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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열전 출품작들
ⓒ 김지원
연극계가 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말이면 대학로에는 공연을 홍보하려는 사람들로 길을 걷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이것저것 저마다 나눠주는 팸플릿을 다 받노라면 양 손이 부족할 지경이다.

혹하는 싼 공연도 많다. 만 원이 채 되지 않는 가격을 외치며 자신들의 공연을 보러오라고 나서는 사람들. 그런데 왜 그런 공연에 관객들은 발길을 돌리는 것일까.

싼 가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만큼 재밌는지가 연극을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 공연이 과연 나의 돈과 시간을 투자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그들이 외치는 소리만으로는 확신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학로에 연극을 보러 갈 때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떤 공연이 재밌는 공연일까, 어떤 공연을 봐야 대학로까지 가는 수고로움에도 불구하고 만족하고 나올 만한 것인가에 대한 선택일 것이다. 2004년 <연극열전>은 이런 고민을 덜어주는 시도이다.

연애인, 당신을 초대합니다

<연극열전>은 동숭아트센터와 문화창작집단 수다가 공동으로 기획한 1년짜리 프로젝트이다. 과거에 인기를 얻었던 공연 15편을 선정해서 1년 중 일정 기간, 관객들에게 다시 보여주는 것이다. 비평가나 관객들에게 높은 지지를 얻은 작품들만 선정한 만큼 <연극열전>을 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극 자체에 대한 의구심은 일단 없다. 자신의 구미에 맞느냐 안 맞느냐의 문제이지, 이 작품이 작품성이 있느냐 혹은 재미없지 않을까의 고민은 열외이다.

더욱이 이름만 들어도 아는 인기 스타들이 - 정재영, 조재현, 강성진, 성지루 등 - 총 출동할 뿐만 아니라 연극계에서 관록있는 배우들이 참여하고 있음은 물론, 이름만으로도 한 번은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오태석, 이윤택, 장진 등의 연출자들이 함께 참여했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른바 연극계에서 보기 힘든 거대한 프로젝트이자 대규모 축제의 장이 바로, <연극열전>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연극열전>이 공연되고 있는 공연장은 항상 만원사례이다. 좁게 어깨를 다닥다닥 붙이고 앉아야 할 정도. <연극열전>의 평소 관중 동원은 100% 이상이다. <연극열전> 기획은 감히 성공이라 할 수 있다.

15편 모든 작품이 거의 매진을 기록할 정도의 높은 예약률을 보였고 일년이라는 장기 레이스에서 어느 한 작품도 탈락하지 않고 유종의 미를 거두려는 시점에 와 있기 때문이다. <연극열전>에 많은 관객이 몰릴 수 있었던 이유는 공연 자체의 기획력 이외에도 홍보의 적극성에 있다. 우선 가격의 부담을 덜고 오피니언 리더에 대한 확보의 일환으로 한 공연이 시작한 후, 일주일 정도의 기간은 특별할인 기간으로 두었다.

특별할인 기간에는 30% 할인을 해주는데, 보통 연극에 대한 정보가 빠르고 평소에 관심이 있는 관객들은 이 때를 놓치지 않는다. 또한 <연극열전>은 '연애인(演愛人,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들)' 제도도 있다.

연애인에 가입하면 <연극열전>에 대한 정보 제공은 물론 20% 할인 쿠폰이 분기당 3장이 제공된다. 연애인 제도는 연극에 대한 재정의 부담을 덜고 좀 더 많은 관객들을 모으려는 하나의 아이디어이다.

연극계의 부활을 꿈꾸며

연극평론가 안치유씨는 <연극열전>에 대해 '기존의 연극동네가 아닌 연극시장에 내놓은 것'이라고 비평했다. 안치유씨의 지적대로 <연극열전>의 기획이나 진행은 열악한 연극계에서는 보기 힘든, 대규모의 물량공세로 이루어진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연극열전
올해 말까지 올려질 공연 소개

<청춘예찬>
공연일시 : 2004년 10월 2일~ 11월 14일 / 평일 7:30분 주말 4:30/7:30 월요일 쉼
주최 : 극단 골목길, 동숭아트센터, 문예창작집단 수다
연출 : 박근형
출연 : 김영민, 고수희, 엄효섭 등

<오구>
공연 일시 : 2004년 10월 19일~ 11월 28일 / 평일 7:30분 주말 4:30/7:30 월요일 쉼
장소 :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주최 : 극단 연희단거리패, 동숭아트센터, 문예창작집단 수다
연출 : 이윤택
출연 : 강부자, 남미정 등

<피의 결혼>
공연기간 : 2004년 12월 3일~ 12월 31일
주최 : 극단 자유, 동숭아트센터, 문예창작집단 수다
연출 : 김정옥

<이발사 박봉구>
공연기간 : 2004.11.19(금)~12.31(금)
공연시간 : 평일 7:30 / 토 4:30, 7:30 / 일 6:00 (월요일 쉼)
주 최 : 극단 동숭아트센터, 문화창작집단 수다

연극열전 홈페이지 www.idsartcenter.co.kr
더불어 스타급 배우와 연출, 이미 공인된 연극들의 재탕이므로 <연극열전>의 성공은 연극계 자체의 발전이나 부흥과는 거리가 먼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까지 극단 위주의 연극동네의 시스템으로 연극계는 계속 불황을 이어왔다. 한 달 최소 수입도 되지 못하는 배우들의 수입이나 극단의 재정 압박은 오히려 악순환을 불러올 따름이다.

물론 순수해야 하고 순수한 연극계가 자본에 의해 변질되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연극계가 앞으로 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와 다른 기획력을 앞세운 전략적인 마케팅 역시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한국영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도 몇몇 투자 배급 회사의 지원이 한 몫 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듯이 말이다.

<연극열전>의 가장 큰 장점, 혹은 공로는 사람들을 동숭동으로 불러들였다는 점이다. 연극과 영화는 다른 장르이지만, 동일한 문화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가운데 차이가 나는 것은 바로 '접근성'이다. 그런 상황에서 한 번, 두 번 사람들에게 동숭동을 찾게 하는 것은 곧, 동숭동 연극가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동일한 경험(연극을 보러 나오는 경험)이 쌓이다 보면 내가 먼저 좋은 연극을 찾아 볼 수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를 깨달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좀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연극계에 가장 필요한 것은 실제, 관객들의 적극적인 관심이 아닌가.

연극계가 불황이라는 말, 공연예술이 죽어간다는 말은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여러 차례 많은 매스컴에서 접해본 사실이기 때문이다. 120% 정도의 점유율을 기록한다는 동숭아트센터조차 평일엔 관객석이 간혹 비기도 한다는 기사(일간스포츠 7월 11일 자)도 있다.

연극은 공연예술의 선봉장이고 살아 숨쉬는 공간이다. 어느 한 문화 영역이라도 관중의 관심이 낮아서 그것이 제 빛을 발하지 못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연극열전>은 좀 더 쉽게, 부담 없이 사람들을 연극 무대로 모으고 있다. 선택에 대한 부담을 낮추고 좀 더 대중성 있는 작품으로 이른바 연극계의 백만 관객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연극열전>의 시도가 다른 극단의 연극들에게도 점차 확대될 것을 기대한다.

한 번 맛들이면 연극의 그 생동감 있는 무대를 쉽게 잊기 어렵다는 개인적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연극열전>이 끝난 후에도, 뛰어난 기획력으로 연극의 세상으로 우리를 이끌어줄 또 다른 프로젝트가 등장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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