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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다 살아났다'
어제 아침 집에 들어와 자고 일어나면서 언뜻 든 생각이다. 그제야 살만하고 그제야 인간이 된 느낌이었다. 한 친구를 만나 찜질방에 간 것이 그제 저녁이었다. 지방에서 온 친구이고 또 퍽 오랜만에 만난 친구라 저녁을 먹고 그냥 헤어지기가 뭣했다.
친구는 다음날 서울에서 일정이 또 있다고 했기에 만나기 전부터 찜질방이라는 곳에 함께 가야겠다고 계획했었다. 찜질방에 가서 밤을 새우며 못 다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저녁을 먹고 찜질방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검정 어딘가에 으리으리한 찜질방이 있다고 들었지만 당연히 그 이름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저녁을 먹은 인사동에서 가까운 종로 근처에 찜질방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쪽으로 걸어갔다.
간판을 보니 지하에는 사우나 실이 있고 14층은 찜질방이 있었다. 사우나실과 찜질방이 다른 것이던가? 얼른 생각에 지하보다는 위층이 나을 듯하여 위쪽의 찜질방으로 갔다. 그러나 거기는 입구도 어두침침하고 담요 하나씩을 들고 들어가게 되어 있는 것이 혹시나 불결한 잠자리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곳이었다. 다시 내려와 사우나로 갔다. 들어가서 보니 사우나 실은 그냥 우리 동네 목욕탕과 같은 것이었다.
입장료는 8000원이었다. 목욕만 하는 것치고는 비싼 듯했고 하루 밤을 지새우는 값으로는 싼 것 같기도 했다. 주는 대로 분홍색 옷과 수건 두 장을 받아 들었다.
시설은 화려한데 사람이 별로 없어 이렇게 해 가지고 어떻게 종로 한 복판에서 견디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괜히 낮에 목욕을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황토방이라는 데 들어가 찔끔 앉았다 나오고 습식 사우나라는 곳에 들어가 또 찔끔 앉았다 나왔다. 어딜 들어가든 먼저 나가자고 하는 것으로 보아 친구가 나보다 더운 걸 더 못 참는 듯했다. 친구 덕분에 저절로 참을성 많은 사람이 되다니 영광이었다.
소금 방에 들어갔다. 소금이라서 김장 소금 같은 걸 놔 둔 줄 알았는데 생김새가 달랐다. 결정이 굵기도 하고 훨씬 더 딱딱했다. 붙어있는 설명을 보니 히말라야에서 채취해온 소금 광석이라고 했다. 히말라야 산에서 난 소금 덩어리가 우리나라 목욕탕까지 온 것이다.
이런 데까지 외화를 낭비해야 되겠나하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밟아 봤더니 더운 여름 날 해변에 맨발로 걸어갈 때처럼 따끈따끈하면서도 뜨거웠다.
소금 자갈밭에 누워 소금을 조금 높이 쌓아 베개를 만들어 누웠더니 높이도 적당하고 등이 시원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무척 더워 땀이 흘러내리니 친구가 또 나가자고 했다. 그 친구에게는 더운 곳에서 '찜질방이라서 더운가보다' 하며 앉아 있는 내가 곰처럼 미련해 보일는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친구가 부항을 뜬다고 했다. 부항이라면 그 온 몸에 시커멓게 동그란 멍이 생기는 거 아닌가. 어쩌다 누군가의 부항 자국을 보게 되면 몸이 얼마나 아프기에 저렇게 온 몸이 멍이 들도록 치료를 받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부항실로 가니 침대에 누워 손님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사람이 깜짝 놀라 일어났다. 이렇게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니 삶이란 참 경외로운 것이다. 여기서는 사기 컵을 불에 쏘여 공기를 팽창시켜 등에 붙이는 식으로 하는 부항이었다. 공기가 식으면서 컵 안이 진공상태가 되면서 피부를 끌어당기나 멍이 드는 것 같았다.
몸이 안 좋으면 더 까맣게 멍이 들고 그것이 기혈에 좋다고 하는데 선뜻 믿어지진 않았다. 친구도 등 가득 괴기스러운 멍 자국을 만들고 일어섰다. 앞으로 일주일 이상은 온몸에 저렇게 시커먼 멍자국을 지녀야 할 것이다.
나오는 길에는 자동안마기도 있었는데 친구는 그것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몸이 안 좋아서 그렇다는 것이다. 몸이 좋지 않다니 그런 줄 알겠지만 어쩌면 취향이 달라 그럴지도 모른다.
시키는 대로 안마 침대에 누우니 온 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 망치의 움직임이 얼마나 날렵한지 기계라기보다는 어떤 아이가 등을 두드려주는 것으로 착각하기 좋았다. 하지만 나중에는 어찌나 두들겨 대는지 슬슬 피하면서 정통으로 맞는 걸 피해야 했다. 주먹세례를 당하면서 아픔을 참고 있자니 돈 내고 고생하는 것도 여러 가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앞쪽으로 얼음으로 중무장한 방도 있어 들어가 보니 성에가 가득 낀 냉동실 같았다. 에스키모의 이글루가 이렇게 생겼을까? 더우면 들어와도 될 것 같아 슬쩍 안심이 되었지만 하도 추워서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2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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