에 주파 조절로 만들어낸 노이즈 이펙트와 단조의 관현악이 어우러지는 드라마틱한 곡이다. 다소 처진 분위기는 뒤이은 'El Tigre Que Hay en Ti'에서 다시 야성의 광기를 머금는다. 전자음과 퍼커션 타박이 뒤엉켜 긴장감 넘치는 도입부를 형성한 뒤, 얇게 오버드라이브를 건 기타와 변칙적인 8비트의 빠른 리듬이 가세해 자연의 힘에 압도된 인간이 가질 법한 긴박한 공포감을 만들어낸다.

또한 'WWW'는 단촐한 포크록의 진행이 초기 미갈라를 떠올리게 하는 듯하지만, 토네이도를 형상화한 듯 거칠게 겹겹으로 휘몰아치는 기타가 등장할 즈음에는 생각이 달라진다. 이 음반의 곡들이 만드는 분위기는 잔인하고 광폭한 맛이 있다.

예전 미갈라의 무기력하고 자조적인 정서와는 사뭇 다르다. 폭풍이 몰아치다 천상으로 치솟는 듯한 'El Gran Miercoles'나 벼락 쏟아지는 소리를 카랑카랑한 기타가 이어받는 'Sonnenwende' 역시 이런 광증의 테마를 이어간다.

로르까는 스페인 예술의 정체성을 '두엔데(duende)'로 정의내린 바 있다. 로르까에 의하면 두엔데는 '죽음이 없는 곳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것이며, '아물지 않을 상처'와도 같다. 그 죽음과 고통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스페인 예술의 독창성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미갈라의 음악 역시도 스페인 예술의 전통 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음악에는 비록 스페인 전통 음악의 흔적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지만, 대신 스페인 예술의 원천일 고통과 슬픔과 패배적인 감정은 충만하다. 그리고 이번 새 음반 < La Increible Aventura >에서는 원시 자연이 안겨줄 법한 공포, 패닉 상태 등이 더해져 한층 어두운 빛깔을 두텁게 덧칠해냈다.

아마도 미갈라가 '스페인의 록 밴드'라는 정체성을 드러내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그 '두엔데'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영미권이 아닌 '변두리' 출신의 밴드로서 이들의 음악이 독특한 지위를 지닐 수 있는 것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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