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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장 '대구아트홀'을 운영하고 있는 석가화(48)씨.
소극장 '대구아트홀'을 운영하고 있는 석가화(48)씨. ⓒ 평화뉴스
'대구아트홀'의 창립부터 운영까지 모든 것을 담당해왔던 석가화(48)씨는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면서 강제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됐다"면서 "무대 공간이 사라지는 것도 안타깝지만, 그동안 이곳에서 함께 생활해왔던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며 괴로운 심정을 털어놨다.

석씨는 대구지역에서 10년 넘게 민요가수로 활동하며 양로원이나 교도소 등을 찾아 무료공연을 해왔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어느 건물 주인이 지난해 초 자신의 건물 3, 4층을 "좋을 일에 쓰라"면서 무상으로 석씨에게 제공했다. 그래서 3층은 소극장으로, 4층은 연습실 겸 숙소로 만들어 지난 2003년 4월 '대구아트홀'의 문을 열었다.

당시 '대구아트홀'은 대구에서 몇 개 되지 않는 소극장 가운데 하나로 관심을 모았지만, 소외된 사람들 사이에서는 무료 예술강좌와 무료 위문공연으로 더 많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특히 국악과 무용, 노래 등 무료 예술강좌를 듣기 위한 청소년들이 많이 찾아왔는데, 이들 대부분은 형편이 어려워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아이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가출을 했거나 소년원을 나와 갈 곳 없는 아이들도 하나 둘 이곳으로 데려오다 보니, 어느덧 60명이 이곳의 연습실에서 함께 생활하게 됐다고.

"버스에서 한 아이에게 어디에 가느냐고 말을 걸어보니, 갈 곳이 없데요. 그냥 종점에서 종점까지 버스를 타고 왔다 갔다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데려온 아이도 있었고, 차비가 없다며 이곳에 찾아온 아이들도 있어요. 모두 가정과 사회에서 소외돼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이었지요."

요일마다 국악, 무용, 붓글씨, 연 만들기, 인성교육 등 수업에 참여하며 연습실에서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에게 '대구아트홀'은 극장이 아닌 희망을 주는 새로운 보금자리였다. 석씨와 아이들은 생활비를 위해 같은 건물 2층을 임대해 구제 옷가게도 열었다.

이렇게 생활한 지 2년째인 '대구아트홀'은 소극장과 함께 양로원이나 고아원 등의 무료 위문공연을 하는 곳으로도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아이들끼리 힘을 모아 '극단 동성로'라는 연극단도 모집했다.

'대구아트홀'의 텅빈 연습실(왼쪽)과 컴컴한 무대(오른쪽).
'대구아트홀'의 텅빈 연습실(왼쪽)과 컴컴한 무대(오른쪽). ⓒ 평화뉴스
그러나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연극과 콘서트 등으로 활발했던 이곳 '대구아트홀'은, 현재 문이 굳게 닫혀버렸다. 아이들의 목소리로 가득했던 연습실도, 화려했던 무대도 텅텅 비어 있는 상태다. 6개월 전 이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면서 주인이 바뀌었고, 건물을 비워달라는 요구와 함께 가처분 고시가 곳곳에 붙었다.

강제 철거하겠다는 말에 악기와 소품은 서둘러 다른 곳으로 옮겼고, 그동안 함께 했던 무용단과 오케스트라도 해체됐다. 게다가 60명 아이들은 더 이상 머물 곳이 없어졌다. 2층의 가게도 언제 강제 철거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나마 절반은 각자 일할 곳을 찾을 수 있었지만 나머지는 갈 곳이 없어 뿔뿔이 흩어졌고, 지금은 10여 명의 아이들만 현재 석씨의 집에서 옹기종기 모여 생활하고 있다.

"어떤 아이는 현관문을 열어보고 신발이 가득하면 들어오지 않고 나가버려요. 건물 곳곳에 가처분 고시가 붙고 나서는 아이들 스스로 흩어져버렸어요. 모두 상처를 안고 모인 아이들인데 이곳에서조차 상처를 입게 만들어서 너무 미안하고 가슴이 아픕니다."

대구역 근처 구 자유극장 골목에 들어서 있는 소극장 '대구아트홀'.
대구역 근처 구 자유극장 골목에 들어서 있는 소극장 '대구아트홀'. ⓒ 평화뉴스
그러나 현재 석씨는 불안과 고통 때문에 슬픔에 잠길 여유도 없다.

"오늘 아침에 남자 5명이 한꺼번에 들어와 너무 놀랐어요. 다행히 새 건물 주인이 보낸 사람들이 아닌 걸 알고는 가슴을 쓸어내렸죠."

그런 석씨에게 지난 21일 아이들 10여 명이 찾아왔다. 석씨가 꾸준히 방문했던 고령의 사할린 할아버지, 할머니들 양로원을 이번에는 자기들끼리 다녀왔다는 것이다. 먹을 것도 준비하고 공연도 하고 왔단다.

"아이들이 공연을 해서 받는 돈은 10∼20만 원도 안 됩니다. 그 돈을 아끼고 모아서 저대신 고령까지 다녀왔답니다. 이렇게 순수한 아이들을 거리로 다시 내보낼 수는 없어요. 소극장을 떠나서 아이들이 돌아올 수 있는 보금자리라도 어떻게든 마련할 겁니다."

텅 비어버린 연습실, 흐릿한 거울 앞에 홀로 선 석씨의 간절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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