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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지방에서 온 한 지인에게서 황당한 얘기를 들었다. 건강을 위해 조기 축구를 하고 있다는 그는 자신이 관계하고 있는 축구팀이 모 기관의 노조와 경기를 갖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느닷없이 상대방이 경기를 취소해 그 까닭을 알아 보고는 실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유인 즉 조기 축구 상대팀은 민주노총 소속 노조인데, 열린우리당 지지자들과는 경기를 하지 못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전쟁 중인 미국과 이라크도 축구는 한다. 그런데 단지 지지하는 당이 다르고 정치적 지향이 다르다고 약속한 조기 축구 경기를 취소하다니…. 이런 어이없는 일이 안티조선 진영에서도 벌어졌다.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가 제2회 안티조선 마라톤 대회에 불참하기로 한 것이다.

전쟁 중인 미국과 이라크도 축구는 한다

<조선일보 반대 춘천 마라톤 대회>는 "조선일보가 아름다운 강원도 땅에서 거짓말과 오보의 대명사 조선일보의 이름을 걸고 대규모 행사를 개최하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데 인식을 같이한 춘천의 시민·민중운동 단체들의 제안으로 지난해 전국의 범안티조선 진영의 열렬한 성원 속에 제1회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바 있다.

특히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는 1회 대회 당시 어느 단체보다 적극적으로 참여, 참가자 규모나 진행면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민주노총의 조직적 참여가 없었더라면 2회 대회를 상상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던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가 올해에는 불참을 결정했다. 조선일보가 더 이상 춘천에서 마라톤 대회를 열지 않게 된 것도 아니고, 조선일보의 부수가 현저히 줄어 더 이상 사회적 근심거리가 아니게 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당연히 안티조선 마라톤을 통해 친일 청산, 과거청산에서 조선일보가 결코 자유롭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런 과거가 조선일보가 퍼뜨리는 독의 근원임을 널리 홍보해야하는 절박한 필요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이 안티조선 선언을 철회했다는 소식을 들은 바도 없다. 그런데 왜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는 돌연 조직위에서 빠지겠다고 결정했을까?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는 조선일보 반대 마라톤 대회(이하 조반마) 조직위에 보내온 공문에서 조선일보 반대운동이 현실의 노동자, 농민 투쟁과 같이 해야 하고 현 정부의 무책임한 이라크 파병에 대해서도 반대와 철회 입장을 밝힐 것을 주장했으나 마라톤 조직위가 이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현 정권의 노동탄압 및 민족농업 말살 정책이 버젓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 정부의 입장을 옹호하는 단체들과의 공동행동이란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설득력을 발휘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열린우리당 지지자들하고는 조기축구도 못하겠다는 어느 노조의 속 좁은 태도와 다를 바가 없다. 이 같은 주장은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가 조선일보 반대 마라톤 대회의 본래 취지는 물론 기본적으로 '연대'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심스럽게 만든다.

조반마, 하고 싶은 말 다 할 수 있다

조선일보 반대 마라톤대회는 처음부터 안티조선 운동의 연장에서 '조선일보의 몰상식'에 반대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어떤 단체나 참여할 수 있는 대중사업으로 시작했다. 참가 단체나 개인이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지는 따지지 않으며, 따질 까닭도 없다. 같은 당 안에서도 혹은 조선일보를 싫어하고 반대하면서도 입장이 갈리는 이라크 파병과 같은 날선 주제를 내걸고 여는 대정부 규탄 대회로 제1회 대회를 치르지 않았고 2회 대회 역시 마찬가지다.

또 지난해 대회 경험에 비춰 행사의 전체 주제와 구호는 안티조선에 한정하더라도 개별 참가자들과 단체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담은 플래카드를 들고 뛰거나 운동복에 붙이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다. 즉 개개 단체들은 각자의 요구를, 달리면서 혹은 걸으면서 얼마든지 홍보 할 수 있는데도 자신들이 주장하는 구호를 조직위에서 공식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참여를 철회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궁색한 변명이다.

다른 단체와 힘을 모아 사업을 할 때 각 단체가 하는 10가지 사업 모두에 동의하는 단체와 연대하는 것은 아니다. 연대란 서로 다르지만 한두가지라도 공통의 주제, 같이 추구하는 목표가 있고, 따로 하는 것보다 함께 하는 것이 효과가 크고 의미도 있다고 판달할 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가 안티조선에는 동의하지만 자신들의 요구 조건을 조직위가 받아들이지 않아서 참가할 수 없다는 것은 이 행사에 참가하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다른 핑계를 대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현 정부의 정책이 노동자를 탄압하고 농업을 말살하는 것이냐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그렇게 인식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 있음을 이해한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현 정권의 노동탄압 및 민족농업 말살정책이 버젓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 정부의 입장을 옹호하는 단체들” 운운은 결국 이 대회 조직위와 마라톤 참가자들이 노동자 농민 탄압에 동조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대단히 심각한 왜곡일 뿐만 아니라 다른 참가 단체나 개인들을 모독하는 것으로 이 대회 참가 신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에 사과를 받고 싶을 정도다.

이같은 공개적인 문제 제기가 안티조선과 관련해 진보개혁 세력 전체에 적지 않은 부담과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조선일보와 수구 언론들은 안티조선 운동의 갈등, 나아가 분열로 확대 가공돼 우리 쪽을 공격하는 호재로 삼을 가능성도 크다.

