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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생긴 대로 따라가자니 수면방에 닿게 되었다. 거기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며칠이나 계속되는 일정에 피곤했던 친구는 눕자마자 잠이 들었고 나는 졸지에 심심해져 버렸다. 원래 찜질방에 온 목적이 그간 못 다한 이야기를 실컷 하자고 온 것인데 이렇게 잠이 들어버리니 더 이상 여기 있을 필요도 없는 셈이었다.
거기엔 우리 말고 두 팀이 더 있었는데 한 팀은 뭔가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얼마나 쉴 새 없이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고 웃는지 부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무료한 김에 무슨 소리를 하나 들어보려 해도 들리지는 않았다.
다른 한 팀은 맥주까지 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다른 데서부터 약간 이상하게 행동하던 사람들이었다. 친구사이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서로 손을 잡기도 하고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이야기를 했었다.
시끄러워도 꾹 참으면서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려던 참이었다. 그 사람이 갑자기 ‘소곤소곤 팀’에게 좀 조용히 하라고 했다. 떠들려면 수면실 밖으로 나가라고 훈계를 하는 것이었다. 여태껏 제일 큰소리로 이야기하고 떠들다가 그것도 모자라 전화까지 하다가 갑자기 딴 사람에게 조용히 하라는 것은 또 무슨 경우인가.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이 이렇게 적절하게 맞을 수가 있으랴.
수면실이라고는 해도 불을 켜놓았으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게다가 베개마저 높아 잠을 자는 건 불가능한 것 같았다. 바닥은 따뜻하지만 덮을 것도 없이 누워 있자니 이렇게 밤을 새워야 한다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하도 불편해서 기차나 버스에서 차타고 잔다고 생각하고 자려고 했는데도 잠은 안 왔다. 무엇 때문에 여기 와서 이 고생인지 사서 고생하는 것도 참 여러 가지다.
친구가 한숨 자고 나더니 잠이 깼다. 다른 자리를 찾아 나섰다. 나이 지긋한 남자들이 이리 저리 쓰러져 자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또 무슨 일로 집에 들어가지 않고 여기서 잠을 자는 것일까.
아무리 봐도 뾰족하게 좋은 곳은 없었다. 아무데서나 좀 누워있을 만 하면 사람들이 와서 옷장 문을 열어야 한다고 일어나라고 했다. 하는 수 없이 그 중 나아 보이는 평상 위에 자리 잡고 한동안 이야기를 했다.
다시 잠이 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거기 문이 열렸던지 간간이 찬바람이 몰아닥치고 있었다. 그 뿐 아니라 욕탕에서 물 뿌리는 소리, 화장실에서 새어나온 담배 연기도 참아야 했다. 커다란 시계는 한 시 몇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얼마나 더 있어야 지하철이 다닐 시간이 되는 건지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정말로 느리게 갔다. 수없이 많은 날들을 이렇게 긴 시간을 꼼짝하지 않고 잠을 잤다는 것이 놀랍기도 했다.
추위를 참다못해 평상 아래로 내려갔다. 덮을 것도 없이 평상을 이불 삼아 자다보니 사시사철 한데서 눈에 손수건 하나 올려놓고 잠을 잤다는 지리산 빨치산이 떠올랐다.
바닥은 군데군데 따뜻했다. 이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안 될 텐데…. 수건 한 장을 접어 반은 베고 반은 얼굴을 덮으니 베개도 해결되고 담배연기도 조금은 덜한 것 같았다. 더디긴 하지만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깜빡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떠서 평상 위를 보니 친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다른 사람이 자고 있었다. 이 배신자가 다른 데로 가 버린 것이었다. 이 넓은 데서 어디서 찾나 걱정을 했지만 우선 너무 추워 아까 갔었던 소금실로 갔다. 친구는 바로 거기 있었다. 보아하니 친구도 자다 너무 추워 따뜻한 이곳으로 흘러 들어온 것 같았다.
이제는 다섯 시도 넘었으니 전철도 다닐 시간이지만 밤새 시달리느라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멍하니 누워 비슷한 경험들을 떠올렸다. 일본에서 배로 올 때도 이런 방에 다 함께 잤었다.
그때도 어떤 사람이 너무나 시끄럽게 코를 고는 통에 밤이 얼마나 길었던지. 그러고 보니 그 옛날 제주도 가는 배에서도 모두들 멀미 때문에 고생하면서 날이 새기만을 기다리며 한밤을 보냈었다. 그 일들이 모두 이 친구와 함께였구나.
깨우는 소리에 잠을 깨보니 그래도 두 시간은 푹 잤나보다. 서둘러 나오면서 보니 온 마루에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이 늘어져 있었다. 장사가 안 될까 봐 걱정했던 건 완전 쓸데없는 걱정이었던 셈이다.
긴 밤을 지새우고 집에 와 끙끙 앓으면서 자고 나니 죽다 살아난 것 같았다. 세상이 이렇게 많이 변했다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다른 삶을 살고 있다니… 돈 내고 고생하기도 정말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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