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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동북공정(東北工程)’으로 고구려 역사를 왜곡, 조직적으로 가로채는 등 ‘속국의 역사’로 분탕질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겠다는 무모한 수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역사왜곡을 보고 있으면 과거 홍위병집단이 부활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입니다.

중국인들이 최고의 역사서로 꼽는 당서(唐書)나 신당서에도 고구려와 발해는 중국역사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을 뿐 아니라 중국에서 마오쩌둥(毛澤東), 덩샤오핑(鄧小平)과 함께 인민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저우언라이(周恩來, 1898~1976)도 생전에 북한 과학원 대표단과 회견(1963년 6월 28일)에서 ‘고구려와 발해는 한국의 역사’라는 사실을 강조한 적이 있습니다.

요즘 중국의 정치인, 관료, 역사학자들은 스스로 얼굴에 침을 뱉는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고 있다고 봅니다. 고구려 역사를 둔갑시켜 그들의 2세에게 가르치겠다는 뜻은, 경제형편이 좋아지자 인접국 역사와 자존심은 안중에도 없다는 뜻일까요?

강탈한 역사를 2세에게 주입했을 때, 차세대 중국인들이 세계에서 어떤 대접을 받게 될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새삼 이스라엘이 추구해온 자녀교육과 중국의 자녀교육이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을 갖게 합니다.

인간이 갖출 덕목으로 ‘이웃 사랑’을 가르치고 있는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죽음조차도 ‘사랑’을 이기지 못한다는 탈무드의 가르침에서 투철한 자녀 교육관이나 역사관, 종교적 신념을 엿볼 수 있습니다. 탈무드는 ‘사랑’을 으뜸 덕목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12가지 강한 사상(事狀)들을 동원해서 ‘비교’를 거듭합니다.

이를테면, 돌은 쇠에 의해 깎이고 쇠는 불에 녹고 불은 물에 의해 꺼지지만 물은 구름에 흡수되고 구름은 결국 바람에 날려버린다는 것입니다. 그 구름을 날려버리는 바람도 인간을 날리지는 못하지만 인간은 괴로움으로 산산조각이 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괴로움을 잊고자 술을 마셔보기도 하지만 술은 잠에 의해 깨게 되니, 잠 역시 죽음만큼 강하지 못하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니 결국 죽음마저도 ‘사랑’을 이기지 못한다는 교훈을 일깨워주고 있는 셈입니다.

이것은 ‘사랑의 실천’이라는 종교적인 의미와 전인교육을 지향한다는 차원에서 보면 참으로 보편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유대인의 나라를 건설한 이스라엘 민족과 중국의 오늘을 비교하면서 역사적 진실과 보편적인 교육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수천 년을 유랑민족으로 나라 없이 떠돌다가 1948년 미국을 보호자로 태어난 기구한 운명을 지닌 나라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아랍 국가들의 갈등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지만 이들이 서로 상대방의 역사를 왜곡한다거나 2세들에게 거짓 역사를 가르치는 경우는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국은 오만하게도 남의 나라 역사를 빼앗고 그들의 2세에게 거짓 역사를 가르치려 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위대한 정치가 저우언라이의 명언을 되새겨 봅니다.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라고 우기는 짓은 중국 인민들이 가장 싫어하는 대국주의적 발상일 뿐이다.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는 한국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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