안티조선=정권 홍위병 구도 진보진영에도 먹히나

그럼에도 문제 삼는 까닭은 조선일보 반대 마라톤 대회와 안티조선 운동에 대한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의 인식에서 "안티조선=정권 홍위병"이라는 조선일보식 의제가 소위 진보 진영에까지 폭넓게 먹히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조선일보의 오보와 왜곡을 모니터 해 보도하는 조반연의 ‘주간안티조선팩스신문’에는 매 주마다 노동운동과 노동자에 대한 왜곡·오보 기사 고발이 빠질 날이 없다. 경제가 어려운 모든 원인이 노동자들의 파업에 있는 것처럼 왜곡하고, 노동자들을 마치 공공의 적이라도 되는 양 공격하고 못 잡아먹어 안달하는 반노동자 신문이 조선일보라는 사실을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와 노동자들이 모를 리 없다.

운동이란 명분과 대의를 갖고 하는 것이다. 조선일보 반대 마라톤 대회에 참여 여부를 결정할 때 중요한 것은 노동자의 시각에서, 민주노총 입장에서 조선일보 반대운동의 일환인 이 대회가 유의미한 것이냐 아니냐이지 어느 당 지지자의 참여 여부가 아니다. 설령 안티조선 운동 진영에 현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고, 조선일보 반대 마라톤 대회에도 그들이 대거 참여한다고 해도 스스로 이 행사가 안티조선의 연장에서 사회 진보에 꼭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하는 것이다.

까놓고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언론관을 갖고 수구언론과 싸우는 것이 민주노총이 2000년 일찌감치 조선일보 반대 시민연대에 참여하게 만든 동기는 아니지 않은가? 대통령 아니라 대통령 할애비가 안티조선을 하든 말든, 조선일보가 춘천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게 하는 일이 절실하면 조반마에 참여하는 것이다.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은 결국 조선일보가 춘천을 팔아 장사를 하고 권위를 누려도 이 마라톤에 참가해 현 정부 지지자들과 달리는 것보다는 낫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또 정부를 상대로 이라크 파병반대나 노동자 탄압 중단 요구를 채택하지 않는 한 안티조선 마라톤은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가 꿈꾸는 사회 진보와 개혁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보고 있다는 뜻은 아닌지 모르겠다. 오히려 참여하지 않은 것이 진보와 개혁에 더 보탬이 된다고 판단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지난 수년간 안티조선 운동은 우리 사회 개혁의 의미 있는 한 축이었다. 수구 기득권을 유지, 강화하려는 사대주의 세력들의 배후 조정자이자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가 그토록 바라는 진보를 가로막는 제1의 방해꾼이 바로 조선일보다. 이 조선일보의 친일 반민족 반민주 실체를 국민들 사이에 널리 알리는 것은 그 자체가 개혁이다. 국회에서 신문경품 포상금제가 논의되고 언론개혁이 중요 과제가 된 것도 역시 안티조선 운동의 성과다.

잘못된 판단으로 조선일보를 즐겁게 할 참인가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가 이 같은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안티조선 마라톤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이 정권 지지자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 한 사회 진보와 개혁에 도움이 안 된다는 논리는 조선일보식 왜곡된 시각에 자신들도 모르게 사로잡혀 있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의 안티조선 마라톤 불참은 결국 조선일보의 개혁 세력 이간질이 통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의 불참으로 즐거운 사람들은 그들 말대로 '이 정부 지지 세력'이면서 안티조선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바로 조선일보다. 가장 악랄하게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헌법이 보장한 파업조차도 불법으로 몰아 마녀사냥을 하는 반 노동자 신문의 수장, 진보의 적 조선일보다.

안티조선 세력이 이 정부 지지 세력, 소위 '노빠'들과 민주노총으로 분열해 일요일 어느 하루 20Km 남짓 같이 뛰며 안티조선 홍보하자는 어찌 보면 매우 단순하고 별 것 아닌 행사 참여 여부를 놓고 아웅다웅하는 사이 조선일보가 모처럼 조성된 과거청산 역사 청산의 흐름 속에서도 질기게 살아남아 노동자 때려잡는 짓을 계속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는 바로 이 점을 직시하고 다분히 비이성적인 감정에 휩쓸려 우리가 함께 싸워야 할 수구기득권을 미소 짓게 하는 어리석은 결정을 지금이라도 당장 거둬들여야 할 것이다.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의 입장

다음은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가 조선일보반대마라톤대회 조직위에 보내온 공문의 전문이다.

1. 귀 단체의 무궁한 발전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 보수수구언론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조선일보에 대한 전 국민적 반대운동이 일어나가기를 기원합니다. 2003년 강원민중연대와 민주노총강원지역본부는 조선일보 반대운동의 또 다른 시작으로 조선일보 반대 마라톤 대회를 준비하고 진행하였습니다.

3. 그러나 2004년 조선일보 반대 마라톤 대회는 참가할 수 없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그러기에 공식적으로 발행되는 2회 대회 선전물에서 민주노총을 빼 주시기 바랍니다.

4. 저희는 누누히 조선일보 반대운동이 현실의 노동자 농민 투쟁과 같이 해야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현 노무현 정권의 무책임한 이라크 파병에 대해서도 분명한 반대와 철회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번 2차 대회 조직위에서는 열린우리당의 참여문제를 포함한 이런 제민중적 요구들이 받아 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 정권의 노동운동탄압 및 민족농업 말살정책이 버젓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 정부의 입장을 옹호하는(?) 단체들과의 공동행동이란 민주노총조합원들에게 설득력을 발휘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현실의 냉엄한 정세는 노무현 타도의 목소리까지 높아지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5. 1회 대회를 준비한 당사자로써 2회 대회의 불참을 선언한다는 것이 참으로 비통한 일입니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계급적 원칙에 기반한 조선일보 반대운동을 힘차게 전개해 나갈 것입니다. 또한 3회 대회에는 보다 민중적 입장이 분명히 투영된 대회를 진행해 나갈 예정입니다.

6. 아무쪼록 2회 대회가 무사히 끝마쳐지기를 기원합니다. <끝> /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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