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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없는 집권여당의 좌충우돌
6월의 마지막 날 밤 자정을 몇 분 남겨놓고,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10년 역사가 송두리째 부정되었다. 기초의원까지 정당공천제 전면 실시, 중대선거구제 도입, 기초의원 대폭 감축 등 지방자치제도의 근간이 그 짧은 순간에 완전히 뒤바뀌었다.
집권여당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초자치단체장까지 정당공천을 배제하겠다는 것이 당론이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기초의원까지 전면적인 정당공천제를 도입하겠다고 입장을 바꾸었다. 10년 지방자치의 근본을 다양한 의견수렴과 공론의 과정 없이 정반대로 뒤집어 버린 것이다. 럭비공처럼 이리 튀고 저리 처박히는 무능력한 집권여당의 좌충우돌이 오히려 안쓰러울 뿐이다.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 문제는 시민단체의 몇몇 정치학자들도 주장하고 있다. 역동적인 지역정치와 지역운동에는 별반 관심도 없는 학자들이지만, 이들은 각종 정치관계법 논의테이블에 터줏대감처럼 차고 앉아 시민단체의 목소리를 대표하고 있다. 대부분 정당정치를 지고지순의 가치로 여기며 기존정당의 울울창창한 번영을 역설하고, 국회는 이들의 목소리 중에 달콤한 것들만을 뽑아 누더기 법개정을 하기 일쑤이다. 이번 정치관계법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책임지지 않으려면 공천하지 말라
기존 정당들은 정치제도에 관한 새로운 실험적 제안이나 정치적 상상력 보다는 그저 정당정치와 책임정치만을 대뇌일 뿐이다. 패권적 양당구도에서 정당정치를 확대하는 것이 과연 풀뿌리 민주주의를 꽃피울 수 있으며, 나아가 책임정치와 참여민주주의를 살찌우는 정치제도의 유일한 대안인가.
정당공천으로 당선된 단체장과 광역의원이, 위법행위나 정치적(도덕적) 책임을 방기했다고 해서 당에서 책임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정당은 패거리를 관리하는 관념적 선긋기일 뿐 어떠한 차별적인 지역정책과 대안적 가치를 제시하지 못했다.
정당의 책임은 선거 때 공천을 관리하는 것과 전국적인 바람몰이로 정당후보를 당선시키는 게 전부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도에서 정당이 갖는 책임정치의 현주소이다.
지방은 그야말로 다양성과 상상력의 실험장이다. 지역의 소규모 정치그룹들과 지역특색을 살린 각양각색의 정책들이 싹트는 민주주의의 농장이다. 일본이나 유럽,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각종 지역정당(지역정치단체)들이 출현하여 새로운 시민참여모델의 정치적 대안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제 이런 무지개 빛 생활정치는 압사당할 위기에 놓여 있다. 우리나라처럼 창당 요건이 엄격하고 양당구도가 정착한 상태에서, 중앙부터 지역까지 기호를 통일하여 줄세우기식 정당선거를 하자는 주장은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발이다.
광역의원과 국회의원부터 줄여라
국회는 또 기초의원 유급제를 추진하되 그 정수를 대폭 줄이겠고 한다. 나도 찬성한다. 단, 기초의원을 줄이는 만큼, 광역의원과 지역구 국회의원에 대한 축소 논의도 진행되어야 한다. 비대해진 몸통과 머리는 놔두고, 흙속을 파고들며 양분을 빨아들이는 풀뿌리만 왕창 처내겠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 발상이다. 생활정치영역의 대표성을 대폭 줄이겠다는 이 기형적인 정치구조는 분권과 참여민주주의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다.
앞으로 자치경찰제와 교육행정까지 지방자치단체로 이양할 계획이다. 또한 도시계획과 각종 자치권한이 지방정부로 대폭 이양된다. 주민들의 생활과 지역정체성을 좌우할 강력한 지방정부가 출현하는 것이다. 그만큼 지방의회의 역할과 기능, 책임이 막중해진다는 것이다.
의원 정수를 줄이고 싶다면 주민들과의 제도적 정치적 친밀도도 낮고, 정당정치로부터도 외인구단처럼 밀려나 있는 광역의회구조를 개혁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반수 가까운 국민이 지지정당이 없다는 현실을 감안할 때, 오히려 정당에 묶여있는 의회구조(광역이든 국회든)를 줄이는 게 합리적인 정치개혁일 것이다.
어떻든 의원정수 조정은 포괄적인 차원에서 행정계층구조의 축소개편과 더불어 신중하고 다각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중대선거구제의 문제점
어떤 선거제도이든 장단점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미 10년 동안 정착한 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신중하고 진지한 선택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어제 통과된 선거구제를 비롯해 지방선거제도에 대한 어떠한 공론의 과정도 들어보지 못했다.
소선거구제는 선거비용 부담도 없고 지역주민과의 친밀도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중대선거구제는 막대한 선거비용도 그렇거니와 주민친밀도도 느슨하고, 기초의원과 광역의원의 역할구분도 모호해진다.
또한 일본처럼 15%대의 표만 있으면 대를 이어가며 의원직을 물려주는 의원직 세습도 가능하다. 또한 막대한 선거비용과 패권적 정당구조로 인해 젊고 개혁적인 세력들의 진출이 상당부분 제한될 것이다.
더구나 엄격한 정당구조로 인해, 다양한 지역정치세력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비례대표제의 혜택을 받을 수도 없다. 이처럼 시민참여를 제한하는 폐쇄적인 정치구조는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운 우리 지방자치에게 다시 기어 다니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오히려 이 시점에서 미국이나 유럽처럼 선거구제를 포함해 지방의 공직후보자 선출에 대한 모든 제도적 선택권을 자치단체나 지역 주민이 스스로가 판단하게 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이것이 지방자치, 주민자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참여정부의 지방분권과도 어울리는 정책프로세스다.
참여민주주의와 주민자치의 위기
세계적으로 정당정치는 쇠퇴하고 있다. 대부분의 정당들은 갈수록 보수화, 관료화 되어가고 있다. 그런 구태한 정치구조로는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를 담아내지 못한다. 특히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정치 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으며, 그것은 기존의 정당정치와 정치구조에 대한 환멸이기도 하다.
이젠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받쳐줄 새로운 정치제도와 구조가 필요하다. 각종 주민참여조례, 주민소환제, 주민투표제, 참여예산제 등등은 기존의 대의정치에 대한 직접민주주의적인 요구이다. 그런데, 풀뿌리까지 전면적인 정당정치를 강요하는 것은 국회로부터 멀어지는 지방권력이 두려운 것이다. 또한 선거패배를 두려워하는 기존 정당들의 치졸한 나눠먹기식 야합에 불과하다.
정치는 상상력이다. 그 상상력을 제한하고 주민참여를 봉쇄하는 기초의원 정당공천제는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 주민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규정하는 지방선거제도를, 그것도 10년의 정치실험을 밀실야합으로 팽개칠 순 없다.
덧붙이는 글 | 김달수 기자는 경기도 고양시의원이자, 초록정치연대 지방의원단 간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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