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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대의'라는 말이 있다.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되, 대의(大義)에 따라서 기록함으로써 당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전범이 되게 하려 했던 것이다. 역사를 통해 오늘을 되돌아보고, 내일의 역사적 평가 앞에서 떳떳한 오늘을 만들 수 있게 하려 했던 공자의 의도가 잘 드러나 있는 말이다. 유학을 정치적 이념으로 삼았던 중국과 한국에서 유독 '역사의식'이 강했던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처럼 역사가 그에 상응하는 '역사의식'을 갖지 못한다면, 역사는 단순한 '지난 일'에 불과하다. 현대적 의미를 전혀 가질 수 없다는 말이다. 역사가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오늘을 돌아보고 내일의 역사적 판단 앞에 떳떳하려는 역사의식이 사람들 속에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사실'을 중심으로 기록된다면, '역사의식'은 그에 대한 해석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역사에 있어서 '사실'이 강조되는 이유는 잘못된 '해석'을 통한 옳지 못한 '역사의식'을 막기 위한 것이다. 역사적 사실이 올바르게 연구되어야 하고, 또 그것이 올바른 해석의 과정을 거쳐 '역사의식'으로 현대적 작용을 할 때, 비로소 역사는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사실'만을 강조하거나, '해석'만을 강조하는 것은 역사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실제로 '사실'만을 강조한다는 미명 아래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역사를 해석함으로써, 역사를 왜곡시킨 사례들을 우리는 많이 알고 있다.

일제 강점기, 조선침략의 당위성을 역사를 통해 확보하려고 했던 일본 어용학자들이 내세운 방법론은 '사실'을 강조하는 '실증적 방법'이었다. 이러한 '사실'의 강조는 한국의 고대사를 지워버리고 한사군의 설치로부터 한국의 역사를 기록하는 오류를 범했다. 한국의 역사를 '식민지 통치'를 받던 시기에서 시작함으로써, 당시의 식민지 현실을 '당위'로 받아들이게 하기 위한 고도의 술책이었던 것이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역시 중국의 학자들은 '사실'을 강조한다. '사실'을 알고 보면 고구려사는 한국의 역사가 아니라 중국의 역사라는 말이다. 그들이 이것을 철저하게 '학술적 차원'에서 다루자고 하는 말 역시 '사실'에 대해 논증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듯 '사실'을 강조하는 그들의 목소리 뒤에는 미래를 대비하는 '목적된 해석'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음을 우리들은 잘 안다.

서울대학교 이영훈 교수 역시 '사실'에 근거한 '해석'을 강조한다. '사실'과 '해석'에 있어서 '사실'에 강한 무게 중심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섣부른 해석보다는 '사실'을 좀더 연구하라고 주문한다. "역사 공부를 더 하든지"라는 양동휴 교수의 발언 역시 '사실'을 좀더 알아보라는 말로 들린다.

역사에서 '사실'은 중요하다. 그러나 '사실'만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실제 그 '사실'을 통해 그들이 목적하는 '해석'으로 유도하려는 의도가 강했던 사례들을 우리는 많이 보아 왔다. '사실'을 부르짖는 목소리의 크기 만큼 '목적하는 해석'의 크기도 컸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해석'을 말하지는 않지만, 이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해석'을 관철시키려는 '의도'가 '사실'에 대한 부르짖음으로 드러났던 것이다.

더 나아가 '사실'에 대한 강조는 궁극적으로 '사실'마저 왜곡하는 현상으로 이행된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사실을 강조한 식민사관이나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의 궁극적 목적은 한국 고대사에 대한 '왜곡'에 있다. '사실'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사실을 사실이 아니게 만들어 버림으로써 자신들이 의도하는 해석을 가능케 하려는 것이다.

이영훈 교수와 양동휴 교수의 '사실'에 대한 강조가 아무래도 석연찮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과거사 진상규명은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역사'에 대한 오늘날의 '해석'에 관한 문제이다. 진상규명을 해야 할 것인지, 말아야 할 것인지를 논의하는 것은 '우리가 역사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이러한 논의의 장에서 '사실'을 강조하는 것은 그에 대한 '해석'을 덮어두려고 하는 의도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이러한 '사실'의 강조가 실제로 있었던 사실마저 왜곡되고 있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느낌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은 아닌 듯하다.

역사적 '사실'을 '해석'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역사적 사실'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평가는 결국 그것을 해석하는 '후대'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말하는 학자라면 그들의 평가를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학자들의 삶과 행위가 역사 앞에 바로 서도록 강요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두 명의 지성인이 식민사관 생산의 메카였던 '경성제국대학'의 후손이라는 평가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발언이 '후대'의 평가 앞에서 떳떳할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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